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속한 셔터아일랜드는 어디인가

영화 셔터아일랜드 감상평

by 장철원

영화 제목 셔터아일랜드는 섬이름으로, 정신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주인공 테디는 그 섬에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연방보안관인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반인륜적인 실험이 가해지고 있다는 소문의 셔터아일랜드라는 섬에서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개봉한지 15년도 지난 영화니까 스포를 하자면, 보안관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테디는 사실 중증 정신질환환자였으며, 그가 섬을 수사하는 것은, 사실 셔터아일랜드의 모든 구성원들이 주인공의 심리치료를 위해 연극을 했던 것이다. 섬에 있는 심리학자, 의사, 간호사, 청소부, 일꾼, 심지어 테디의 조수인줄 알았던 척까지 모두가 한 사람을 위한 연극을 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테디는 결국 뇌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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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화인만큼 해석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영화 관람 2회차 이상부터는 셔터아일랜드 사람들이 처음부터 테디를 속이기 위한 연극하는 단서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았다. 만약 테디가 원래는 정신질환 환자가 아니었는데, 셔터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세뇌를 당한 것이라면? 실제로 그는 정상인이었지만 모두가 그를 미치광이로 가스라이팅한 끝에, 정상인이었던 그가 스스로를 환자라고 생각하며 수술을 선택한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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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아일랜드는 이런 관점으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일부로 정답을 한가지 방향으로 정해놓지 않았다. 그러니 셔터아일랜드 사람들의 연극은 테디의 치료가 목적이 아닌 세뇌가 목적이고, 작중 내내 셔터아일랜드라는 닫힌 시스템이 사람 한 명을 미치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테디가 환자라는 물리적 증거는 등장하지 않고 기록이나 증언, 설명 모두 병원쪽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의사가 정상인을 환자라고 결정 내리면 환자가 되는 것인가? 또한 작중 배경이 1950년대 미국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는 인권에 대한 개념이 약했으니 시대적으로도 이상하지 않다. 마지막 대사인 "괴물로 사는 게 나을까, 착한 사람으로 죽는게 나을까"라는 대사도 정신병에서 잠깐 깨어난 테디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볼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셔터아일랜드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봤자 소용없다고 체념하고 삶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묻는다. 정신병이란 무엇일까? 정상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테디가 미친 사람일수도 있고, 멀쩡한 개인을 시스템이나 권력이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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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정상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만약 주변 사람 100명이 전부 같은 말을 하고, 기록이나 문서, 전문가, 제도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때부터는 내 감각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중 내용처럼 어떤 사람을 환자로 몰아가려면, 그 사람이 반박하면 방어기제가 작동한다고 말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면 망상 체계가 정교해진 것이고, 침착하면 증상이 억제된 상태라고 낙인을 찍을 수 있다. 시쳇말로 가불기에 걸리는 것이다. 셔터아일랜드 사람들은 테디를 세뇌시키기 위해 폭력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가가 등장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친절하고 지식에 기반한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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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가 어쩌면 셔터아일랜드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나이대별로 해야할 일이 미션처럼 주어지는데, 예를 들어, 고등학교-대학-취업-결혼-출산과 같은 코스를 세뇌시키고 이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낙오자 취급을 한다고 느꼈다. 실제로 언론에서는 취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쉬었음 청년'이라고 부르고, 출산율이 낮아짐에 따른 심각성을 연일 보도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생 경로를 정상 경로로 만들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문제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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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데, 요즘은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나아져서 많이들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가해자가 치료를 받는게 아니라 피해자가 치료를 받는다는 점이다. 문제를 만드는 쪽은 시스템인데 치료를 받는 쪽은 개인인 것이다.




