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도 몇 번의 이사를 더 했고, 재개발을 목전에 둔 어느 주택가에서 세를 살 때였다. 엄마는 그사이 응급실을 들락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한 달에 두세 번이던 것이 일주일에 두세 번이 되더니, 어느 날 엄마는 숨을 쉬지 않았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억겁의 시간이 흐른 듯했다. 집이 워낙 굽이진 골목길이라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했다. 들것에 엄마를 싣고도 한참을 나간 후에야 이동식 침대에 눕힐 수 있었다. 급한 대로 서산 의료원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응급실 의사는 내게 장례 절차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혼자였다. 큰오빠는 일을 하는 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빠에게도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 휴대전화에서 길병원 담당 교수님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드렸다. 내 정신이 아니었다. 다짜고짜
"저 박미숙 환자 딸인데요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아요 병원에서 장례 준비를 하라는데 엄마 아직 안 돌아가셨어요 아직 심장이 뛰고 있어요 엄마 좀 살려주세요"
하고 울부짖었다. 그는 나를 차분히 달래며 말했다.
"어머님 지금까지 많이 버티셨습니다. 이제는 놓아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힘들겠지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언제고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 아마도 내가 말을 배울 때부터 들어왔을 그 말. 너무 오래 들어 무감각해져 있을 때쯤, 정말 그 일이 일어났다. 무심했던 죄가 너무도 무거웠다.
나는 엄마를 하루만이라도 살려야 했다. 단 몇 시간이라도.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미안했고 고마웠고,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사설 응급차를 불러 무작정 길병원 응급실로 가달라고 했다. 응급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막 일을 마친 큰오빠와도 연락이 닿았다. 울지 말고 침착하라며 바로 뒤따라온다는데, 내가 살면서 큰오빠에게 의지하는 날이 올 줄이야. 길병원에 도착하자 큰오빠 연락을 받은 인천 큰 외삼촌댁 가족들도 와 있었다. 엄마는 한참을 응급실에 있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이틀 후 의식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무 오랜 시간 호흡을 하지 못한 탓에, 의식이 돌아온 엄마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를 기억했다가 못 했다가, 엄마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숫자도 읽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씩 나를 알아보는 시간은 길어졌다.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는데,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스스로 산소 줄을 뽑는 바람에 일반 병동으로 옮긴 지 한나절 만에 다시 중환자실로 갔다. 중환자실은 하루 한 번 면회가 가능했는데, 짧은 대화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네 오빠 술 못 먹게 해라. 내 장례식 때도 술 먹지는 않겠지, 나쁜 놈…"
했다가 금세 불쌍한 놈이라고도 했다.
어쩠든 대부분 큰오빠 걱정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더러
"우리 예쁜 막내딸. 우리 공주. 고생 많았어"
라고 하면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직감적으로 이제 엄마를 보내줄 때가 왔구나 싶었다.
다음 날부터는 간호사들을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저 뒤에 저 사람들 내보내라'며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자기를 데리러 왔다고 무서워했다. 간호사들이 들고 다니는 카트를 보고는 '유골함'이라고 했다. 그런 엄마 모습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도 울 수가 없었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불안해할까 봐. 병원 근처 모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면회 시간이 되면 엄마를 보고 오고, 다시 모텔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를 며칠째.
왜인지 밤중에 머리를 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감고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중환자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그 길로 엄마에게 달려갔지만, 이미 엄마 옆 심장 박동기 모니터에는 파동 없는 반듯한 줄만 죽 그어져 있었다. 간호사는 돌아가셨어도 아직 엄마 귀가 들리시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처음 엄마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생각했던 말들. 사랑하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그 말들을 그제야 했다. 엄마의 죽음도 현실이었고, 장례도 지독한 현실이었다.
지독한 삶의 연속이었다 하더라도, 가장 깊은 연대와 사랑을 나눈 이와의 이별은 어떤 예고도 무색하게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죽음은 삶의 끝이자, 살아남은 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통과 의례가 된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터져 나온 눈물과 고백은, 슬픔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걸음일지 모른다. 모든 상실은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