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물 네 살 가을 무렵에 일이다. 당시 나는 대구에 어느 백화점 구두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10시간 넘게 손님들을 상대하고, 휴일은 한 달에 고작 두 번, 그 것도 평일에만 쉴 수 있었던, 그러고도 월급은 채 100만원도 받지 못한 청춘의 서글픈 날들이었다. 그 날도 일을 마치고 평소처럼 밤 10시가 넘어 집 앞에 도착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로 걸어가다 단골 편의점 옆에 얼마 전 개업한 낯선 가게가 눈에 띄었다.
‘경마면 경마지, 스크린 경마는 또 뭘까?’
그래 봤자 도박일 뿐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지만, 궁핍한 일상에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숨어있던 호기심이 깨어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가게 밖에서는 짐작 할 수 없었던 게임장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입구 반대쪽 벽 전체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서 아나운서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경마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드넓은 홀에 빼곡히 설치된 수많은 배팅기계의 좌석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 어두침침한 공간을 현란하게 수놓는 스크린 불빛과 무수히 반짝이던 게임기 점등 사이로 자욱한 담배 연기가 끝없이 일렁였다. 게임이 한 판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환호와 함성을 질렀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탄이 서린 욕지거리를 뱉었다. 한 쪽에서는 공치사를 늘어 놓으며 괜히 허리춤을 치켜 올렸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아쉬움에 벅벅 긁은 뒷머리 속 허연 비듬이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낯선 풍경을 바라보다, 잠시 후 맨 뒤 편 구석 자리에 어렵사리 앉을 수 있었다. 마음씨 좋게 생긴 주인 아저씨가 시원한 음료수부터 건네며 물었다.
“처음 오신거라예?”
“… 네.”
그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게임이었다. 배팅은 현금으로 하지만 승리배당금은 상품권으로 준다고 했다. 내 뻔한 주머니 사정을 눈치챘는지, 그는 돈을 너무 많이 걸지 말고 조금만 해보라는 조언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지갑 속에 고이 아껴둔 만원을 밑천 삼아 게임 속으로 뛰어 들었다.
김첨지 마냥 운이 좋았던 날이었을까? 내가 배팅한 말들은 출발 무렵에는 힘없이 뒤쳐지다가도 후반부터 폭풍 질주를 시작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끝내 역전을 일구며 결승점에 선착하는 나의 말들을 바라보다 참았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승리의 감정이었다.
제대한 친구들이 하나 둘 복학생으로 적응해 갈 때, 가장 먼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오로지 생계를 위해 뛰어든 사회생활. 처음 일년을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이후 반년은 백화점 점원으로, 늘 남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살아왔던 그 시간이 한스러웠을까? 그렇게 승리가 쌓일 때마다 어느새 펄쩍 펄쩍 뛰며 기뻐했고, 다 잡은 승기를 놓쳤을 때는 깊이 빨아당겼다가 뱉은 담배 한 모금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에 쥔 상품권이 차츰 늘어나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운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당률과 말의 컨디션을 적절하게 고려한 나의 냉철한 분석이 발휘되었노라 믿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날 출근 걱정에 11시가 막 넘어 일어 났을 때, 어느새 곁에 다가온 사장님은 영업 기밀을 누설하는 것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가게 밖에 주차된 승용차에 가서
창문을 두드려 보이소.
그라믄 거 앉아 있는 사람이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 줄낍니더.
반신반의하며 밖으로 나가보니, 가게에 들어올 때는 전혀 기억에 없던 고급 세단 자동차가 건물 앞에 떡 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운전석에 다가가 창문을 조심스레 두드리자, 이내 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험상궂은 남자의 손에는 현금 다발이 한 가득 쥐어져 있었다. 상품권을 내밀었더니 군말 없이 돈으로 바꿔주고는 잘 가라는 말도 없이 냉큼 창문을 올리던 남자. 헐레벌떡 집에 돌아와 작은 형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아~! 그 스크린 경마장.
거기 내가 아는 형님이 하시는 데다.
살벌하기로는 대구에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정도였던 이 동네에서 싸움 실력만으로 당당하게 어깨 펴고 다녔던 작은 형이었다. 그러니 새로 생긴 경마장이, 그 운전석 조폭이 구면이라 해도 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형은 그보다 헛똑똑이인 철부지 동생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만칠천원을 땄다는 것에 더 구미가 당기는 듯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게임은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도박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플레이 하는 고도의 전략게임이며, 비록 사행성 게임이지만 우리 같은 서민이 하루에 오천원에서 만원 정도 투자 해서 큰 욕심 안 부리고 용돈 정도만 벌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재테크 아니겠냐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마음씨 착한 형은 그런 내 말에 껄껄 웃으며 다음날 함께 가보자는 약속을 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런 일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 오락실 게임은 언제나 돈 넣은 지 3분을 채 버티지 못해 일어섰으며, 딱지치기랑 구슬치기는 동네 대표 호구, 짤짤이 판에서는 늘 요령 없고 눈치는 더 없는 허당이었다. 그런 나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던 작은 형은 이런 잡기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는 고수였다. 오락실 게임은 달랑 100원 넣고 하루 종일 놀다가 약이 바짝 오른 주인 아줌마한테 쫓겨났고, 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옆 동네 애들의 딱지는 반나절 만에 모조리 쓸어 담았다. 짤짤이나 고스톱에서도 탁월한 계산능력과 판세분석, 과감한 배팅으로 형은 늘 최후의 승자에 등극했다. 그런 형이 함께 해준다니 정말이지, 그 날 밤은 그 조폭 손에 있던 돈다발이 금세 우리의 차지가 될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와 형과 함께 경마장으로 향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입장한 나를 사장님은 “또 왔는교?” 하며 반겨주었다. 때 마침 비워진 목 좋은 자리를 차지 하고 앉아 우리는 예측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역전승에는 희열을, 아쉬운 패배에는 까닭 모를 개탄을 섞어서 게임에 열중했다. 자정이 넘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전날과 달리 고작 몇 천원 딴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형이 어제 나만큼 딴 것으로 만족했다. 경마장을 나와 어제처럼 차창을 두드렸더니 그 무섭게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형이 정중한 목소리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놀러 왔나?”
