'왜'를 넘기니 '그래도'가 왔다.
'규하야, 컴퓨터나 전자 기계 같은 것들은 엄마가 고칠 수 없다고 했었지? 미안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고쳐줄 수 없어. 이따가 아빠가 오면 해달라고 하자.'
'왜 엄마는 못해?'
'응, 엄마는 그런 기기를 고치는 것을 한 번도 안 해봤어. 그래서 잘 몰라.'
'왜?'
'엄마가 한번 배워봤는데, 그래도 잘 못하겠더라고. 너무 어렵고 이해가 안 돼.'
'왜?'
....
왜라는 질문을 받기를 수십 번.
나는 아이를 붙잡고 눈을 마주 보게 고정시키고 목소리에 진지한 감정을 한껏 담아 말했다.
'규하야, 엄마도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어.'
그러자 골똘히 생각하던 아이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왜 그래?'
['왜'라는 질문의 축복]
아이가 의문사를 사용한 질문을 하려면 사용하고자 하는 의문사가 갖고 있는 개념을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의문사 이해 능력은 만 2-3세에 활발하게 진행되며, 4-6세 사이에 육하원칙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의문사를 거의 안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의문사의 발달 순서는 '무엇(만 2;5세)->누구(만 2;11세)->어디(만 4;5세)->왜(만 4;5세)->어떻게(만 4;11세)->언제(만 4세 이후)'의 순으로 발달한다(이정미 & 권도하, 2005).
즉, '왜'라는 질문을 말할 수 있으려면 우선 '무엇, 누구, 어디, 어떻게'의 의문사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인지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왜'는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과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추어야 가능한 질문이다.
아이의 입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왜'라는 질문은 아이의 언어발달과 성장에 있어서는 축복이자 마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는 아이의 내면에 담겨있는 언어의 샘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단어이자 아이의 지적 호기심이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마법 같은 단어인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하려면 아이의 머릿속에서 이런 복잡한 작업들이 완성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부모가 알고 있다면 그래도 이 고된 시기를 버텨 낼 힘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래도 너와 내가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하자.
-Reference-
이정미 & 권도하(2005). 2-4세 아동의 의문사 이해에 관한 연구, 언어치료연구, 14, 한국언어치료학회, pp185-204.
그림출처: by 초록담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