나도 예전에 회사 다닐때를 생각해보면 회사는 개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기능을 하는 도구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회사는 나라는 사람을 보기보다는, 성과가 나오는지, 문제를 일으키는지, 조직에 방해가 되는지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폭언을 해도 성과가 좋으면 OK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들 참고 다니는 거라고 말한다. 결국 적응 못한 개인이 문제가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개인이 더 어려워질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결국 결론은 회사 문제라는 식 보다는 치료를 받는 당사자가 예민하거나 번아웃이 온 문제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결국 그들은 약을 먹고 한번 더 참고, 조금더 무뎌지면서 다시 회사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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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화에서도 폭풍우 부는 밤에 테디가 괴로워하자 사람들은 그를 섬밖으로 내보내는게 아니라 일단 침대로 눕히고 약을 먹인다. 사실 문제의 원인은 폭풍, 고립된 섬, 무장 병원, 탈출 불가능한 압박감과 같은 외부조건일 수 있는데, 작중에서는 모두 테디 개인의 문제로 몰아간다.




침대에 눕힌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겉으로보기에는 사람들이 테디를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컨트롤, 통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침대에 눕힘으로써 테디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생각을 못하게 하고, 질문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때 약은 고통을 없애주기 보다는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왜 멀쩡할까? 가해자는 보통 평가할 권리와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기에 그들의 행동은 리더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피해자들의 행동은 멘탈 문제, 조직 적응 실패로 해석된다. 셔터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섬을 구성하는 시스템은 그대로이고, 규칙도 그대로, 의사들도 그대로이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만 치료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의 목표는 행복이나 자유가 아닌 환자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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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 뿐만 아니라 대학원가 같은 학계도 셔터아일랜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논리, 수식, 엄밀한 증명, 진리탐구로 포장된 학계 역시 겉보기엔 완벽하다. 학자들은 학계를 감정이 아닌 이성적인 곳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논리적인 구조일수록 그 안의 비논리는 더 잘 숨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테디에게 약을 먹이듯, 학계의 칭송 역시 최고의 마취제 역할을 한다. 박사님이라는 호칭, 미국 명문대, 대단하다는 시선은 의심을 차단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면 셔터아일랜드 마냥 연극이 정교했고, 배우들이 진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연구를 하면서 나는 문득 "이 논문이 탑저널에 실린다한들, 이 세계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이 행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내부 순환 시스템에 속하는 박사과정 학생으로서는 절대로 하면 안되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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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는데, 셔터아일랜드를 한번 탈출하고 나니까 그 다음은 제법 잘 보였다. 입사할때부터 나는 소위 회사뽕같은건 전혀 없었다. 직원들이 회사가 만든 세계적인 게임 성공이 자신의 성공인것마냥 도취되어 있을때, 나는 재빨리 탈출계획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꽤 준비를 하고 퇴사를했다고 생각한 나도 타격이 있었는데, 회사뽕에 취해있다가 예상치못하게 퇴직하는 분들은 아마 정신적 타격이 제법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셔터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테디에게 자신은 이제 밖에서는 살수 없다며, 세계를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어디든 그곳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곳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규칙을 파악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적화 과정이 끝난 것이다.




회사 다닐때를 생각해보면 입사 초반에는 회사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많이 지적했던 것 같다. 내가 볼때는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다들 이렇게 한다는 둥, 사회생활을 더 배워야 한다는 말들 위주였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신입의 패기는 사라지고, 스스로 말을 줄이고, 문제 제기도 안했다. 나만 조용한다면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이 셔터아일랜드의 치료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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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는 테디의 심문을 받던 인물이 척이 잠시 물을 뜨러간 사이 테디의 노트에 RUN(도망쳐)이라고 메모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도망치라고 했지만 실제로 도망 칠수도 없는 환경이다. 셔터아일랜드는 섬이고 폭풍우로 날씨도 안좋은데다가 경비원이 총으로 무장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RUN이라는 메시지를 보면 도망친다는 선택지가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망칠수 없다는 걸 각인 시키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사실 회사나 학계로 한정지어 생각할 것도 없다. 유튜브의 발달로 모두가 다른 컨텐츠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보면 모두가 같은 주제로 같은 내용의 대화를 한다. 가끔 서로다른 집단 구성원들이 토시하나 안틀리고 같은 내용을 녹음기처럼 말하는것을 보면 유튜브 특정 채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유튜브나 TV도 하나의 셔터아일랜드라고 느껴졌다.




내가 지금 속한 셔터아일랜드는 어디일까? 그리고 당신이 속한 셔터아일랜드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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