“네. 동생이랑 시간이나 때우러 왔심다.”
그 때까지 어찌할 바를 몰라 엉거주춤 서서 눈치만 보던 나는, 상품권을 바꿔주고 차창 넘어 사라지는 그를 향해 형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며칠간 형과 나는 스크린 경마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멍하니 텔레비전과 컴퓨터로 시간을 때우고, 때 되면 잠 들었다가 깨면 다시 출근하는, 그런 뻔한 쳇바퀴 삶에서 형제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유흥다운 유흥이었다.
그러나 형을 끌어들였을 때 금방 돈다발을 쥘 것 같았던 예상은 빗나가고, 어느새 나는 돈을 잃는 날이 더 많아졌다. 나와 달리 한동안은 돈을 따던 형도 차츰 수익이 줄다가 언제부턴가 돈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상황에 슬슬 염증이 났다.
내가 그간 게임이나 도박에 빠지지 않은 것은 실력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에 삼형제 중 막내라 그랬을까? 어릴 적부터 난 내 것을 잃거나 빼앗기는 것에 유난히 민감하게 굴었다. 그래서 딱지치기나 짤짤이를 하다가도 초반에 조금 딴 것을 잃기 시작하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고, 어느새 본전마저 잃기 시작하면 어떻게 게임에서 탈출할까 전전긍긍했다. 잃은 것을 되찾고 말겠다는 사내다운 기백은 가져본 적도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손해 좀 덜 보고, 자존심 덜 다치고 게임을 빠져 나올지 궁리한 소인배였기에 이제껏 게임이나 도박 따위에 중독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형은 나와 달랐다. 어릴 적부터 담이 크고 하찮은 승부에도 언제나 진지하고 침착하게 임했던 형은 당장 눈 앞의 손해에 쩔쩔맨 적이 없었다. 수세에 몰려도 늘 침착했고 불리했던 판세를 기어이 뒤집어 승리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냉정한 승부사, 역전의 명수, 너그러운 승자라는 칭호는 마땅히 그의 것이었다. 그런 자신을 기대 어린 두 눈으로 지켜 보는 동생 앞에서 돈을 잃기 시작하자 조급해졌던 걸까? 형의 배팅 금액은 차츰 늘어갔고 그런 형을 지켜보는 나의 죄책감도 커져만 갔다. 어느새 내 머릿속은 온통, 수렁에 빠진 형과 단초를 제공한 어리석은 나의 불행한 미래만이 맴돌았다.
오로지 분석과 예측으로 공정하게 승부를 한다 믿었던 스크린 경마가 사실은 기계로 승패를 조작하는 주인 손에 놀아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러나 형은 월급을 받아 넉넉한 판돈으로 그 간에 손해를 전부 만회하자고 했다. 난 그런 형에게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돈 보다 형으로서의 자존심과 체면을 잃은 것이 그에게는 더 속상한 일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한 그 날이 왔고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게임에 임했다. 그러나 1시간도 채 안되어 각자 10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잃고 말았다. 한 달 내내 사람들에게 굽실거리며 번 소중한 돈을 헛되이 쓰고 말았다는 뒤늦은 후회와 이 모든 일을 자초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이젠 정말 그만 하고 싶었다. 나 혼자서라도 그 진창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나보다 더 많은 돈을 잃은 형 옆에서, 내색조차 못하고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었다. 그 때 형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형을 따라 경마장을 빠져 나왔다. 집을 향해 걸어가다 내 어깨를 한 번 힘껏 주무르며 형이 말했다.
이제 충분하지? 우리 그만 하자.
그랬다. 형은 그 게임이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승패를 좌우할 수 없는 야바위판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그 시스템이 처음부터 어떻게 우리를 끌어들이고 또 피 같은 우리 돈을 날름 가져가는지 이미 훤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만칠천원을 땄다고 한껏 들떠 재테크 운운하던 철없는 동생을 야단치고 꾸짖기 보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밑거름 삼아 평생 잊을 수 없는 삶의 교훈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 순간 냉정한 승부사, 역전의 명수, 너그러운 승자로만 기억했던 형의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형이라고 인생의 모든 승부 앞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도 때로는 따라주지 않은 운과 불리했던 조건 앞에 패배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형은 그런 억울한 패배를 겪고도 유치하게 떼쓰는 법을 몰랐다. 오히려 승자에게 먼저 축하와 농담을 건넸고, 뒤끝 없이 다음을 기약하는 여유도 있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 앞에서는 미련 없이 물러섰고 사소한 조롱과 멸시 따위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형은 세상에 공평한 승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형이 중독자가 되면 어쩌나, 이제라도 나 혼자 빠져 나와도 될까 염려했던 것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날 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근처 호프집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였던 것 같다. 스크린 경마니 잃어버린 본전 따위는 집어치우고 다시 돌아온 징글징글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그 밤을 보냈으리라. 그러다 옛날 형이 윗동네 딱지 챔피언을 끈질긴 승부 끝에 제압하던 추억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켰으리라. 그 소주는 참으로 쓰고도 달콤했으리라.
2020년 7월 6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