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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대하는 태도 = 나를 대하는 태도

내가 느끼는 타인의 감정에 대한 해석

by 장철원

얼마전에 어떤 사람에게 크게 화가 났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화를 냈을까. 그 사람의 어떤 면이 나를 화나게 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과연 그런 면이 없을까? 같은 면을 가지고 있다면 혹시 인간은 모두 같은 감정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와 타인은 어떤 관계일까와 같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글은 그 고민에 대한 나만의 요약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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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도 결국 내가 가진 감정의 파편이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감정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어떤 감정이 주를 이루느냐,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개인의 개성이 달라진다. 즉,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어떤 모습도, 사실은 내 안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감정인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이 나속에는 5%를 차지하고, 그 사람에게는 80%를 차지하게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을 볼때는 그 사람의 특성이 내 안에 작게 존재하는 감정임을 떠올리면 분노가 조금 누그러지지 않을까.




만약 내가 질투심 강한 사람을 혐오한다면, 사실 내 안의 질투심을 혐오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그 감정은 내 안에도 어떤 식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미세한 비율로라도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인식하고 반응까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질투심이라는 감정도 사랑해야 할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그 자체로 옳고 정당하므로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옹호하라는 말은 아니고,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써 해당 감정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고 잘 다스릴수있도록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곧 나라는 사람을 확장시키는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감정을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또한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는 곧 나에게 몰랐던 면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타인은 내 감정의 비율이 다른 또다른 변형일 뿐인 것일까. 내가 화내는 대상은 타인의 감정이 아니라, 내 안에도 존재하지만 평소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내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곧 나를 대하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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