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샌달 Nov 16. 2024

자유롭고 바쁜 열아홉 살 (2)

날이 추워지면 난방이나 히터 대신 옷을 잘 챙겨 입는다.

사우나나 찜질방에 가는 것보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을 좋아한다.

답답함보다는 (코끝이 살짝 시리더라도) 상쾌함이 좋다.


중국에서 개인 사업체를 차려 운영하는 한국인 중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비중이 높았다.

유학교회 특성상 믿지 않아도 각자 여러 이유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인맥을 넓히기, 외로움, 같은 공동체 소속이라는 이점을 이용해서 본인 사업체 홍보, 재력 과시 등등)


당시 교회가 위치한 한인타운에 큰 규모의 찜질방이 두 곳 있었다.

모두 우리 교회 다니는 분이 운영하는 곳.

자주 청년부와 학생부에 찜질방 이용권을 나눠주셨다.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찜질방에서 긴장을 풀며 놀고 가라고.

그래서 내 가방 속에도 항상 이용권이 들어있었다.


청년부에서 봉사를 다녀온 늦은 밤에 다 같이,

(같이 씻기는 부끄러우니 언니들이 다 잠든 새벽에 무서움을 이겨내며 씻었다.)

친한 언니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한 날에,

물이 데워지는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쾌적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샤워하고 싶을 날...

알차게 찜질방 이용권을 사용했다.


# 랴오양(辽阳), 단둥(丹东), 압록강, 한 발 거리


5월에 참석했던 캠프에서 인연이 된 언니가 한 명 있다.

우리 교회를 다니지만, 청년부 모임은 참석하지 않아서 몰랐다가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언니가 한국에서 다니는 교회에서 단기선교 팀이 온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같이 중국어 통번역도 해주면서 중국의 다른 지역도 가보자고 하는 말에,

게다가 단기선교 팀이 오는 날짜도 딱 여름방학 시작 시점이라서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살던 곳이 동북 3성(헤이룽쟝성(黑龙江省),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辽宁省)) 지역이라서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북한이 가까운 편이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물건을 전달할 수 있다는 랴오양(辽阳)에는 조선족과 탈북민들이 숨 죽은 듯 조용히 살고 있었다

넓은 강 위에 커다랗게 놓인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다리.

삼엄한 경비로 인해 우리는 아주 멀리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지역에서 북한으로 물자를 조달해 주는 일을 하는 현지인분에게

북한 사람들의 생활, 어떻게 그들에게 물건을 전달하는지, 현지 상황 등에 대해 들으며, 이 분도 목숨을 내놓고 이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게 느껴졌다.


압록강이 있는 단둥(丹东).

그곳에는 랴오양과 다르게 끊어진 다리가 있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바로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신기했다.

잿빛 도시인데, 아주 커다란 (운행한 적 없어 보이는) 관람차와 (아무도 산 적 없는) 큰 아파트 같은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기나 불빛, 그 어떤 에너지도 넣지 않은 껍데기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첫인상.

압록강에는 여행객을 위한 유람선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걸 타면 압록강 한 바퀴를 돌며 북한을 최대한 가깝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인원을 나누어 유람선을 타고 북한 가까이 갔을 때 보이는 또 다른 신기한 풍경.

생활 흔적이 전혀 없는 낡은 건물들과 벽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빨간 글씨가 위협적으로 쓰여 있었다.


강변에는 마치 센서를 달아놓은 목각인형 같은 북한 아이들이 있었다.

유람선이 멀리 있을 때는 전혀 미동도 없다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누군가가 조종하듯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나간 뒤에 다시 마네킹으로 돌아간 모습까지 보니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소름 끼쳤다.


유람선에서 내린 후에 '한 거리'라는 곳도 잠시 갔다.

아주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 땅과 북한 땅으로 나뉘어 있는 곳.

보폭을 크게 폴짝 뛰면 북한 땅으로 넘어갈 만한 정말 가까운 거리에 보초 경계를 서는 군인들만 있는 곳.

북한과의 거리가 아주 짧다고 해서 한 발 거리라고 부른다고 했다.


# 10월, 국경절(国庆节, 10월 1일) 주간


몇 년간 5월 노동절 주간에만 열리던 캠프가 10월에도 열리게 되었다.

5월에 함께 했던 구성원 그대로 이번에는 '연변'이라는 명칭이 익숙한 '옌지시(延吉市)'로 향했다. (吉林省延边朝鲜族自治州)

역시 막내니까 기차 침대칸 상 층으로 자리를 배정받고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로.

지난번과 다른 점은 참가자가 아닌 스태프로 간다는 것. 그래서 캠프 시작 하루 전날 도착하게 갔다.


정신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캠프가 진행되는 내내 장염에 걸려 고생했던 탓에 더 기억에 남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캠프 마지막 날에 다 같이 백두산 등반한 일이 아닐까?

사진 속에서 천지까지 오르는 계단을 찾아보세요.

10월 8일.

날짜, 날씨, 함께 한 사람들, 모든 것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백두산. 

이때는 천지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 있었다. 


우리가 가기 전날 첫눈이 펑펑 내려서 올라가는 중에 바닥에 쌓인 눈을 뭉쳐서 먹고, 커다랗게 달린 고드름을 따먹으며 열심히 천지를 향해 올라갔었다. 


신비하고도 무서운 천지 물에 넋을 잃었다가 다들 직접 천지 물을 생수통에 담아서 집에 가져갔었다. 

천지 앞에는 천지 물을 끓여 컵라면을 파는 상인이 있었고.

 

겁이 매우 많았지만, 호기심으로 용기를 내던 어린 나의 모습을 회상하며...

이전 27화 자유롭고 바쁜 열아홉 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