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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감상

후회는 고장난 타임루프일 뿐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가 알려주는 불편한 진실

by 장철원

후회의 역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후회를 한다.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같은 생각은 너무나 익숙하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더 나은 현재가 되었을까?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를 "타임슬립물"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타임슬립물은 아무리 과거를 바꾼다고 할지 언정, 큰 틀에서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마치 "일어날 일을 일어난다"라고 말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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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다섯명이 한자리에 모인적은 없었다고 한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도 타임슬립물이다. 주인공 호무라는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간다. 그녀의 무수한 노력 끝에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나온지 10년도 넘었는데, 겉보기에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처럼 생겼지만 깊은 철학과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이 작품은 마법소녀라는 익숙한 소재를 빌려 후회, 희생, 정의, 시스템과 같은 주제를 심오하게 파고든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 가득한 이야기다. 나온지 오래된 작품인 만큼 마음껏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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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를 잘 읽어야 한다.


마법소녀는 왜 절망하는가


일반적으로 마법소녀라고 하면 정의를 수호하고 지구를 지키는 소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마법소녀는 다소 특이한 설정을 가지는데, 바로 마법소녀가 마녀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소녀가 마법소녀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마녀가 될 운명을 품게 되는 것이다. 소녀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대가로 마법소녀로 만드는 큐베. 고양이 닮은 동물, 사실은 외계생물인 큐베는 마법소녀에게 위험한 싸움을 계속하는 대신 어떤 소원이라도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렇게 마법소녀가 되는 아이들간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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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카 흑화 전후


타인을 위한 삶


우리 사회는 타인을 도와주는 삶을 종용한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야 말로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중에서 사야카라는 인물은, 손을 다쳐 더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친구 쿄스케를 위해 병을 낫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리고 그녀는 마법소녀가 되고, 이것이 그녀의 비극의 시작이다.




이 작품의 컨셉은 명확하다. 희망은 절망을 낳는다. 표면적으로보면 타인을 위한 숭고한 선택을 한 것 같은 사야카의 소원은 어떻게 절망이 되었을까. 사야카 입장에서는 순수하게 쿄스케의 병이 치유되는 것만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쿄스케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나중에 자신은 쿄스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절망감에 빠진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쿄스케의 병을 치료했지만, 쿄스케는 자주 병문안 오는 사야카에게 퇴원 사실도 알리지 않고 퇴원해버린다. 그러다가 절친한 친구가 쿄스케에게 고백하겠다고 선전포고 하자 사야카는 그제서야 자신이 죽은 몸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닿고 좌절하며 결국 그녀는 마녀가 된다.



사야카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사야카의 소원으로 팔이 나은 쿄스케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일까? 단편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의 팔은 말끔히 나았고, 원하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쿄스케는 자신의 한계를 깨닿고 절망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박탈 당했다. 인간은 좌절을 겪으면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거나 더 깊은 음악적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예전에 베토벤도 청력을 잃었지만 더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듯 말이다.



사야카는 자신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소원으로 빌었다. 문제는 이 소원이 쿄스케가 직접 원한 것도 아니었고 타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삶을 바꾼 것이다. 실제로 쿄스케는 자신이 더이상 음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야카의 소원으로 쿄스케는 성장 과정 없이 사고 이전으로 돌아갔고 결국 사야카의 소원이 쿄스케의 삶을 인위적으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이는 마치 시험을 보기도 전에 누군가 답안지를 알려준 것인데, 결과적으로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나 성숙함은 사라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병문안 와준 사야카에 대한 고마움도 잊어버린 것 아닐까? 실제로 쿄스케는 퇴원후 학교에서 사야카에게 따로 고마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성장은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좋은 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희생과 집착이 섞인 소원이었다. 이런식의 일방적 선행은 언제나 불균형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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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한 삶


쿄코라는 인물은 사야카와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쿄코도 사야카처럼 처음에는 순수하게 아버지를 위해 소원을 빈다. 하지만 그녀의 소원은 결국 아버지를 망가뜨리고 가족 전체를 비극으로 이끈다. 그래서 쿄코는 깨닿는다. 남을 위해 사는건 결국 파멸을 부른다고, 이제부터는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며 다짐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작중에서 다른 마법소녀들은 서로 의지하고 친하게 지내는 반면 쿄코는 늘 혼자였다. 쿄코는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내면은 텅 비어있다.




