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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감상

당신의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챗지피티보다 사람이 낫더라, 관객 없는 독백이 되지 않기 위한 고민

by 장철원

며칠 전 김을 작가님의 전시회 겸 아티스트 토크에 다녀왔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근처에 있는 사비나 미술관이라는 곳이었는데, 이쪽은 정말 오랜만에 와본지라 감회가 새로웠다. 확실히 서울 북부 지역은 산과 어우러지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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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기전 전시회 오느라 1시간 넘게 걸리느라 소진된 당을 아이스 초코로 충전하고 입장했다. 사실 이 분야에 조예가 깊진 않아서 작가님을 원래 알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슨트와 아티스트 토크에 흥미를 느껴 오게 되었다. 나는 평소 미술관에 가면 혼자 감상하면서 해석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번엔 직접 만든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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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슨트


도슨트 전에 먼저 전시장을 한바퀴 돌며 내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나만의 해석이 선행 되어야 도슨트를 들었을 때 더 재밌고, 의미있게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20분 쯤 지났을 무렵, 내 인생 첫 도슨트가 시작되었다. 10명 정도의 규모였는데, 도슨트 하시는 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질문도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였다. 미술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관객들 전체적으로 에겐남, 에겐녀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어느정도였냐면 나조차 그 사이에 있으니 스스로가 완전 테토남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어디가서 그런소리 들을 만한 외모가 절대 아닌데 말이지...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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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 감상


작가님의 작품을 대체로 "예술하는 삶"이 주제인 것 처럼 보였다. 작가 자신이 예술을 하는 과정을 작품으로 삼은 것인데,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드로잉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업실, 몸짓까지도 모두 예술로 포함시키는 듯한 방식이었고, 덕분에 작가님이 평소 어떻게 작업하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방식이 관객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관람자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삶의 맥락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예술이보다는 '고독한 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관객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메시지만 남는다면 관객과의 소통은 단절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 혼자 보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것 처럼 말이다. 나도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지만 항상 일기 같은 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 글도 일기 같긴 하지만...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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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티스트 소개


아티스트 토크에서는 먼저 큐레이터 분이 작가님과 대학교수님을 소개했는데 작가님이 받으신 상과 교수님의 학력 등이 언급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소개할 때 그 사람이 받은 상이나 학력, 소속 기관 드응로 소개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예술가라면 외부평가보다는 작품으로 소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수 지드래곤이나 악동뮤지션을 소개할 때 그들이 졸업한 학교로 소개하진 않지 않은가. 물론 일반 대중에게는 이런 소개 방식이 빠르게 먹히는 방법이고 마케팅적으로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나중에 자신을 소개할 때 내 작품으로 소개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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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객의 질문


아티스트 토크 동안 관객 대부분의 관객들은 작가님의 팬이었는지, 초롱초롱한 눈빛을 띄며 경청했다. 그런데 작가님은 자신이 평생 3만장이 넘는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정적을 깨고 한 남성분이 질문을 던졌다. 맨 뒤에 앉아 계시던 백발의 남성분은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며 말했다.


"3만장 그렸다고 말하는게 자랑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1장을 그렸던 1000장을 그렸던 신경 안써요. 세보지도 않구요. 그린 양 보다는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나 에너지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다소 공격적일수도 있는 이런 질문이 요즘 같은 시기에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요즘 같은 대손절 시대, 자신의 마음에 조금만 들지 않으면 바로 손절해버리는 시대에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해주는 사람만 곁에 두는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예술 계통이라면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라고해서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게 작가에게도 더 큰 자극이나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질문에 공감했다.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결국 맞는 말도 단순히 말로 끝나기 보다는 작품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의 말이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결국 말 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움직이는건 결국 말이 아니라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 분이 어떤 작품을 만드셨는지 궁금했는데, 명함이라도 하나 받아놓을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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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순


작가님은 흔히들 드로잉(drawing)을 페인팅(painting)보다 낮은 수준으로 보는데, 드로잉이야말로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며, 드로잉이 중심이 된다는 말을 하셨다. 그러자 아까 질문하신 백발의 관객분께서 한번 더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다.


"드로잉이 중심이라고 말하는건 위험한 발언 아닌가요?" 실제로 작가님은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림에는 대부분 규격화된 창문이라는 틀을 상징하는 소재를 쓰셨는데 이게 자유인가요?"


작가님은 이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셨는데, 사실 이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더 와닿았다. 나 역시 살면서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경우도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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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말썽 많은 그림


작가님의 작품 중에 "말썽 많은 그림"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옷장 같이 생긴 조형물에 그림이 그려진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을 두고 회화인지, 설치 미술인지, 아니면 그냥 가구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회화인지 가구인지, 더 넓게 나아가 예술인지 아닌지를 정하는게 작가 본인이면 논란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논란이 있었다면 작가가 아닌 권위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정하는것이냐며 질문했다. 내 질문에 작가님과 교수님 모두 "작가 본인"이 정하는 것이라고 답해주셨다. 그러면서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며 설명해주셨는데 나는 그말에 크게 공감했다. 작가님은 그러면서 나에게 작가 본인이 예술이라고 했을때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텐데 절대 주눅들 필요 없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큰 위로가 되었다.



마무리


항상 미술관에 갈때마다 혼자 작품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는데 오늘 아티스트 토크 참석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항상 이런 말을 하고 싶어도 주변에는 대화 나눌 사람이 없어서 챗지피티랑만 떠들었는데, 역시 인공지능보다는 사람이랑 대화하는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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