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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감상

'서울자가', '대기업 부장'이 아닌 김낙수 이야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감상평

by 장철원

최근에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는데 제목부터 기가 막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제목만봐도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제목의 의도가 분명히 보인다. 이 드라마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타이틀이 모두 사라지고 자신의 이름만 덩그러니 남았을때, 그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지 보여주는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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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이 곧 정체성인 현대인


"서울 자가"는 부동산을 의미하며,
"대기업"은 직장,
"부장"은 회사 내에서 직급을 의미한다.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욕망을 모두 보여준다. "서울 자가"는 안정적인 자산을 상징하며 "대기업"은 사회적 인정, 그리고 "부장"은 권위, 서열을 나타내며 타인에게 부러움과 선망을 받는 타이틀이다. 사람들은 나를 소개할때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들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자가, 대기업, 부장과 같은 화려한 타이틀로 소개하는데 사실 이것부터 비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이라는 단어로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라는 제목에는 정작 실제 이름인 김낙수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형태의 자기소개를 들으면 부동산도 있고 직장, 직급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자기소개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맹이 없는 자기소개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점이다.




이런 자기소개 방식의 문제는 자신을 설명하는 타이틀이 모두 외부 시스템이 부여한 것들이라는데 있다. 집값이 폭등해서 평생을 일해도 구하기 어려운 서울 자가, 입사하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하는 대기업, 그리고 그 대기업이라는 거대 시스템이 부여한 부장이라는 직책, 이 모든 것들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 밖의 외부 시스템이 김낙수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것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착각하고 평생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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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이 없는 나를 마주할 용기


외부 시스템이 부여한 타이틀의 진짜 문제는 내 이름 앞에 있던 수식어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하면 정체성도 함께 붕괴된다는 것이다. 실제 작중에서 주인공 김낙수는 자신을 꾸며주는 타이틀을 모두 잃게 된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서울 자가를 팔고, 부장이라는 직급이 박탈되면서 대기업에서 퇴직한다. 결국 그에게 남는 건 "김낙수"라는 이름 세글자 뿐이다. 타이틀을 잃은 주인공은 당황한다. 예전에는 누군가 자신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때 대기업(ACT) 부장이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인공은 작중에서 "대기업 25년차 부장", "나 부장이야 부장, 어디 과장이랑 비교를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퇴사를 한 이후에는 더이상 자신을 소개할 수가 없다.




나도 예전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을 때 정확히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내 이름 앞을 꾸며주는 회사나 직급이라는 타이틀이 없게 되자 마치 벌거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미래의 자신이 될지도 모르는 김부장의 모습을 보고 잔인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서울 자가 갖고 싶고, 대기업 다니고 싶고, 부장이 되어 남들보다 나은 타이틀을 자랑하며 자기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주인공이 타이틀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장면이 공포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타이틀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몸까지 상해가며 억지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 "박사","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학생으로 사는 사람,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싶어서 낮은 연봉과 열악한 근무 환경을 견디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 등 셀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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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낙수, 그가 사기를 당한 이유


자신을 꾸며주는 화려한 타이틀을 모두 잃어버린 김낙수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월천낙수". 한 달에 천 만원 버는 김낙수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인 월천낙수도 마찬가지로 외부 시스템이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대기업 부장에서 "월천"으로 바뀐 것 뿐이다. 나는 껍떼기를 모두 잃은 김낙수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또 다른 껍떼기에 매달릴 뿐이었다. 사실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은 꽤 두려운 일이다. 작중에서 김낙수 역시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으니 수식어를 잃자마자 또 다른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여 자신을 꾸미는 느낌이었다.




더큰 문제는 월천낙수라는 수식어를 부여한 사람이 부동산 사기꾼이었다는 것이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리고 상심한 김낙수에게 사기꾼은 그 틈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격했다.


우와~ 어쩐지 사장님, 진짜 대기업 임원 출신 같았어요!!


단순해보이는 이 한마디가 어떻게 김낙수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었을까. 이는 단순한 아부가 아니라 김부장의 잃어버린, 미쳐버릴 정도로 갈망하던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자신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며 낙담하고 있던 김낙수에게 사기꾼은 당신은 여전히 대단한 사람이라며, 임원급이라며 김낙수가 간절히 원하던 타이틀을 부여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대기업 부장 출신 정도 되는 똑똑한 사람이 저렇게 말도 안되는 사기에 당하냐며 비판하지만 사기꾼의 가장 강력한 기술은 그 사람의 상실감을 정확히 건드리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김부장은 부동산에 속은 것이 아니라 타이틀에 대한 집착에 속은 것이다. 이는 작중 김부장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부에서 부여한 타이틀을 잃어버린 순간 가장 취약해진다.



이직에 성공하면 김부장 탈출?