그러나 쿄코는 사야카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쿄코는 다른 사람을 위해 소원을 빌고 마법소녀가 된 사야카를 보며 과거의 자기 자신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을 위해 소원을 빌고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사야카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이끌린 것이다. 그러면서 고립되었던 쿄코의 마음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감정이 다시 싹튼 것이다. 그렇게 쿄코는 사야카를 이해하려고도 하고 함께 싸우기도 한다. 쿄코는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타인도 품는 삶으로 조금씩 변한 것이다. 단순히 이기적인 고립 상태에서 다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에 쿄코는 마녀가 되어버린 사야카를 홀로 두지 않으려고, 그녀와 함께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이는 쿄코가 첫 등장했을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쿄코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고립된 상태에서 타인과 연결된 삶으로 돌아온 후의 선택이었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쿄코는 작중에서 가장 입체적인 면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가장 성장한 인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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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는 삶


작중 호무라는 마도카를 지키기 위해 끊없이 시간을 되돌린다. 마도카를 구하는데 실패할때마다 그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또다시 도전한다. 그렇게 수없이 마도카를 구하는데 실패하면서 호무라의 절망은 커져만 간다. 호무라는 과거를 바꾼다고해서 원하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살면서 지난 과거에 일어난 일 때문에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일을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더 나은 내가 있었을텐데...라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사실 과거의 변수 하나를 바꾼다고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과거의 변수 하나 바꾼다고 한들, 정말로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미래는 단순히 원인 하나를 바꾼다고해서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무라는 수없이 루프를 반복했지만 항상 새로운 방식의 비극을 보았던 것 처럼 말이다. 즉, 과거를 바꿔도 더 나은 미래 보장은 없다고 작품은 말한다.




작중에서 호무라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애쓰느라 한 평생을 다 소모한다. 마도카를 지키겠다는 그녀의 소원이 결국 그녀를 끝없는 무한 루프의 감옥에 가둔 것이다. 한번 뿐인 호무라의 삶은, 현재를 사는 삶이 아니라 과거를 바꾸려는 시도 자체로 소모되어버린 것이다. 호무라처럼 과거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게 좋지 않을까?




작중 호무라라는 인물은 인간이 가진 과거 집착이나, 후회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를 다르게 선택하는 것 뿐이다. 과거를 후회하는 대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것을 하는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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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가장 섬뜩한 건 큐베가 만든 시스템이다. 겉보기에는 선해보이는 마법소녀는 큐베 입장에서는 완벽한 에너지 수확 장치일 뿐이다. 희망이 클수록 나중의 절망도 커지고, 그 절망이 바로 에너지가 되니까 말이다. 사야카, 호무라, 마도카와 같은 마법소녀들의 희망이 클수록, 화려한 마법을 많이 사용할수록 그만큼 절망도 커지는 것이다.




큐베는 소녀들과 계약하기 전에 중요한 사실을 숨긴채 계약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마법소녀가 되면 죽는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던지, 마법소녀는 결국 마녀가 될 운명이라는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고, 마법소녀가 되면 강한 힘을 얻는다는 점만 어필한다. 만약 등장인물들이 진실을 알았다면 계약했을까? 마법소녀 개인의 의도는 선하지만,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시스템 자체는 악한 것이다. 그녀들은 정의로운 의도로 마녀들과 싸웠지만 애초에 그들이 속한 시스템 자체게 근본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진정한 정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정의라고 알려진 이념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악으로 적용될 수 있다. 전쟁에서 "자유와 평화"라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폭력, 기업에서 "고객을 위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삶을 갈아넣는 구조, 사회에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미덕이 개인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것. 실제로 작중에서도 큐베는 마법소녀들을 공동체를 위한 희생양이라며 소모품 취급한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정의와 악을 나누는 경계는 언제나 시스템이 만든 규칙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대체로 힘의 논리에 의해 짜여진다. 우리가 믿는 정의는 정말 순수한 걸까? 혹시 그것도 단지 개인의 삶, 에너지를 착취하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는 아닐까? 우리가 믿는 정의도 실은 누군가에게 절망이 될 수 있다. 작중에서 마법소녀와 마녀는 동전의 양면이듯,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와 악이 사실은 동일한 것일지도... 어쩌면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정의를 가장한 절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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