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에서 배운 성장의 본질
요새 취미로 스타크래프트라는 고전게임을 하고 있다. 어느새 민속놀이가 되어 버린 이 게임에서 나는 꾸준히 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초보 레이팅 구간에 속하는데, 이 구간의 사람들과 게임을 하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인생에서 요행을 바라면 안된다.
초보자들은 극단적인 전략을 많이 쓴다. 저그라면 4드론, 프로토스라면 5게이트 질럿러쉬 등 초반에 한번의 공격으로 끝낼 수 있는 전략을 많이 쓴다. 한 번은 프로토스 5게이트 질럿러쉬에 당해 상대방에게 "왜 이 구간 프로토스들은 그 전략밖에 안써요?"라고 물어봤는데 상대는 답이 없었다. 그런데 운좋게 다음 경기에서 방금 경기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자, 나는 속으로 "어디 한번 그 전략 또 써봐라, 이번엔 막아주마"라고 생각했는데 게임 시작과 동시에 상대방이 경기를 포기했다. 아마 똑같은 상대에게 똑같은 전략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포기 한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초보 구간에는 한가지 극단적인 전략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게 느껴졌다. 물론 극단적인 전략으로 초반에 승부수를 띄워서 승리하면 짜릿한 감정도 있고, 이겼으니까 기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장기적인 실력 자체를 키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런 극단적인 전략은 일정 수준 위로는 안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아무리 게임을 오래해도 점수는 그대로인 것이다. 그러고 이런 감정들의 기저에는 꾸준히 실력을 쌓기 싫다는 감정이 깔려있지 않을까.
인생에서 시험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4드론 같은 극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행정고시나 공무원 시험처럼 시간이 오래걸리고 경쟁률이 높은 시험들은 합격하지 못하면 뒤가 없어지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고시 공부를 하다가 포기했을 때 진로 전환시 공부했던 지식들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비슷하게, 대입 수능 시험도 대학교에가서 배울 지식들을 가지고 어떤 인생을 살지 계획하지 않으면 대학교에가서 길을 잃을수도 있고, 수능시험이라는 전략 자체가 극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많은 고등학생들이 수능 점수만 높으면 뭐든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시험 뒤에 오는 전략적 연결성이 없다면 체제 변환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개념이 확실하다면 수능시험을 잘 못봐서 학교 등급이 다소 낮더라도 전체적인 인생을 운영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어진다. 시험이라는 것이 인생의 전략이 된다면 그 전략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회복이 어려운 4드론과 같아질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로또를 산다거나 아니면 유튜브에서 단기간에 월천(한달에 천만원) 벌기, 누구나할 수 있는 부업 등과 같은 키워드를 끊임없이 찾아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빠른 시간에 성공하고 싶어한다. 이는 스타크래프트로치면 내가 만난 프로토스 유저처럼 5게이트 질럿러쉬만 계속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의 주력 아이템으로 앞마당 멀티, 타 스타팅 멀티 지역을 하나씩 차근차근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승부를 보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인데, 그러나 인터넷에 널리 알려져있는, 검색만 하면 나오는 무수히 많은 방법들로 그들이 원하는 경제적 자유를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이런 단기 전략에 심취하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레이팅이 정체되어 장기적인 성장도 생존도 어렵지 않을까. 인생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실력을 쌓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한계를 넘는 유일한 길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기다림의 중요성
나는 저그로 프로토스를 상대할때 럴커와 히드라로 방어진을 갖추면, 프로토스가 공격을 오고, 내가 그 공격을 막은 후 멀티를 하나씩 늘리는 식으로 플레이한다. 이런 상황에서 패배하는 프로토스들은 자꾸 게임을 빨리 끝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한번의 공격으로 이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런 조급한 마음을 추스리고 다잡으며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어느 프로토스와 한 경기 50분 게임을 했는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정석적인 질럿, 드라군, 하이템플러로 내 방어진을 뚫으려고 했는데, 그게 통하지 않으니 후반에는 갑자기 스카웃을 뽑았다. 본인 생각에는 기습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상 돈낭비에 가까웠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캐리어를 뽑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미 하이브 체제였으므로 디파일러로 피뿌리고 스컬지로 요격해 캐리어를 정리했다. 프로토스는 많았던 자원을 캐리어와 인터셉트 생산으로 돈을 낭비하게 되고, 뒤늦게 다시 질럿 드라군을 뽑으려했지만 그땐 이미 캐리어 뽑느라 돈을 다 써서 돈이 없는 상태였다. 내 생각에는 상대가 빨리 끝내려고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플레이했으면 좋았지 않나 싶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언론이나 유튜브에보면 20대, 30대의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벌어 사람들이 원하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후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도 하루 빨리 성공하고 싶어하는데, 바로 그런 조급함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체계를 신뢰하지 못하면서 순간적으로하는 감정적 선택을 조심해야한다. 내가 상대했던 프로토스가 갑자기 뽑았던 스카웃이라는 유닛은 불확실성을 참지못한 심리적 탈출구가 아니었나 싶다. 끝내는 것이 아니다. 끝날때까지 하는 것이다.
