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며 느낀 유튜브 세계
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을 보았다. 이 영화는 일단 장르는 공포, 스릴러인데, 영화 초반을 제외하면 무섭거나 깜짝 놀래키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장르는 공포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 쪽에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레이지 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가 세계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좀비가 되어버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생존자들 중에서도 지미스라는 종교 집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의 유튜브 세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지미스라는 종교 집단이 등장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로 비유하면 단순히 사이비 종교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나는 유튜브 채널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다보면 특정 채널을 거의 신처럼 모시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채널들을 보면 주인장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적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에게 위기를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다진다. 공포 마케팅의 핵심은 외부 세계를 위험한 존재로 프레이밍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지미스 리더가 한마디하면 나머지 추종자들이 리더의 말을 따라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오프라인 모음에서 같은 유튜브 채널을 시청한 사람들끼리 서로다른 모임에서 같은 말을 하는 모습들이 생각나 소름돋았던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때 그 유튜브 채널이 종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 주인장이 한마디하면 해당 영상을 본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실제 사람들을 만날때도 그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 자신이 유튜브 채널을 종교처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인데, 자신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채널 주인의 말을 똑같이 따라한다. 그러면서 같은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끼리 댓글창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전통적인 종교는 자신이 종교를 믿는다는 자각이라도 있는데 유튜브 같은 현대 미디어가 만든 집단은 스스로를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이 유익한 정보를 구독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강하게 세뇌된다. 물론 자신은 세뇌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며, 자신과 다른 의견은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린다.
영화에서는 지미스 리더는 멤버들의 실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종교에서 같은 옷을 입듯, 지미스 멤버들은 금색 가발을 쓰고 다닌다. 지미스 멤버들은 각자의 이름을 버리고 서로를 '지미'라고 동일한 이름으로 부른다. 어떤 사람의 이름은 곧 그 사람이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지시키고 모두를 지미라고 부르면,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고, 오직 리더만이 유일한 고유성을 가진다. 지미스 멤버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리더의 말만 따라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튜브 채널 주인장이 자신의 채널 구독자들을 특정 애칭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구독자들을 특정 이름으로 묶는 순간 사람들은 채널에 소속감을 느낀다. 주인장이 자신을 애칭으로 불러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해당 채널에서만 사용하는 내부 밈이나 표현들로 소속감을 느낀다.
지미스 멤버에 가장 늦게 합류한 스파이크는 지미스에서 도망가려고 시도하지만 같은 지미스 멤버인 지미 잉크(본명: 켈리)가 말린다. 지미 잉크는 자신도 도망가려고 해봤지만 여기보다 나은 곳을 보지 못했다며 그냥 지미스에 있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작중에서 지미 잉크는 악인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 어린 스파이크를 신경써주는 편인데, 그녀는 스파이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유튜브 채널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령 그곳이 종교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심리가 그것이다. 이미 소속감을 느껴버린 사람은 벗어나기 어려운 것일까. 사실 자신이 시간을 쏟은 곳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 댓글창에도 지미 잉크와 같이 다시 돌아온 사람을 다독여주거나 나가려는 사람을 잡아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딜가도 다 똑같다며, 어딜가도 다 마찬가지라며 그나마 이곳이 낫다고 말한다.
영화 후반부에 지미스라는 종교에서 살아남은 지미 잉크는 스파이크는 서로의 본명을 밝힌다. 이제는 더이상 누군가가 만든 집단 멤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둘은 금색 가발을 벗어 던지고 지미스를 탈출한다. 이제는 지미라는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금색 가발같은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자신만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지미스보다 더 나은 집단을 찾아서 탈출한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탈출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집단에 소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자기 자신으로서 서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을 처음 받아들일 때는 아무것도 없는 공백상태가 되는데 그 공백을 감당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의 내가 항상 어떤 학교 소속의 학생, 어떤 회사 소속의 회사원으로 살아가다가 처음으로 수식어들이나 소속없이 내 이름만을 마주했을 때, 공백속에 내 이름만 남았을때의 감각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보다 유튜브 채널을 벗어나는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보통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보면서 탈출해야한다고 생각할 만큼의 긴박감이나 위기감을 느끼기 어렵기 떄문이다. 매주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고 댓글창에서는 동료들이 반겨주니 탈출해야한다는 생각자체를 하기 힘들다.
레이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멀쩡한 사람들을 괴물로 인식하고 헤치워버린다. 이를 유튜브 세계에 비유해보자. 알고리즘이나 숏폼에 잠식되어 버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의 영상이나 댓글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헤치우기 위해 분노의 댓글을 단다. 감염자의 눈에 정상인이 괴물처럼 보이듯, 그들은 상대방의 단순 질문을 도발로 해석하고 공격한다. 레이지 바이러스가 서로 물면 퍼지듯, 댓글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공격당한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담아 대댓글을 달게 되며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이들과 지미스의 차이점은 지미스가 특정 채널에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레이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댓글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다. 지미스가 멤버들에게 같은 이름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사고를 단순하게 만들었다면 레이지 바이러스는 사람들 감정을 단순하게 만든다. 지미스가 소속을 기반으로 움직인다면 레이지 바이러스는 소속은 없고 그저 자극에 반응한다. 두 집단 모두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소름돋는건, 이러한 사람들이 유튜브에 오래 머물수록 플랫폼은 이득을 본다는 사실.
나는 영화에서 종교집단에 빠지지도 않고, 레이지 바이러스에도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들을 보면서 유튜브를 이용하되,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마지막 장면에 살아남은 부녀가 역사공부를 하면서 과거로부터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지미스들이나 레이지 바이러스 감염자들에게는 과거가 없다. 그들에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자극적인 문장들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전부이다. 반면 생존자들은 자극적인 단어에 흔들리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이나 맥락을 고려하며 정보를 소화한다.
이처럼 유튜브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분노 가득한 댓글이나 종교 같은 채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채널을 보면서 영상들을 자신을 세우는데 양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생존자들이 소수이듯,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비율은 소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어쨌거나 생존자라고해도 완전히 격리되서 살아갈수는 없고 레이지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점이다. 유튜브를 아예 안보는게 아니라 보면서도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어쩌면 아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작중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레이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삼손"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인물은 의사인 주인공에게 약물 치료를 받는다. 약이 서서히 떨어져감에도 완치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인공도 포기 직전까지 가는데, 삼손은 기적적으로 달을 보며 의식적으로 "moon"이라고 말한다. 삼손은 자신이 감염되기 전에 달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을 계기로 인간성을 되찾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설령 유튜브에 분노를 표출하는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했던 것, 자기 자신을 찾는다면 치료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 어릴 때 몰입했던 취미 생활, 누군가에게 느꼈던 따뜻한 감정, 나만의 관심 분야와 같은 것들은 알고리즘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한 것으로,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중요한건 삼손의 치료가 약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약은 증상을 완화시켜줄 수는 있지만 완전한 회복까지 시켜줄수는 없다. 진정한 치료약은 결국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