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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대학입시

by 철샌달

열아홉 살의 고등학생이 끝나가는 시점,

스무 살로 반년 더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한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나는 단순하게 유학생을 위한 대입 시험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대학을 알아본 적이 있다.

특별한 준비 없이 HSK 7급 인증서를 들고 중의대(中醫大)에 갔는데, 어서 오라며 격한 환영을 해줬다.

입학원서만 작성하면 들어올 수 있다고.


중국 의학을 배우는 대학을 HSK 하나로 들어가게 해 준다고?

졸업이 그만큼 어려운가?

아니 어렵다고 해도 입학이 이렇게 쉬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다른 일정으로 잠시 베이징에 가게 된 적이 있다.

대학에 다니는 언니들이 말해준 유학생의 대입 시험은

자기가 입학하고 싶은 학교에 각각 지원해서 학교마다 준비한 시험을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은 이미 알고 계셨던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일찍이 대입 시험 준비로 모든 과목을 과외받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스스로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애 혼자 사느라 고생이 많다고 엄청 신경 써주시는 것 같았는데 '역시 다 거짓이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내 머릿속을 스쳤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지만,

더 부지런하게 열심을 내어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베이징에 갈 일이 생겼다는 것과 그곳의 언니들에게 입시 전에 정확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닌가? 대입을 놓치지 않았고, 짧게라도 준비할 시간이 있으니까.


베이징에는 3대 대학(북경대학(北京大学), 청화대학(清华大学), 인민대학(人民大学))이 있고,

어언대학(中国语言文化大学), 북경사범대학(北京师范大学), 북경중의약대학(北京中医药大学), 경무대학(经济贸易大学), 전매대학(传媒大学), 중국영화학교(中国电影学院) 등 많은 대학이 있다.


유학생 시험은 3대 대학에만 있었는데, 과목은 어문(=국어), 영어, 수학, 지리, 역사, 중국개황(中国概况)에서 학교별로 추가하거나 생략하기도 한다.

*中国概况: 중국의 정치, 문화, 사회, 지리, 역사 등을 총괄하는 과목
※3대 대학을 제외한 학교들은 HSK 급수로 입학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몇몇 대학은 급수에 따라 2, 3학년으로 편입도 가능했다.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염려되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입학이 쉬운 대학이라도 졸업은 어렵다. '유학생 배려'란 중국 대학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중도 포기자나 졸업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3개 대학 중 2개 대학을 돌며 시험에 필요한 교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공부를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모든 시험이 당연하게도 주관식, 서술형이기 때문에 벼락치기나 '무조건 외우기'는 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쓸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을 것 같아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가 잠시 중국에 오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내 컨디션에 문제가 생겼다.

사랑니가 양쪽에서 살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고, 목감기에 걸려서 목이 부은 데다가 고열에 귀와 귓불까지 부었다.

찬 수건을 이마와 몸에 올리자마자 금세 뜨거워질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고, 목구멍과 입안, 귀가 다 부어서 입도 다물어지지 않는 상태. (아프거나 병원에 간 적이 거의 없었던 터라 더 힘들고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걱정은 끼쳤지만, 타이밍 알맞게 엄마가 함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병원에 가서 혈압을 재보니 심각한 저혈압이었다. (최고 혈압 55)

(아무것도 못 먹고 계속 고열에 시달렸으니...)

현대의학과 중의학(中醫學)을 같이 하는 종합병원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특이했다.

갑자기 진료실 중앙에 의자를 놓더니 나보고 거기에 앉으라고 한 뒤 눈을 감으라고 했다.

한참 뒤에 눈을 뜨고 옆 진료실로 가서 링거를 맞고 한약을 지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눈을 감은 동안 의사 선생님이 내 주위를 돌면서 태극권 하며 기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고 하셨다. (나만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그 광경을 모두 보셨다.)


보름 가까이 물과 미음, 한약을 먹으면서 입시를 준비했다.

그 와중에 중국에서 생활하며 찐 살이 다 빠졌다. (당연하다. 먹은 게 별로 없었으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회복이 더딘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다른 부분에서 신호가 왔다.

환절기마다 나를 괴롭히던 비염이 사라진 것이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중국에 가기 전으로 돌아간 몸과 비염이 나은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련 가운데 감사함까지 느낄 수 있다니!


시험날까지도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시험 볼 에너지는 필요했기에 뚜레쥬르에서 가장 부드러운 빵을 사서 몇 입 먹고 시험을 치렀다. (그 빵은 잊히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전공은 중국어!

한국에서도 국어 과목을 좋아했으니까, 중국에 왔으니 중국어를 더 깊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언어와 문화 배우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지원한 대학 중 한 곳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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