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윌헌팅 감상평

네 잘못이 아니야.

by 장철원
common (31).jpg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영화를 봐왔지만, 굿윌헌팅은 그 중에서도 손에 꼽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98년에 나왔는데,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영화관조차 없는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기에, 나중에서야 이 영화를 처음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만큼 애정이 있는 작품이다. 그러던 어느날, 굿윌헌팅이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관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 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게 될 줄이야.. 굿윌 헌팅은 표면적으로는 한 천재 소년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한 사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보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달라져있었기에 영화를 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굿윌헌팅 감상평을 적어보고자 한다.


common (24).jpg


영화 초반부, 주인공 윌은 미국 보스톤 남부 판자촌에 홀로 살며, 청소부나 벽동공 일을 하는 노동 계층에 속한다. 그는 가난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지만, 여가시간에는 항상 책을 읽는다. 그가 읽는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 지식들도 포함된다. 나는 첫 장면부터 재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재능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몰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청소부일을 하는 윌에게 수학, 역사, 법학과 같은 지식은 배우더라도 써먹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의 방에는 책들이 아주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난한 형편에도 책을 사는데 돈을 쓴다는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03.jpg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상이 있어야 움직인다. 기말고사가 얼마남지 않았을때 학생들이 공부하기 시작한다던지, 취업시즌이 얼마남지 않았을때 학생들이 취업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것, 돈이나 인정을 바라고 어떤 일을 시작한다던지 말이다. 하지만 윌이 공부를 하는 것에는 보상도 없고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 그는 수학자로 살기위해 공부한 것도 아니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공부한 것도 아니다. 내적동기가 충분했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보통 사람들은 재능을 "잘하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잘하는 것은 재능의 결과이지 재능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능을 이야기할 때 환경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환경이 좋아야 재능이 꽃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윌 같은 경우에는 거의 최악의 환경이다. 그럼에도 그의 지적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환경과 상관없이 불타올랐다. 한편 그는 대학이나 연구소같은 제도권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재능을 몰라봤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 논문을 썼을 때, 그는 대학교에 속한 것이 아니라 특허청 직원이었듯, 재능은 반드시 사회 시스템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 학위, 경력과 같은 것은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 주변에도 공장에서 일하지만 수학책을 읽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철학 공부를 하고,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공부하는 사람 등 윌 같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 주변에 안보일 뿐.




영화를 보면서 나는 윌이라면 청소부 일을 하면서도 마음만 먹었으면 MIT까지는 등록금이 비싸서 못갔더라도 근처 community college까지는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윌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대학교육에 돈을 쓰는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실 대학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은 인터넷이나 학교에 방문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도서관에가면 싼값에 빌려볼 수 있으니까 윌 입장에서는 도서관가면 50센트 주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교육비에 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지식 자체를 얻는 것이 중요하지 학위나 학교 브랜드에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술집에서 만난 하버드 학생을 부러워하기는 커녕 약간 비웃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지적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감 아니었을까.




윌에 제도권으로 들어가지 않은 또하나의 이유는 그의 방어기제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내 그는 누군가와 가까워질 것 같으면 일부러 그의 약점을 찾아 공격해서 관계를 망친후 도망치는 패턴을 보인다. 그런 그의 성향을 생각하면 대학이라는 곳에가면 교수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생기는데 윌은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아서 애초에 대학이라는 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common (23).jpg


어찌되었건 윌은 제도권으로 편입되길 스스로 거부했지만 그는 밤에 몰래 청소하는 척 하면서 MIT 수학과 교수가 칠판에 낸 문제를 풀었다. 그는 낮에 일하면서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생각했고 친구들과 밤에 술을 마시면서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가 문제를 풀었다. 윌은 스스로의 마음의 장벽을 뛰어넘을 만큼 수학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작중에서 윌은 역사, 경제, 수학, 생물, 화학 등 분야에 상관없이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데 하필이면 수학과 건물에서 수학문제 푸는걸 선택한 것이다. 주인공에게는 여러 재능이 있었지만 수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컸던 것일까? 만약 윌의 담당 구역이 수학과 건물이 아니라 다른 학과 건물이었다면 그가 재능을 펼친 영역이 달랐을까? 아니면 그래도 수학을 선택했을까?




