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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Jun 28. 2020

엄마, 잘 가

수필


경북 영주군 단산면에는 딸만 넷인 집이 있었습니다. 그중 둘째 딸은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나무를 하고 밥을 지으며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머리도 명석했으나 가난했던 살림때문에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한 그녀는 고작 중학생의 나이에 서울 방적공장으로 취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는 법을 몰랐던 둘째 딸은 빠듯한 월급을 쪼개어 집에 생활비를 부치고 저축을 하며 사는 야무진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습니다.

24살이 되던 해 그녀는 경상북도 청송 산골짜기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오지마을로 소중한 딸을 보내기 싫었지만 늘 잘해왔던 둘째 딸이 내린 결정이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잘 살 것 같던 둘째 딸은 서른을 넘어 마흔이 될 때까지, 남자 아이 셋을 기르며 힘겹게 살아야 했습니다. 사위의 연거푸 사업실패로 변변한 집도 구하지 못하고 자식들을 홀로 책임지는 딸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손자들에게 얼른 성공해서 니네 엄마 호강 좀 시켜 주라고 간절히 부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딸에게 그 무엇도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딸의 집 근처에 조그마한 방을 하나 얻어 살며 딸이 외롭고 힘겨울 때마다 곁에서 위로하고 달래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유달리 자존심 강하고 힘든 내색 안 하는 딸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간직해 두었다가 엄마에게 찾아가 모두 털어놓고 실컷 울곤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년 중 성한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아진 날들을 보내던 그녀는 여전히 고단한 삶을 사는 딸에게 짐이 될까 살던 집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딸들이 억지로 병원을 데리고 가기 전까지는 아픈 내색하지 않고 그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외풍이 심하던 단칸방에서 염주를 하나 둘 세며 부처님께 자신의 딸들이 오직 잘 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얼마 전, 설날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내고 둘째 딸 식구들은 모두 그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생글생글 웃던 그녀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힘겨운 숨을 내쉬며 눈 뜰 힘조차 없던 그녀를 모두들 눈물 글썽이며 바라보았지만 딸만큼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왜 추울 때 가려해.
따뜻한 봄에 가. 응?"


단 한 번도 딸의 부탁을 거절해 본 적 없던 그녀는 다음날...  딸이 혼자 곁을 지키던 이른 아침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길고 길었던 연휴기간 동안 내가 꼭 지니고 살던 한 가지와 내가 늘 잊고 지내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꽤 큰 금액의 생활비와 신분증, 신용카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 등등 평상시 늘 지니고 다녀야만 했던 것들이었기에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만들 때까지 저는 잠시나마 참 불편한 삶을 살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를 여의었습니다.

1년의 대부분을 영주 시골집에 계셨기에 명절이 아니면 찾아뵙기도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늘 잊고 살아왔기에 연휴가 끝나는 당장 내일부터 저는 별 다를 것 없이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저는 세뱃돈 대신 담배 한 갑을 쥐어주시던, 살아생전 딸들에게 손자들에게 단 한번 화낸 적 없던 저의 외할머니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3일이 지난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삼 형제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어떤 일에도 결코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셨던 제 어머니는 막 돌아가셨을 때도 남들이 도착하기 전 먼저 다 우셨는지 애써 눈물을 참으셨지만 오늘 화장터에서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던 순간에는 엄마를 잃은 한없이 어린 사춘기 소녀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당신 편이 되어 주지 않은 적 없는 엄마를 보내며 그녀는 말했습니다.


엄마... 잘 가.


외할머니 좋은 곳에 가시고 다음 생에도 꼭 우리 엄마 편이 되어주세요.


2008년 2월 11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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