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

by 천세아

친구가 가입해 둔 상조 서비스를 양도받은 덕에 장례 절차나 수의, 음식 같은 것들은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나에게는 고스란히 빚이었다. 슬퍼해야 할지, 힘들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조용한 장례식장은 큰 외삼촌댁, 작은 외삼촌댁, 큰오빠, 그리고 나의 지인들이 전부였다.

장례식 첫날, 큰오빠는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에 불쾌해 주사를 부렸다. 급기야 장례식장 앞에서 상복을 벗어던지고 사라지더니, 장례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큰외삼촌과 작은 외삼촌에게 병원비와 장례 비용 좀 도와주세요 했더니, 이런 소리 하려고 불렀느냐"며 불같이 화를 내며 식솔들을 챙겨 가 버렸다. 그나마 큰 외삼촌댁은 조의금이라도 냈다. 작은 외삼촌댁은 여섯 명의 가족이 와서 단 한 명도 조의금을 내거나 일손을 돕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다. 허무하고 슬펐다.

그렇게 나는 상주로 혼자 남겨졌다. 고맙게도 소식을 듣고 찾아와 준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웃다가 울다가, 그땐 현실 감각이 떨어져서였는지 농담도 주고받곤 했다. 장례식장에 아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먼저 간 전처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홀로 상복을 입고 있는 딸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던 아빠. 그는 내게 물었다.


"큰아빠들 왔다 갔냐?"

"큰 집애들은 와서 얼마 주고 갔냐.?"

"진짜 그것밖에 안 주고 갔냐.?"

"조의함은 어딨냐?"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있는 내 처지보다, 내 지인들에게 이런 아빠를 보인 것이, 이런 아빠에게 "제발 가라"라고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을 들킨 것이 더 슬펐다. 여전히 가난한 나보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나를 들키는 것이 더 싫던 때였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장례는 치러졌다. 서산에 위치한 봉안 시설에 유골함을 안치한 뒤, 마지막 응급실을 갔던 날 이후 처음으로 엄마와 살던 집에 가 봤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채 뽀얗게 먼지만 쌓여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나뒹구는 술병과 어질러진 집안은 큰오빠가 자주 드나들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언제 또 큰오빠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겨 나오려는데, 집주인 할머니께서 나를 불러 세웠다. 집세가 많이 밀렸다며 엄마는 퇴원했냐고 물으셨다.


"저희가 기껏해야 한 달이나 비웠을 텐데 어떻게 월세가 많이 밀려요?"


나는 되물었다. 할머니는 월세를 안 낸 지는 이미 오래됐고, 보증금도 다 까고 이제 깔 것도 없다고 했다. 이 집 아들과 엄마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내가 여태 벌어다준 돈은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나만 이 모든 것을 몰랐을까. 왜 이 집의 이방인인 나는 엄마의 장례를 혼자 치르고 왔을까. 멍해졌다. 그날 그 골목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그 길로 집에서 나와 큰오빠와 연락을 끊었다. 가끔 엄마를 보러 봉안당에 가면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큰오빠의 연락처였다. 잘 지내는지 연락 좀 달라는 메시지. 할까 말까 고민조차 해본 적 없었다. 오로지 빚 갚는 데만 몰두하며 지냈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컥할 때 빼고는 원망도, 그리움도 뒤로 미루며 지냈다. 그래도 이젠 3개월에 한 번씩 직장을 옮기지 않아도 됐고 정상적으로 4대 보험에 들어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이 조금씩 풀릴 줄 알았다. 빚만 다 갚으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헛된 희망도 품으면서.

그렇게 돈, 돈, 돈 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다 갚아지긴 했다. 나이 서른 즈음 보증금 50만 원까지 빼서 마지막 빚을 갚던 날을 잊지 못한다. 후련함과 공허함, 막막함이 마구 뒤섞인 알 수 없는 기분. 당시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수산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내가 '전복 오빠'라고 불렀었다. 친남매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늘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끔 그 오빠를 만나면 눈치 안 보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기에 이래저래 나에게는 좋은 오빠였다. 빚을 다 갚던 날 왜인지 그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사정을 얘기하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그 오빠라면 나에게 일말의 사심 없이 선의를 베풀어줄 것 같았다. 역시나 오빠는 별말 없이 나를 위해 자기 집 거실을 내줬다. 염치도 없지, 아침에 집주인 나가는 것도 못 보고 완전히 곯아떨어졌던 나는 한참 만에 일어나서야 테이블 위에 오빠가 놓아둔 5만 원을 발견했다. 너무 고맙고 미안했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이제 거처도 집도 없는 나는 전 재산 5만 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내야 했다.

비극 속에서도 빚어지는 인간적인 도움, 그리고 그 속에서 잠시 잊히는 고통의 감각은 삶을 지탱하는 작은 빛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도, 결국 나 자신만이 남겨지는 현실은 막막하고 공허했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앞에 놓인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진정한 자유란, 이 빈손으로 무엇을 채워나갈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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