보통 천재들의 스토리를 보면 스스로의 재능과 환경과 섞이며 잠재력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집주변에 아이스링크장이 있어서 피겨 선수가 된 김연아 선수라던가, 어렸을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어서 프로그래밍 능력에 눈뜬 빌게이츠라던가, 집에 피아노가 있어서 음악 재능이 꽃피는 경운 모차르트가 그렇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면 윌도 우연히 수학과 복도에 칠판이 걸려있었고 거기에 문제가 쓰여져있었기에 재능이 피어났을 가능성도 높다. 만약 윌의 환경이 달랐다면 다른 재능이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 그는 과거에 재판에서 스스로를 변호해서 성과를 낸적도 있었고, 하버드 생물학과 재학중인 여자친구의 숙제를 보자마자 풀어내기도 했었다.


common (3).jpg


영화 초반에는 유명한 술집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 윌은 잘난척하는 하버드 학생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 학생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이야기한다. 그러자 윌은 지금은 그 내용을 배워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내년에 다른 내용을 배우면 그 때는 또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을 거라며 이렇게 말한다.


"남의 생각 인용하는거 말고 너만의 의견은 없어?


그 말은 들은 하버드 학생은 움찔하는데, 사실 학버드 학생이 말한 내용은 그의 생각이 아니다. 그저 책에서 읽은 내용일 뿐. 나는 이 대사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책에 있는 내용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최근에 철학에 관련된 영상을 많이 보는데 영상 속 내용들은 대부분 유명 철학자가 쓴 책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똑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해당 철학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저 학생처럼 되기 쉬운데, 어떤 권위 있는 사람의 생각을 배우고 그 생각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그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것처럼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좀 더 넓게 보면 대학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의 이런 성향을 강화시킨다. 대학교육이라고 해도 결국 정답을 암기하고, 정답의 근거로 권위있는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암기했던 내용을 시험지에 그대로 쏟아내는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쓰는것 보다는 권위있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게 정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06.jpg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건 아주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위있는 사람을 따라하고, 집단의 생각을 따라가고, 검증된 생각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에너지 효율적인 측면에서 나 스스로 생각을 만드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내 생각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하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현대인의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영상으로 정답찾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려면 고독하게 오래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이 형성될 틈이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는 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꽤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면 다른 사람이 지적해도 내 책임이 아니게 된다. "제 말이 아니라, 칸트가 그랬는데요"라고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런데 "내 생각"임을 밝히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실 자신만의 의견을 갖는다는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07.jpg


굳이 어려운 학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유명 유튜버들이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나는 서로다른 오프라인 모임에서 유명 유튜버가 한 말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인데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꼭 현대인만의 문제는 아니고 예전부터 계속 되오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정보량이 많아진 요즘은 더 심해진 느낌이 든다.




그런 면에서 윌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게, 그는 엄청난 양의 책을 읽지만 책 내용을 그대로 복사기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책 내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말한다. 술집에서 만난 하버드 학생도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지만, 그는 머리속에 책 내용을 단지 저정했을 뿐이라면 윌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낸 것이다. 물론 윌 같은 경우에는 방어기제가 있어서 하버드 학생의 주장을 논파하는데 그치지 않고 굴욕을 주는 등, 지식을 공격 무기로 사용한다.


08.jpg


윌은 책속의 지식을 자신과 연결시키는데 사용한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윌의 재능을 발견한 MIT 수학교수인 램보 교수와 정신과 치료를 담당하는 숀 교수가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이다. 램보 교수는 윌의 미래를 숀 교수와 논의하고 싶었는데 숀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아직 과거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벌써 미래를 논한다고?"


나는 이 대사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정리하지 않은채, 즉,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채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것도 정확히는 미래가 아니라 직업이나 돈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숀 교수의 대사는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하는데, 이 대사가 줌인이나 포커스로 연출되지 않고 순간적으로 빠르게 지나갔기 떄문에 많은 사람들이 놓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순간을 많이 놓치듯 말이다.


