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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Oct 12. 2024

햄버거가 먹고 싶었을 뿐인데

모국어를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외국어 습득 순서나 속도가 달라진다.

말하기보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가장 더디고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 옮긴 학교에 처음 갈 때 편지를 써서 간 것도 말하기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도 점점 뜨이고 단어량도 늘어, 혼자 반년 만에 (구)HSK 7급을 좋은 점수로 땄지만, 중국어를 입 밖으로 내는 건 어찌 그리 어렵던지...

발음이나 성조가 틀리면 상대방이 못 알아듣거나 오해할까 봐, 성조로 인해 말에 억양이 생긴 게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중국에 간 지 10개월이 다 되도록 제대로 말하지 않고 지냈다.


내가 처음 살던 동네는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버스 종점에 있는 시골.

마치 옛날 영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마을 정경과 새벽시장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미니버스(작은 마을버스 크기)를 타고 시 중심에 있는 까르푸에 갔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다잡고 발음 연습을 해야 했다.

버스요금을 직접 통에 넣는 방식이 아닌, 예전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버스 안내양', 수금원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따로 하차 벨도 없어서 수금원의 정류장 안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제때 하차 의사를 직접 밝히고 내려야 한다.


큰 쇼핑 상가 건물로 들어가서 장난감 가게와 전자상가를 지나면 꽤 크고 넓은 까르푸 매장이 나온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조용하게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국 시골에서 언어와 생활에 적응하려고 힘겹게 애쓰고 있는 나를 잠시 잊게 된다.

당시 내게 그 쇼핑몰은 그냥 보통의 고등학생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까르푸에서 자주 사는 건 떠먹는 요구르트, 밀가루, 월병(검은깨), 냉동식품 정도.

쇼핑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웬만한 건 새벽시장이나 동네 슈퍼에서도 구매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 밀가루 질이 정말 좋았다.

어떤 걸 만들어 먹어도 맛있고 소화도 잘되는 살짝 누런 빛을 띠는 밀가루.

(중국 북방지역은 쌀, 남방지역은 밀이 주식이다.

한없이 직선으로 뻗어있는 중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밀밭과 옥수수밭을 지겹도록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한국에 온 중국인들은 대부분 북방지역 사람이다. 

예전에 같이 중국어 강사를 하던 남방지역 출신 중국인이 있었다.

하루는 힘없는 모습으로 내 자리로 오더니 자기가 배탈이 나서 한국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탈이  심해져 힘들다고 했다.

'배탈이 났는데 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이게 무슨 말이지?'

자기 고향에서는 배탈이 나면, 의사 선생님이 면을 먹으라고 한단다. 지금은 한국에 있으니까 그냥 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으로 대체했다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됐다.

밀을 직접 생산하는 국가, 밀이 주식인 지역은 배탈이 나도 밀을 먹는구나!


너무 답답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어느 날,

평소보다 더 큰 용기와 결심을 추가 장착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번엔 왜 더 큰 용기에다 결심까지 필요하냐고?

맥도날드에 가려고.

햄버거와 갓 튀긴 감자튀김을 먹고 싶어서.

하지만 스스로 정한 하루 소비 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라 '사치'를 해야 하니까.

게다가 중국어 말하기가 아직 두려운 내가 직접 말로 주문을 해야 했기 때문에.


탄산음료를 먹진 않지만, 가장 쉬운 주문 '세트'로 정했다.

주문대기 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연습을 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고 있는 도중, 주문을 받는 직원이 다 들리는 목소리로,

"오늘 왜 이렇게 벙어리들이 많아? 왜 장애인들이 다 나한테 오는 거야?"라며 짜증을 냈다.

안 그래도 자신감 없는 나에게 그런 '지나가는 말'은 아주 또렷하게 들리지.

작은 목소리와 손가락의 합작으로 어찌어찌 주문을 완료한 후,

'치, 지는 한국말도 못 하면서.'라고 작은 혼잣말을 내뱉는 걸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햄버거와 감자튀김도 맛있게 먹었다.


우리 학교 어문 선생님은 동북지역 방언이 매우 심한 할아버지였다.

말을 입안에서 먹으면서 한다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방언이 심한 발음이 더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양쪽 입꼬리는 (침이 뭉쳐) 늘 하얬고, 입술이 열릴 때마다 여러 가닥의 (...말하지 않아도 추측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이 보였다.


어문 수업이 시작되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간신히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노트에 뭐라도 적고 싶었지만, 칠판에 하는 판서는 전부 흘림체라 아무것도 필기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중국어 발음이 아주 어눌한 데다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걸 보고, 중국어를 아예 못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수업 중간중간에 나나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며 즐겁게 웃는 모습이 증거였다.

선생님의 입을 통해 지능 부족, 백치, 남조선 계집애, 벙어리, 농아 등의 단어들이 들릴 때마다 못 알아듣는 척을 하며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하면 되는데 왜 하지 못할까?'

답답해하며 자책하기도 해 보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기도 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이게 다 내가 언어를 좋아하고,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지.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는 쪽이 가장 잘 맞았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중국어 강사를 하고, 회사에서는 통번업무를 했다.

강의할 때 나와 비슷한 학생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여러 방법을 조언해 주면서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나의 자신감도 조금씩 채울 수 있었다.


개인 기호와는 다른, 글보다 말이 주가 되는 직업을 선택하고 생활하며 '말하기'에 충분히 익숙해졌지만,

난 여전히 말보다 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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