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거리였지만 처음에는 두려웠다.
초등학교 4학년. 처음으로 홀로 시내버스를 타고 참고서를 사러 갔을 때였다. 그 전에는 항상 엄마와 함께 시내에 갔었는데, 처음으로 혼자 간 것이다. 무슨 버스를 타야하고 어디서 내려야하는지, 서점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무사히 시내에 도착. 서점에서 참고서를 샀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서점에서 나오는 순간, 세상이 달리보였다. 불현듯, 철저하게 혼자 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전까지 맑은 하늘도 어둑어둑한 잿빛으로 보였다. 날씨도 왠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었다. 무서웠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 때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초조했다. 마침내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에서 내리는 순간 1차적으로 안심이 되었고, 멀리있는 우리집이 보이는 순간, "해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 날 이후로, 나에게 혼자 시내에 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마침내 내가 사는 지역의 규모, 거리 등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다. 이 일 이후, 내가 사는 지역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29살 여름이었다. 미국 유학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가까운 나라였어도 긴장됬을 텐데, 미국이라니. 마치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시내버스를 탈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13시간의 긴 여행 끝에 미국에 발을 딛게 되었다. 도착 시간이 밤 10시였는데, 픽업도 없었고, 공항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부턴 영어만 써야하는건가? 뭐지? 라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공항 밖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흑인 택시기사분께서 나한테 다가왔다. 당연한 듯이 내 캐리어를 들고 트렁크에 실었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다행히 어디로 가야할 지, 숙소 주소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숙소가 정말 있을까? 구글에서 찾아본 주소라 실제로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나는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숙소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해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지구라는 행성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행성에는 굉장히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한번씩 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적으로 낯선 장소에 가는 것 이외에도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경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 그 때와 마찬가지로 당황스럽고 잿빛 하늘이 보이기도한다. 전체가 보이지 않으며,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목표지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전체 규모 파악이라고 생각한다. 전체 규모가 인지되면 내 위치와 목표지점, 걸리는 시간이 예상된다. 남은 일은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심지어 일부를 보고 전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계속 걷다보면 전체가 보이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