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감상평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작품을 보게되었다. 오랜만에 본 명작 영화였는데, 단순하게 보면 패션업계에 입문한 신입사원이 회사생활에 적응하는 영화라고 볼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조금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앤디는 전형적인 현대인들을 상징한다. 그녀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앤디가 미란다를 만나 처음 한 말은 "저는 노스웨스턴 대학교를 졸업했어요"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특징을 이야기한게 아니라 학교 간판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패션 감각은 제로에 가까웠는데, 그녀에게 옷은 부차적인 것이며, 이 일은 잠시 스쳐가는 임시직 이라고 여긴다. 사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에도 증명해야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 위험요소가 된다.
앤디는 스스로를 명문대 졸업한 똑똑한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초반에는 일을 잘 못한다. 그녀는 직업을 존중하지 않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의지도 없었으며, 나는 너네와 다르다는 식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마디로 직업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패션 잡지 회사는 IQ테스트 통과해서 될 일이 아니라, 그 세계에 진짜로 발을 담글지를 묻는 곳이다. 그리고 이는 앤디의 남자친구를 비롯한 지인들의 태도로 확장할 수 있다. 나는 앤디와 지인들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직업관이나 패션, 자신의 똑똑함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패션은 허세일 뿐이며, 진지하게 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세계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세계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앤디는 초반에 패션을 겉치레, 허영심 정도로 생각했지만, 내 생각에는 대학교육이 오히려 그녀에게 허영심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한다. 앤디를 보면 살면서 해본게 객관식 시험 보는거 밖에 없는데, 그 능력은 문제를 만든 사람의 의도를 잘 읽고 정해진 답을 고르는 능력이지 본인의 세계관과는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교육이 만든 허영심은 너무나 정당화하기 쉽고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명문대나 좋은성적은 사회적으로 우월감을 허락받은 영역이다. 그래서 앤디는 자신은 실속있는 사람이고 화려한 겉모습보다 본질을 본다고 믿고, 자신이 잘 모르는 세계는 낮춰본다. 영화 초반 미란다와 앤디는 극명하게 차이난다. 미란다는 세계에서 최고 자리에 있었고, 그만큼 기준도 높고 결과로 책임진다. 반면 앤디는 자신은 원래 똑똑한 사람이고, 이 잡지 회사는 잠시 스쳐가는 곳이고, 여기서 실패해도 본인이 똑똑한 사람이라는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중반부터 앤디가 일을 잘하게 되는데 이는 갑자기 똑똑해진게 아니라 일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영화만 보면 앤디가 갑자기 기억력도 좋아지고 판단도 빨라지며 문제해결도 잘하는 것처럼 연출된다. 이는 앤디가 패션 브랜드 조금 외워서도 아니고 옷 잘입는 법을 배워서도 아니다. 그녀는 패션이라는 세계를 가볍게 보지 않은 것이다. 그때부터 앤디는 관찰을 하고 디테일을 비교를 하고, 판단 함으로써 패션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패션은 디테일의 세계이므로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 대충이라는 개념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패션계의 이러한 감각은 비서로서 그녀의 스케줄 관리, 우선순위 판단, 상사의 요구 파악과 같은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니 앤디가 옷을 잘 입게 되자 일도 잘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란다는 후반에 앤디를 인정하게 되는데, 앤디의 패션 센스나 성격을 좋아하는게 아니다. 자신과 같은 관점으로 세계를 보고, 판단의 무게를 알고 결과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패션 업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패션 센스도 좋아지고 일도 잘하지게 된 앤디는 남자친구를 비롯한 지인들과 사이가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미란다에게 전화가 왔는데, 지인들은 앤디가 전화를 못받게 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앤디는 진심으로 화를 내는데, 지인들은 뭐 그런걸 가지고 화를 내냐며 오히려 나무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직업관이 다시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지인들은 일을 그저 시간 팔아서 돈버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앤디는 자신의 일을 인생의 일부이자 정체성의 일부라고 생각하니까 지인들이 자신의 일을 장난으로 대하고 방해하는게 이해가 안가 화를 낸게 아니었을까.
영화 마지막에 앤디는 패션업계를 떠나고 옷도 예전처럼 평범하게 입는다. 하지만 나는 이게 단순히 예전으로 돌아간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앤디는 패션으로 끝까지 가본사람으로 패션감각의 정점을 찍고, 폐션업계의 최고인 미란다에게 인정도 받은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다시 예전처럼 옷을 입은 건 마치 검술의 달인이 실력이 정점에 달했을때 검술을 그만두는 경지와 비슷하다. 그녀는 명품 브랜드 옷은 입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에 핏을 맞춰 스타일을 살리며 신경쓰지 않은 척 할수 있을 만큼 신경쓸 줄 안다. 또한 패션 업계에서 배운 일하는 방식, 직업의식에 대한 감각을 몸에 체득해서 자신의 원래 꿈인 기자에 도전한다. 디테일을 볼 수 있는 눈,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 세계를 가볍게 보지 않는 감각을 갖춘 앤디는 영화 초반이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직업 의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미란다의 패션 잡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직원들의 패션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아무래도 패션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니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패션 잡지 내용에는 직원들의 패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직원들이 프라다를 입고 일을 하든 트레이닝복을 입고 일을 하든 잡지만 봐서는 알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왜 화려한 복장으로 일을 한 것일까?
