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극장판 무한성편 감상평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극장판 무한성편을 감상했다. 사실 평소 만화를 좋아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예전에는 1화 정도만 봤었다. 그래서 이번 극장판도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제작사가 다름아닌 유포터블이라길래 관심이 생겼다. 유포터블이 만들면 어지간하면 재밌기 마련이고, 요즘 애니메이션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확인해보고 싶어서 봤는데,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극장판들은 해당 작품의 팬들에게만 주로 어필하는 반면, 귀멸의 칼날은 평소 애니메이션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좋아할만한 면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작품을 보며 생각할 지점들과 재밌었던 점 등 나만의 관전 포인트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작중에서 번개의 호흡이라는 기술이 등장하는데 1형부터 6형까지 존재한다. 이 중 1형은 기본기에 해당하고, 2형부터 6형까지는 응용기술이다. 번개의 호흡을 쓸 수 있는 두 인물 중 젠이츠는 1형만 사용할 수 있고, 카이가쿠는 2형부터 6형까지 구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젠이츠는 기본기술만, 카이가쿠는 응용기술만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얼핏보기에는 화려한 응용기술을 사용하는 카이가쿠가 더 강해보이지만, 젠이츠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기술인 번개의 호흡 7형을 개발해 혈귀가 되어버린 카이가쿠를 물리친다.
작중에서 도장 사람들이 "카이가쿠는 기본기도 없는데 응용기술 써봐야 얼마나 강하겠냐"며 쑥덕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그 장면에 굉장히 공감했는데, 기본기가 없는 응용은 쉽게 부러지고 변화에도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AI를 활용한 수많은 응용 강의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자신의 강의만 들으면 "딸깍" 한 번으로 "월천만원"을 벌 수 있다고들 한다. 이런 강의들은 번개의 호흡 2형부터 6형에 해당한다. 반면 번개의 호흡 1형 강의는 인기가 없다. "AI의 원리", "AI의 기본이 되는 확률통계/선형대수", "컴퓨터 구조"와 같은 1형 강의들은 내용도 어렵고 추상적이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노력도 많이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분야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느낀것은 대부분 이런 1형 강의를 꺼려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본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나도 항상 1형 강의를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한다. 1형 강의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지만 막상 강의를 듣고 난 다음에는 만족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얼마전에도 1년 전에 내 AI 기초 강의를 들으신 분을 다른 수업에서 뵙게 되었는데, "강사님 수업 들으니까 다른 AI 수업 듣는데 엄청 도움이 되더라구요"라고 말씀해주셔서 엄청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본기 수업을 들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전문가가 되기를 추구하는 사회이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그 일을 하기로 정해졌다는 듯, 무언가 하다가 진로를 변경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인색하다. 요즘에야 N잡러 같은 단어가 나오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진로를 변경하는 사람에게 실패자 프레임을 씌우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작중에서 탄지로도 마찬가지다. 탄지로가 처음 배운 것은 물의 호흡인데, 막상 해보니 자신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해의 호흡을 추가로 익히게 된다. 만약 탄지로가 전문가를 추구하는 사회에 있었따면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간섭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물의 호흡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해의 호흡이냐", "이제와서 해의 호흡으로 변경할거면 애초에 물의 호흡은 쓸데없이 왜했냐"라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살면서 처음 익힌게 통계학인데, 평생 통계 전문가로 살겠다며 그것만 붙잡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품 초반에 도우마와 시노부의 전투장면이 나오는데, 언니를 복수를 하려는 시노부와 대비되는, 자만을 상징하는 도우마라는 캐릭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아닌 언니를 잃은 당사자가 옆에 있어 도우마의 성격이 더욱 돋보였다.
다양한 작품에서 '자만'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을 많이 봐왔는데, 도우마는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성우의 연기력도 탁월했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데스노트의 라이토 역할을 맡으셨던 분이라고 한다. 예전에 데스노트 볼때도 연기력이 엄청 좋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막판에 키라임을 들키고나서 연셜(절규?)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날 만큼 생상하다. 역시 뛰어난 사람은 누군지 모르고 봐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극장판의 사실상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카자. 이 캐릭터는 강함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보통 강함을 추구하는 캐릭터들은 스스로 고립되기 쉬운데 아카자 역시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대부분 혼자였고, 그나마 소류 도장에서 만난 케이조나 약혼녀 코유키와 친해지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나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다시 혼자가 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혈귀가 되어버린다.
혈귀가 되고 나서도 항상 수련을 통해 강함을 추구하는데, 그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아카자가 느꼈던 정서적 유대감의 상징인 코유키가 좋아했던 머리핀 모양이 술식 모양이 되고, 아카자가 구사하는 기술 이름도 대부분 코유키와 약속했던 불꽃놀이 이름인 것을 보면, 힘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카자에게도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카자는 스스로 강함을 추구하는 만큼 반대급부로 약자를 혐오하는데, 이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처럼 강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면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도 이런 면을 잘 보여주었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면서 여러 캐릭터들의 대결이 단순한 액션을 넘어 현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젠이츠와 카이카쿠의 대결에서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탄지로의 호흡 변화에서는 진로 변경에 대한 편견을, 도우마와 시노부의 대결에서는 자만과 집념의 대비를, 아카자를 통해서는 강함만을 추구하는 삶의 외로움을 봤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본기를 단단히 연마 하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성장하되 수중한 것을 잃지 말라는 것. 2시간 30분 정도 되는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작품 감상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