인터넷에서 인상깊은 김부장 드라마 감상평을 본적이 있다. 작성자는 굉장히 신이 나있었다. 그는 자신도 김부장처럼 회사에서 쫓겨날뻔 했지만 자기개발을 멈추지 않고 성장한 끝에 미국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며, 김부장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는 드라마속 김부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50세에 퇴직하든 55세에 퇴직하든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한국 회사라는 수식어가 미국 회사로 바뀌었을 뿐이며 결국 회사 없으면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 개발을 멈추지 않고 성장했다고 했는데 그가 개발한 기술은 대부분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용도의 기술이나 자격증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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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자기소개 타이틀, MBTI


타이틀 중독과 비슷한 맥락으로 MBTI를 생각해보자. MBTI는 어떻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사람들은 왜 MBTI에 집착하는 것일까. MBTI 역시 사람들의 외부 시스템이 만든 자기 소개용 타이틀이다. 기존에 자신을 소개하던 직업, 학력, 회사명, 직급 등에 MBTI가 추가되어 어느새부터인가 자기소개를 할때 MBTI 소개 역시 필수요소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MBTI가 재밌어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ENFJ라서 사람 좋아해", "나는 ISTP라서 기계 잘 다뤄"와 같이 말하는 순간 기존에 불확실했던 내가 특정 카테고리에 소속됨으로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안도감을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은 아주 오래 걸리고 힘들고 불확실하다. 그런데 MBTI는 10분만 투자하면 바로 결과가 나오고 이해하기도 쉽고, 바로 내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면서 같은 유형들끼리 유대감도 느낄 수 있고, 내 유형은 특별하다는 자부심(?)까지 생긴다. 게다가 개인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수도 있는데, MBTI는 좋은 면죄부가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은 INFP라서 예민하다는식이다. 뿐만 아니라 처음만난 사람과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기도 좋으며 SNS와 궁합도 좋다.




물론 MBTI는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닌 나 라는 사람 밖의 외부 기관이 표준화된 결과로 성격 유형을 분류한 것이므로 개인 특징은 포함되지 않는다. 총 16가지 유형으로 전세계 인구 80억 명을 나누면 1개 유형당 5억명이다. 나와 같은 MBTI가 전세계에 5억 명이나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나는 INFP야"와 같은 말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MBTI가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정확한 답변이 가능하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애초에 스스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알기 위해 MBTI 테스트를 하는것인데 전제조건으로 자신을 잘 알아야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 기입식 테스트의 문제는 실제의 나를 체크할 수도 있고 되고 싶은 나를 체크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알면 MBTI는 필요없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면 MBTI 테스트를 정확히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MBTI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고 그 결과를 믿는다.




사실 MBTI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도구적 관점으로 자기 이해의 시작 지점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대화 소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재미는 덤. 그런데 MBTI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사용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 자신을 카테고리에 가두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무시하고 같은 유형 5억명으로 치부해버리니 성장이 정체된다. P와 J 중 J는 계획적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전세계 40억명의 사람들은 모두 계획적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놀랍게도 믿어버린다.


"나는 J야" -> "J는 계획적이야" -> "그러니까 나는 계획적이야"


와 카테고리가 나를 정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MBTI지만 어느새부터 내 프로필에 쓸 정도로 내 정체성이 되어버리고 모든 상황을 MBTI로 설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INFP라서 못한다는 둥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시켜 버린다.




MBTI는 10분이면 결과를 볼 수 있지만 진정한 자아성찰은 몇년이 걸릴지 알수 없으며, MBTI는 외부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인 반면 자아성찰은 자신의 내부를 관찰하는 것이다. MBTI는 16가지 중 선택하지만 자아성찰은 선택의 가지수가 무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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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 교육의 폐혜


사람들은 어째서 외부 타이틀에 중독되었을까?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현대 사회 구조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다음과 같은 정체성을 주입 받으면서 성장한다.


초등학생 - 나는 반에서 3등
중학생 - 나는 전교 10등
고등학생 - 나는 수능 1등급
대학생 - 나는 ㅇㅇ대학교
취업직후 - 나는 ㅇㅇ 회사
직장인 - 나 부장이야~ 부장~
중년 - 부동산, 자녀 대학


진짜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물어본적도, 관심도 없이 50년이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어렸을때 학교에서 가르치는건 다름아닌 1등부터 꼴등 사이의 나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서로의 등수를 비교하게 만든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재밌는지, 어떤 사람인지는 물어보지 않는다. 단지 선생님의 평가와 시험 점수와 같은 외부 평가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되게끔 만든다. 이는 대학이나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동안 살면서 자신을 설명하는 말들은 모두 바깥에서 주어진 분류표에 불과하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은 바깥에서 주어진 꼬리표 묶음이 되어버린다. 결국 주인공 김낙수는 초등학교 입학때부터 나이들어 김부장이 될때까지 쭉 한결같은 길을 걸은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첫장면에서 김낙수가 학급 부반장이 되고 기뻐하는 장면이 있는데, 반장도 아니고 부반장이 뭐가 좋냐며 가족들이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초등학생때나 김부장이 된 지금이나 겉모습만 늙었지 내면은 그대로인 것이다.