셋째, 복리의 법칙
저그로 플레이하다보면 멀티지역을 2개 이상 차지한 후 드론을 충원하면 미네랄 가스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가 있다. 그때 저그는 해처리를 다수 늘리고 병력을 많이 뽑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해서 실력을 향상시키게 된다면 처음에는 수입이 없어도 나중에는 수입이 늘어나는 시기가 생긴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는 돈을 남기는 것보다 잘 쓰는게 중요해서 해처리를 늘리고 병력을 뽑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는 수입이 생겼을 때 이 돈을 어떻게 잘 쓰면 인생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넷째, 핵심 개념 파악의 중요성
나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안지는 20년이 넘었지만 늘 실력은 제자리였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실력이 늘게 되었는데 20년 동안 늘지 않았던 실력이 최근에 늘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드론을 늘리는 타이밍과 멀티먹는 타이밍을 몰랐던 것이다. 이전에는 드론을 뽑아야 할 타이밍에 자꾸 병력을 뽑으니 돈은 없고 게임은 이미 져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다가 이 둘을 깨달으니 실력이 올라가더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에서 성과가 없으면 노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핵심 개념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 핵심 개념을 얼마나 빨리 찾고 깨닫는 싸움인 것 같다. 개발 실력을 높이고 싶다면 메모리나 컴파일 개념 없이 겉햩기 식으로 공부하거나 논리 구조의 이해없이 암기 중심으로 공부하면 시간 투자 대비 실력이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투자를 하는데 리스크 개념없이 수익률만 바라보고 투자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섯째, 유연한 체제 변환
저그라는 종족은 유연한 체제 변환이 특징이다. 초반에는 저글링을 생산하다가 중반에 히드라, 럴커, 뮤탈로 게임하다가 후반에는 디파일러를 추가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보면서 유연하게 체제를 변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랑 같이 게임했던 프로토스 역시 체제 변환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왜 패배했을까? 아마 상대방은 내가 지상병력 위주로 생산하니까 본인은 공중 병력을 생산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패배했는데, 어떤 요인이 체제변환의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것일까?
체제 변환은 단순히 '무엇'으로 바꾸느냐보다, 언제, 왜, 어떤 상태에서 어떤 문맥을 통해 바꾸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체제변환은 자원이 안정화된 상태에서 시작해야한다. 상대방은 캐리어를 생산했지만, 그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는 돈이 부족했고, 나는 상대방이 캐리어를 생산해도 디파일러와 스컬지로 바로 반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이는 현실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쌓이기 전에 업계를 전환한다거나, 리스크 관리 없이 창업을 시도한다거나, 준비없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케이스가 그러하다.
또한 체제변환은 상대가 대응하기 어려운 방향이어야한다. 현실로 예를 들면, 업계에 새로 진입했는데 경쟁자들이 이미 그 방향에 모두 진입해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인터넷에서 인기있는 부업이나 분야들을 시작하면 내가 진입했을때는 이미 수많은 경쟁자들이 포진해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리고 체제변환을 할 때는 자원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해야한다. 프로토스 캐리어는 고자원 유닛이다. 캐리어 자체도 비싸지만 전투중 인터셉터를 계속 생산해야하므로 유지비도 많이 든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자원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해야한다. 내가 어떤 분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시작 단계에서 배우는데만 시간과 노력, 비용을 지나치게 많이 투자하는 경우, 또는 엄청난 거금을 들여 신사업에 올인했는데 수익률이 낮은 경우가 그러하다.