패션이란 무엇일까. 옷이란 무엇일까. 나는 옷이란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선택 기준이 드러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트레이닝복을 입는다는건 단순히 편해서가 아니라 디테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옷차림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물인 것이다. 반대로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색, 질감, 실루엣,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큰 차이와 같은 것에 항상 신경 쓰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이 잡지를 제작하는 과정에도 투영되는 것이다.
직업이 요구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초반에 주인공 앤디는 두 색깔을 고민하고 있는 미란다를 보며 자기가 보기엔 똑같은데 그게 무슨 차이가 있냐며 비웃는 바람에 미란다가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미란다가 화내는 이유는 앤디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패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패션 잡지는 글만 잘쓰면 되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 툴만 잘 다룬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패션 세계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게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 몸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외형을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영화 초반 앤디의 특징은 자신은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도 하나의 선택인데, 그걸 선택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초반에 파란 스웨터 장면에서 앤디는 자신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의 패션에 대한 해상도가 낮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 이 영화가 멋진 이유는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세계관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게 패션이든, 학문이든, 프로그래밍이든 겉으로는 안보여도 생활태도, 선택기준, 사소한 디테일과 같은 것들이 합쳐져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발자들 위주로 만든 소프트웨어에서 종종 묘한 어색함을 느낀다. 기능적으로는 잘 작동은 잘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오래 쓰고 싶지는 않은 느낌. 그 이유가 디자인일 수도 있고 UI/UX일수도 있는데, 혹시 그 원인이 어쩌면 개발자들의 감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PPT 자료를 만들때도 기본 파란색 도형을 쓴다거나 디자인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경우 PPT 내용이 중요하지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고는 판단이 깔려있는데, 이는 영화 초반 앤디와 닮아있다.
소프트웨어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잘 돌아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디자인은 있으면 좋은 옵션 정도로 생각한다. 마치 영화 초반 앤디가 자신은 똑똑하니 패션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듯, 어떤 개발자들은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디자인 세계는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개발자들로만 구성된 소프트웨어는 흥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이 별로면 사용자는 잘돌아가는지 평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게 냉정한 현실이다.
작중에서 앤디는 명품 옷을 입었기 때문에 감각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프라다나 샤넬 로고가 가슴 정중앙에 대문짝 만하게 박혀있는 옷을 입는다고 패션센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듯, 개발을 할때도 유행하는 문법이나 프레임워크를 쓴다고 개발센스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유지보수는 고려하지 않은 코드, 미래의 나는 타인 취급하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아무도 만지고 싶지 않은 코드를 짠 사람이 과연 센스가 좋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패션이든, 소프트웨어든 어떤 분야라도 디자인적인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간단한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말이다. 그래서 유튜브에 자신이 만든 제품이나 제작 철학을 설명하는 영상을 볼 때, 말하는 사람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가 말한 철학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예전에 본 어떤 영상에서는 그 영상의 배경음악이 너무 커서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이는 오디오 센스를 넘어 전체적인 감각 문제라고 느껴쪘다. 문제는 단순히 영상이 아니라 그 사람이 최종 컨펌을 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러한 감각의 부재가 하나의 위험요소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나는 패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고 아직도 잘 모른다. 공부하던 시절에는 매일 도서관에서 지내니까 최대한 편한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공부했다. 심지어 대학원때는 더운 지방에 살다보니 반팔, 반바지에 백팩에 두꺼운 책을 가득 담아 양 어깨에 메고, 도시락 통을 들고 다녔다. 학교를 간다기보다는 이사를 가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와 개발자가 된 이후에도 하루종일 코딩을 해야하므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때의 나는 코드 짜는 능력이 중요하지 디자인은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나는 옷은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트레이닝복을 선택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퇴사를 하고 조직 밖으로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더이상 회사 다닐때처럼 트레이닝 복을 입고 비즈니스 미팅을 갈수는 없었다. 결국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몰랐던 나는 정장을 선택했다. 정장은 과하다고 생각될지언정 최소한 무례해보일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를 할때도 정장만 입었고, 그 시절에 나를 봤던 사람들은 나를 정장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이때 내가 정장을 입은 이유는 패션 감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 이유가 크다. 그러다가 일본의 도쿄 시부야로 여행을 간적이 있다. 시부야는 일본의 패션 중심지라 그런지 길거리의 사람들도 무언가 패션감각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나도 쇼핑을 하고 싶었지만 패션에 무지했던 나는 유명 브랜드인 스투시 매장을 찾아갔을뿐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무엇을 사야할지 몰라서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옷을 보는 눈이 제로였다.
그러다가 다음해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밀리노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패션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강렬했다. 키 190정도 되는 마른 흑인이 스키니진을 입고 가는 장면, 나이 70세도 넘어보이는 할머니가 패셔너블하게 비즈니스 캐쥬얼을 입은 모습, 그때는 퇴근시간이었는데, 그들도 대부분 직장인이겠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처럼 옷으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결을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밀라노에서는 관광지를 굳이 가지 않아도 거리를 걷기만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밀라노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는 나에게 "패션은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말해준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옷에 돈을 얼마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밀라노에서 돌아온 나는 대부분의 옷을 정리했다. 전혀 통일성 없는 스타일, 왜샀는지 이유도 모를 옷들, 싸니까 산 옷, 가격이 싸서, 색깔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냥 산 옷들로는 도저히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자주 아이쇼핑을 하러 백화점에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옷을 너무 많이사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므로, 최대한 옷을 많이보고 많이 입어봤다. 그냥 겉보기에 예쁜게 아니라 어떤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나의 추구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옷을 골랐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까 아주 조금은 알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느낀점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일할때와 신경써서 옷을 입고 일할때는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