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번출구 감상평
8번출구는 게임 원작이다. 나는 처음에 8번출구를 영화로 만들었다길래 이 게임을 영화로 만들만한 분량이 되나 싶었다. 왜냐하면 원작인 8번출구 게임은 단순한 틀린그림 찾기 형식으로 메인스토리가 있는 게임도 아니고 틀린그림 잘 찾으면 1시간 이내에 클리어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때는 간단한 게임을 영화로 만들 정도인 감독의 실력을 보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간단한 게임이 2시간 분량의 완결성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감독의 메시지도 명확히 전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인상 깊었던 캐릭터들이나 설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주인공은 반복되는 구조속에 8번출구를 찾아 헤메인다. 이상현상을 발견하지 못하면 끝없이 반복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하며 지하철을 타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과 같다. 특별한 결심을 하지 않는 한 이 일상은 반복된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순식간에 1년이라는 날짜가 지나갔던 사실을 깨닫고 놀랐던 내가 기억났다.
그렇다면 진짜 탈출할 수 있는 출구인 8번출구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진정 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알아내지 못하거나, 인생 속 이상현상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진정 자신의 원하는 출구로 나가지 못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속에 살아가는 것을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작중에 등장하는 이상현상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상현상을 우리 일상에서 가끔 일어나는 특이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이한 일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하는 날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볍게 그린 만화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날일 수도 있다. 혹은 아무 생각없이 본 영화나 공연이 될 수도 있다. 늘 하던 일에 갑자기 "이게 맞나?", "왜?"라는 의문이 생기는 날일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은 진실이 잠깐 얼굴을 비추는 순간이다.
중요한건 이상현상을 알아채야하고, 알아챈 후에는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취해야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현상을 발견해도 무시하고, 평소와 똑같은 루틴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처럼 말이다. 작중에서 뒤로가라는 의미는 맹목적 전진을 멈추라는 의미이다. 이상현상이 나타나면 뒤로가야 살아남는다. 현대사회에서는 언제나 앞으로 가라고, 성장하라고, 버티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방향이 잘못된 길이라면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상현상을 무시하고 관성대로 쭉 나아가면 나를 반기는건 8번출구가 아니라 0번출구이다.
그렇다면 이상현상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영화에서는 뒤로가라는 표현을 썼지만, 현실에서는 이상현상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스스로가 왜 이상하게 느끼는지 물어봐야한다. 이상현상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각성의 기회다. 그걸 무시하고 전진하면 아저씨처럼 가짜 출구로 떨어지고, 반대로 제대로 인식하고 뒤로 간다면 꼬마처럼 진짜 출구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작중에서 꼬마가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 순수한 나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어른들은 계속해서 불안과 조급함, 욕망에 휘둘린다. 반면 꼬마는 그런 것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규칙을 따른다. 작중에서 꼬마는 이상현상을 발견하는 센스가 아주 좋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한번도 틀린적이 없다. 꼬마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될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이상한 부분을 가리킨다. 중요한건 꼬마가 가리키는 이상현상을 받아들이느냐, 무시하고 지나치느냐이다. 당신 내면에 있는 꼬마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영화에서는 아저씨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NPC인줄 알았던 아저씨 역시 8번출구를 찾아헤매인다. 아저씨는 게임을 꽤 잘한다. 이상현상에 대해 어느정도 잘 알고 있고, 꼬마와 함께 침착하게 풀어나간다. 가끔가다 감정적이 될때도 있지만 이윽고 아이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미소지으며 사과한다. 하지만 그런 아저씨도 6번 출구에서 아이가 가르키는 이상현상을 무시한다. 중간에 있는 문이 이상하다며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아이에게 아저씨는 거기서 뭐하냐며 아이를 강제로 끌고 간다. 그리고 도착한 0번 출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또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시작해야한다는 사실에 아저씨는 화를 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랫듯 화를 내며 미안하다며 꼬마에게 사과를 하고 자세히 살피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그리고나서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평소와는 다른 오르막 계단이 보인다. 마치 밖으로 나갈수 있는 출구처럼보인다. 아저씨는 흥분하며 당장 계단위로 뛰어 올라가려고 한다. 하지만 꼬마는 아저씨가 나가지 못하게 옷을 잡아 당긴다. 그렇다. 이상현상인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방금전 실수를 잊어버린채 또다시 꼬마의 목소리를 무시한다. 그렇게 아저씨는 계단위로 뛰어 올라가고 NPC가 되어버린다.
우리 사회에서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겉보기에 쉬운 해답을 쫓아가는 경향이 있다. 당장 경제적인 부분만 봐도 월 천만원 버는 강의가 조회수가 잘나오고, 서점에는 관련 베스트셀러가 시간이 지나 스태디셀러가 된지 오래다. 아저씨가 계단을 발견하고 이성을 잃고 헐레벌떡 뛰어 올라갈때 꼬마는 끝까지 규칙을 지키면서 이상하지 않은 길로 나아갔다. 감독은 아마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는 태도를 선택하는 사람만이 진짜 8번 출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주인공도 평소에 일어나는 이상현상을 타인의 일처럼 대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을 나와는 상관없다면서 지나친다. 하지만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은 8번출구를 찾는 일이 다른 사람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끌려 들어간다.
주인공은 사실 그 세계를 만든 장본인은 아니다. 그저 매일같이 지하철을 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평범한 공간이 지옥으로 바뀌는 사건을 경험한다. 아마 감독은 평범한 일상 자체가 이미 지옥과 같은 구조라며 사회비판을 하고 싶었을까. 주인공은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그냥 참고 견디며 사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이상한 지하철에 타고 있으면서도 이건 그냥 출근길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 공간은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모호하다.
현실처럼 보이던 아저씨가 NPC가되고,
현실처럼 보이던 여고생이 괴물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