그리고 본인의 체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프로토스의 질럿/드라군/템플러 조합은 후반에도 강하다. 그 조합을 계속 다듬으며, 리버 활용과 같은 디테일을 살렸다면 체제를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됐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에서도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갈고 닦을 수 있는데 조급함 때문에 체제를 바꿔버리는 선택을 하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 체제 변환이 아닌 회피성 탈출일수도 있다.
체제 전환이라고 썼지만, 사실 연결이 중요하다. 히드라, 럴커, 디파일러의 체제변환 순서는 기술, 리소스 관점에서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반면 질럿, 드라군, 스카웃, 캐리어는 기술, 리로스 관점에서 다 끊기는 느낌이 있다. 현실에서는 개발자로서의 삶이 지겨우니 갑자기 패션 관련 창업을 하는 등인데 이는 기술, 문맥적으로 단절적인 체제변환에 해당한다.
여섯째, 공부 방향의 중요성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닛을 생산할 때는 이 유닛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지를 미리 계획하고 생산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막연하게 "일단 생산해 놓으면 어딘가 쓸 일이 생기겠지"라는 마음으로 뽑게 되면 열심히 한 것과는 별개로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예전에 박사과정 공부를 할때, 그 당시에는 박사 학위가 있으면 그것이 곧 전문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전문가라면 어디든 취업할 곳이 있을 것이라고 나이브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지금 다시 돌아보면 그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실제 취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통계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현실에서 사용하는 정도에 엄청난 괴리가 있기 때문에, 배운 지식이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물론 배운 지식을 활용하지 않아도, 그저 취업 자체가 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오랫동안 연구한 지식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 실제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취업한 후에 방향을 잃었던 경험이 있다.
사실 학교라는 공간이 실제 리얼 월드와는 상당히 격리되어 있기 떄문에, 학교 안에서는 리얼 월드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아무리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이 있어도, 현실에서 내가 매일 보는 사람은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이나 교수들 밖에 없다. 즉,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리얼월드 사람이 아니라 학교라는 테마파크에 갖힌 사람들이다보니 정보가 왜곡되고 막연히 미래에 잘 될 것이라는 망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는 실제 사회와는 다르며, 가상의 질서와 룰을 가진 테마파크와 같다. 정보 구조가 폐쇄적이고, 성공의 기준이 사회성과 분리되어 있으며, 권위, 학위, 연구가 집단 내에서 작동하므로 나만의 사고회로에 갖히기 쉽다. 통계학의 경우에는 "통계학은 안쓰는 분야가 없으니 취업 시장에서 좋다"라는 식의 생각들이다. 이렇다보니 공부를 열심히하면서, 즉, 유닛을 많이 뽑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전장에서, 어떤 승리 조건으로 쓸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속에서 공부하던 나는 실전용 디파일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닌 쓸곳없는 스컬지만 계속 뽑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곳 타겟없는 유닛 생산, 전장 없는 전략과 같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자기개발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단어 외우기와 같은 공부들은 그 목적이 명확하면 당연히 도움되겠지만, 지금 해놓으면 언젠가 도움이 될 일이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는 안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심한 경우, 그 시간에 잠을 자는게 나을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학교를 박차고 나와 개발을 공부할때의 나는 동기부여가 확실했다. 나는 컴퓨터 공학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공부하면서도 해당 내용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이미 알고 있었고 내 공부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내용이 전장의 유닛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부한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실전에 투입 가능한 유닛이 된 것이다. 그렇게 공부한 나는 실제 업무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로 사용하면서 내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고, 이는 성장 속도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공부한 내용을 바로 적용하니 실력이 수직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운좋게도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의 시대가 되면서 이전에 공부했던 통계적 지식들이 도움이 되었다. 마치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스컬지가 상대 캐리어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무기가 되었던 것 처럼 말이다. 내가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지식이 나중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연결되어 내 삶의 강한 무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