15.jpg


수학과 램보 교수는 윌은 지적 자원에 가깝다. 그는 윌을 보면서 연구를 통해 수학계에 큰 기여를 하고 그도 윌의 스승으로서 명성을 쌓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항상 윌의 재능을 어디에 써야할지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미래, 커리어플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반면 숀 교수는 윌의 재능이나 지적 능력, 진로가 문제가 아니라 윌이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아이라는 것에 집중해서 그의 치료를 우선시 여긴다. 그러니까 숀 교수의 입장에서는 과거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미래를 이야기하는 램보 교수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숀 교수가 보기에 윌은 충분히 똑똑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랑도 믿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윌과 대화하면서 수학이나 직업,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데 숀 교수는 과거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의 선택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09.jpg


실제로 나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거꾸로 산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채, 과거 상처를 정리하지 않은채 미래 계획부터 세운다. 거창하게 미래 계획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직업이나 연봉, 사회적 지위 정도를 생각한다. 내가 봐온 많은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당장 돈이 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질문을 건너뛰게 되면 남이 정한 미래를 자신이 선택한 미래라고 착각하며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원하는 직업, 사회가 좋다고 하는 직장 등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까 그저 외부기준을 따라가는 것이다.


10.jpg


윌은 숀 교수와 대화를 하면서 서서히 치유 받는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숀 교수는 윌에게 소울메이트가 있냐고 묻자, 윌은 같이 청소일을 같이 하는 친구 "척(chuck)"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숀 교수는 그 친구가 너에게 영감을 주냐고 묻자, 윌은 그거라면 많다며 칸트, 세익스피어 등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말한다. 그러자 숀 교수는 그들과는 대화할수 없다며, 먼저 다가가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11.jpg


사실 척은 윌에게 좋은 친구이지만, 영감을 주는 사이는 아니다. 물론 척같은 친구도 아주 중요하지만 숀 교수가 말한 소울메이트가 인생에서 있는지 여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후반에 윌의 여자친구 스카일라는 윌에게 자신과 함께 보스턴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가자고 말한다. 그런데 윌은 캘리포니아로 갔다가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라고?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사실 나는 이 장면은 윌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 같고, 아마 나라도 저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물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일단 캘리포니아로 함께가자라고 대답할수도 있지만 이건 방어기제를 떠나서도 아주 어려운 상황아닌가 싶었다.


12.jpg


윌은 작중에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가벼운 농담이나 장난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둘이 진지하게 대화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만약 스카일라와 윌이 서로의 과거에 대해 잘 알았다면 함께 캘리포니아로 갔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카일라는 윌이 고아이고 배에난 상처가 어렸을 적 학대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못했고, 윌 역시 스카일라가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이 그녀가 13살때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둘은 서로 싸우고 난 뒤에서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미리 서로 이야기했더라면, 서로에 대해 알고난 후에 캘리포니아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면 함께 하자는 결론으로 갔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에서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과거에 대해 먼저 말하는 게 필요했던 것 아닐까. 그들 역시 과거를 건너뛰고 미래로 가려다가 관계가 무너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다 아픈 과거가 있는 만큼 미리 말했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common (29).jpg


다음으로 이 영화의 명대사, 숀 교수가 윌에게 말하는 "It's not your fault."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문장은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뜻이다. 윌이 어렸을 때 학대를 겪었던 일은 윌 잘못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윌이 문제가 있는 아이라서 그런게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숀 교수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윌의 과거 일은 윌의 잘못이 아니지만, 현재의 선택은 윌에게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숀은 윌의 과거에 대해서는 보듬어주지만,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윌이 갑자기 목동이 되고 싶다는 둥 상담을 피하면 화를 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장을 보면서 과거는 내 잘못이 아니며,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윌은 숀 교수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자신의 직업도 버리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스카일라에게 가는 선택을 한다. 영화 내내 넘지못했던 스스로의 마음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서 영화가 마무리 된 것이다.


common (18).jpg


아마 달라진 윌이라면, 스스로 선택을 한 윌이라면 설령 캘리포니아로 가서 스카일라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살았을 것 같다.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윌이 잘될지 안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건 윌이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밌는 점은 숀 교수 또한 아내가 죽은뒤 과거에 머물던 사람이었지만 윌이 떠나면서 숀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결국 둘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에도 명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봐도 명작이었던 작품.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 감상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