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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Aug 30. 2020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 되려면

아이가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부모의 질문법.

[참조적 의사소통 능력(referential communication)]

"참조적 의사소통이란 화용적인 언어 기술로써 물건이나 장소 또는 생각과 의견과 같은 특정한 '참조물'에 대해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

즉, 화자가 말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참조물'을 청자에게 설명하고자 참조물의 특징이나 속성을 선택하여 언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기술로는 지시하기, 설명하기, 기술하기 등이 있다. 또한 화자는 청자가 자신에게 집중/주목할 수 있도록 관심을 유도하고, 청자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화자가 자신의 말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김영태, 2002).


화자의 역할이 있다면, 청자의 역할도 존재한다. 청자는 화자가 말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피드백해 주어야 한다. 의사소통하는 것에 있어 청자의 능력은 화자의 말을 듣고 주제와 관련된 참조물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아동기에 있어 이러한 능력은 발달적으로 늦은 시기에 나타나며, 일상적인 대화에서 하는 것보다 더 높은 단계의 정보처리를 필요로 한다. 보통 이러한 참조적 의사소통 기술은 10세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보고된다(Bunce, 1991).


언어발달은 일반적으로 표현 언어능력보다 이해 언어능력이 선행된다. 그러나 참조적 의사소통 능력은 청자의 기술보다 화자의 기술이 먼저 발달하게 되고 청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영유아 시기의 어린아이들은 의사소통이 상호 의존적이라는 것과 청자가 되었을 때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반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거의 없다. 7세 이전의 아이들은 화자의 메시지가 모호하여 참조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잘못을 화자보다 청자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언어재활에서 학령기 아동에게 사용하는 활동 중에서 '장벽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이 활동은 아이와 치료사가 장벽과 같은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화자가 말하는 참조물에 대해서 청각적이고 언어적인 지시어에만 의지하여 목표 참조물을 골라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얼굴이 그려진 카드 6-7장을 화자와 청자에게 똑같이 제시해 준 뒤 서로의 장벽에 세워둔다. 이때 얼굴에는 여러 가지 악세사리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안경이 씌워져 있다면 그 안경은 별 모양, 네모 모양, 둥근 모양, 세모 모양 등으로 나눠지고, 같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면 모자의 색깔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으로 나눠진다. 장벽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했던 화자의 역할과 청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화자의 역할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내가 정한 카드를 골라낼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카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청자의 역할을 할 때에는 상대방의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야 하고, 나의 사심은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속 대화에서 누가 화자가 되고 누가 청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영유아기의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서는 대부분 화자는 부모이고, 청자는 아이가 된다. 그렇기에 적어도 10세 이전의 아이와 대화를 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이러한 참조적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 선상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던지거나 대화를 이끌어가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항상 부모는 화자의 역할만,  아이는 청자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말이 트이고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이는 반대로 화자의 역할이 되고, 부모는 청자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규하가 조잘조잘 말을 하기 이전인 두 돌 전에는 주로 내가 화자의 역할을 많이 했었다. 언어재활사로 살아오면서 구체적이고 쉽게 상황을 묘사하는 방법들은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기도 하였기에 아이와의 대화에서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가 점점 말이 늘고 서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익숙해진 나의 역할과 아이의 역할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나타났다.

아이가 화자의 역할을 마음껏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하루의 일과는 '생각하고 고뇌하는 로뎅'이 되어 아이가 내주는 수수께끼와 스무고개를 푸는 데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모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이제 갓 세 돌을 넘긴 아이였기에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상황을 묘사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답답함으로 울먹거리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집이 떠나가라 울기도 하였다.

아이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경험 중 인상 깊었거나 재밌었던 이야기를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에게 툭하고 건네는 것이 항상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엄마, 왜 그걸 가져갔대?"

"응? 뭘 가져가?"

"아니, 그걸 가져갔다고 그랬잖아."

"........... 누가 뭘 가져갔는데? 엄마가? 아님 아빠가?"

"아니~~~~~~~ 그거, 그거 있잖아. 어제 그거 가져갔다고 그랬잖아!!!!."


아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아, 그걸 가져갔대? 왜 가져갔을까? 엄마는 잘 모르겠네'라고 에둘러 말해도 상황을 대충 넘길 수 있었는데, 눈치가 빤해진 현재의 아이는 표정만 보고도 엄마가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이럴 때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알고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조금 울더라도 사실대로 이실직고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이 되었다.

아이가 그럴때마다 나는 답답해하며 우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항상 이렇게 말해주었다.


"규하야, 규하 머릿속에 있는 것을 엄마가 모두 알 수는 없어. 규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나 마음에 있는 것을 엄마한테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해줘야 엄마가 잘 알 수 있어. 엄마는 지금 규하가 말하고 있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어떤 건지 엄마도 알고 싶은데, 규하가 더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아이가 조금 진정이 되면 그때부터 아이와 나의 수수께끼 혹은 스무고개 놀이가 시작되었다.

"규하가 아까 말한 그거, 이름이 뭔지 알아?"

"아니, 몰라."

"그럼, 누가 가져간 거야? 엄마가?"

"아니, 어떤 아저씨가"

"어떤 아저씨가 그럼 언제 가져간 거야?"

"어제, 어떤 아저씨가 가져갔다고 방송에서 그랬잖아."


나는 그제야 아이가 어젯밤에 아파트 방송에서 흘러나왔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어떤 아저씨가 다른 사람의 집 앞에 잠깐 세워 둔 실내 자전거를 가져가 버려서 그 주인이 자전거를 버리려고 내놓은 것이 아니니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는 그런 생뚱맞은 안내 방송이었다.

아이는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특별했던 어제의 그 상황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자 그 이미지를 품은 채 나에게 이야기를 건넨 것이었고, 엄마인 나도 그 상황 속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참조적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해가는 시기의 아이에게서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실수 중 하나이지만, 어쩌면 부모인 우리도 아이에게 이런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말한다거나 상대방을 배려해서 질문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특히 나를 잘 모르는 타인보다는 나와 가까이에서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일수록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때문에 더욱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알고 있으니 당연히 상대방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상대방에게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면 나의 질문이 구체적이지 못했거나 어렵지는 않았는지를 되짚어보기보다 상대방이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거나 건성으로 대답한다거나 상대방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질문의 형태가 아이에게 이해되기 쉬운 수준으로 참조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지를 항상 고민해보아야 한다. 혹은 아이의 언어능력을 맞추기위한 노력으로 짧은 문장을 사용해서 아이에게 질문을 하지만, 아이가 참고해야 할 배경 지식들을 너무 많이 생략하거나 아이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실수를 종종 한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 혹은 아이의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시도할 때, 부모가 알고 있는 것을 아이는 모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전제로 해야한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상대와의 대화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긴장감을 갖곤 한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며 자신의 언어표현에 신경쓰고, 상대방이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한 뒤 대화를 이어나가듯이 아이와의 대화에서도 나의 언어에 그리고 아이의 반응에 조금 더 정성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Reference-
김영태(2002). 아동 언어장애의 진단 및 치료. 서울: 학지사.
그림출처: by 초록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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