지방 공장으로 좌천당한 김낙수는 비를 맞으며 "김낙수, 그는 누구인가!"라고 소리치며 달린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준 서열로 자신을 정의하며 살아왔다. 회사 시스템이 부여한 대기업 부장이라는 서열, 학벌 시스템이 부여한 성균관대 출신, 부동산 시스템이 부여한 서울 자가. 사실 이것들은 김낙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를 정의하는 방식이기도하다. 내 주변만 봐도 어떤 사람을 인식할때, 그 사람의 출신 대학이나 다니고 있는 회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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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사고 방식


김낙수의 정체성은 사실상 "서열"이다. 그는 자동차와 가방에도 서열을 부여하며 기뻐하고 분노한다.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정대리가 자신보다 더 비싼 외제차를 산 것을 보며 김부장은 자신의 서열에 위협을 느끼며 분노한다. 뿐만아니라 정대리가 250만원짜리 가방을 사고, 상무가 300만원짜리 가방을 산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은 서열적으로 그 중간이니까 250만원에서 300만원사이의 가방을 산다. 그는 백화점에가서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250만원에서 300만원짜리 가방 아무거나 주세요~
25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로!"


이는 자신의 취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소비다. 그는 소비를 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위치를 계속 확인한다. 실제로 인터넷을 보면 가방이나 시계, 자동차 같은 거의 모든 소비재들의 계급도가 존재한다. 더 재밌는 포인트는 김부장이 가방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사회생활 잘한다고 칭찬한다는 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김부장의 서열 감각을 내면화한 상태라서 자동차 종류, 아파트 평수, 가방 브랜드, 아이 학군 등 거의 모든 것을 사회적 서열 장치로 사용 중이다. 사람들은 너무 싼 가방을 들고 다니면 부하가 무시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취향보다 서열에 맞는 소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평생 서열 경쟁 속에 자라온 김낙수에게 자기 취향이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아성찰을 하지 않는 것일까? 우선 시간이 없다. 5살때부터 황소수학하며 밤새 공부와 시험에 치이며 산다. 공부가 끝난 후에는 먹고 살아야 하므로 취업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몸은 커가는 와중에 학교도 부모도 자아성찰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으니 방법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학교 등수 잘나오거나 회사 잘다니면 겉보기에는 큰 문제 없어보이니 자아성찰의 필요성을 못느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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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성찰조차 방법론을 찾는 현대인들


한번은 친구에게 자아성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돌아온 답변은...


"자아성찰 그거 어떻게 하는데?"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마치 공부잘하는 방법 찾는거 마냥 자아성찰에도 정해진 방법론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자아성찰에도 답이 있으며 MBTI 테스트처럼 즉시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자아성찰이 평생 걸리는 아주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1분정도 앉아서 고민하면 나오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교육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을 교육하기보다 정답을 가르치는데 집중한다. 이러한 정답 중심 사고 때문에 나도 자아성찰 초기에는 정답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나'라는 자아를 찾기 위해 MBTI 검사를 해보고, 심리 관련 도서, 자기개발, 직무테스트, 직업 적성 검사 등 안해본게 없을 정도였다. 마치 자아성찰을 문제풀이 처럼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니 1분정도 생각하다가 떠오르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이다. 수학문제를 풀때는 정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답지를 보면 되지만 자아성찰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들은 김부장 드라마를 보고 상처받는다. 나를 꾸며주는 타이틀이 사라지는 게 두렵고, 자신을 마주할 준비가 안되어 있으며, 평생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현실적인 직장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아성찰은 갑자기 큰 사고를 겪거나 실패를 겪었을때 급하게 하면 되는 작업이 아니다. 초등학교 여름 방학 숙제처럼 며칠 벼락치기해서 될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아성찰은 사춘기 무렵 시작해 인생 전체를 걸쳐 하는 평생 프로젝트다. 자아성찰을 운동에 비유하면 근육과 같다. 평생 안써본 근육은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드는건 당연한 이치다. 평생 팔굽혀펴기를 안해본 사람은 1개도 힘든 것 처럼 자아성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대에는 공부, 20대는 스펙, 30대는 결혼, 대출, 40대는 육아, 직급, 50대에 위기를 맞는 구조라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이러니 회사 타이틀이 사라지면 공황이 올수밖에 없다. 실제로 회사 타이틀이 사라진 김낙수는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내 안을 살펴보았지만 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김낙수 정체성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다름 아닌 김부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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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오랜만에 정주행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여러가지 생각할 지점이 많은 드라마였다. 간만에 방송하는 주말이 기다려질 정도로 흥미진진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보며 타이틀을 제외한 나에 대해 생각해보며 나에 대해 알아가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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