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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Jun 03. 2021

엄마의 미역줄기와 아내의 콩나물

하나의 시점


사람들은 음악에 지나간 추억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마치 멜로디 안에 자신이 지나온 흔적과 오래전 숨소리가 서려 있는 것처럼. 때때로 음악을 들으면서 그리운 시절로 다시 돌아갈 것처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곤 한다. 그래 봤자 3분 남짓인 짧은 여행이지만, 그 여운만큼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추억과 사람을 떠올리게 하듯 음식 또한 씹으면 씹을수록 무언가 가슴에 깊이 박히는 순간들이 있다.



십여 년 전, 군대에 막 입대하여 훈련소에 있을 때였다. 고된 훈련을 받고 녹초가 되어 식당에 들어온 나는 그곳에서 점심으로 나온 미역줄기 볶음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초록색 반찬. 한 젓가락 집어서 먹으니 엄마가 해주던 미역줄기가 떠올랐고 눈앞에 보고픈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때 처음으로 집밥이 그립다고 느꼈다. 그것은 곧 엄마의 따스한 보살핌과 손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한 지금은 아내와 먹는 집밥에 익숙해졌다. 아내와 함께 만들어 먹는 음식들이 이제는 정다운 집밥이 되었다. 아내는 배달 음식이나 외식보다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음식들을 선호한다. 멸치볶음, 콩자반, 메추리알 장조림, 청양고추 장아찌 등 다양한 한식 반찬들을 좋아한다. 다만, 둘이 살다 보니 많이 하면 남기게 되고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이 대부분이어서 주로 반찬가게를 이용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의 원픽은 콩나물이다. 콩나물은 요리하기 참 손쉬운 재료이기 때문이다. 기호에 따라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콩나물에 국간장과 소금, 대파만 있어도 시원한 콩나물국을 끓일 수 있다. 그리고 전기밥솥에 깨끗이 씻은 쌀과 적당량의 콩나물을 넣고 지으면 되는 콩나물밥도 끝내준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 콩나물밥에 비벼먹을 양념장을 만드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콩나물 무침도 있다. 빨간 콩나물 무침을 좋아하는 우리는 다진 마늘에 파를 송송 넣고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어서 들기름두른 뒤에 쓱쓱 버무린다.




얼마 전 아내가 친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도 냉장고에는 콩나물 무침이 있었다. 식탁 위에 귀리밥과 콩나물 무침 그리고 멸치 볶음과 달걀말이만 있어도 한 끼가 뚝딱이다. 잘 도착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으며 콩나물 몇 가닥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집을 떠나 있는 건 아내였지만, 희한하게 콩나물을 삼키면서 집밥이 간절해지는 건 나였다. 아무래도 이 시점에서 집밥의 정의를 바로잡아야 할 것 같았다.


집밥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즉 가족과 함께하는 맛있는 시간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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