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by 천세아

나는 그 5만 원을 들고 무작정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짐이라고는 옷가지 몇 벌과 속옷 몇 벌이 전부인 배낭 하나가 고작이었다. 버스 안에서 전복 오빠에게 전화해 거듭 고맙다고, 꼭 갚겠다고 말했다. 오빠도 담담하게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넸다. 눈물 콧물 범벅인 채 도착한 인천은 서산보다 더 추웠다. 수중에 돈이 얼마 없었기에 고민은 버스 안에서 모두 끝내야 했다. 터미널에 내려서는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할 일만 남았다. 그것은 죽어도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빠에게 손수 연락하는 일이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아빠는 내 연락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아빠니까, 당연히 나를 받아줄 거라 믿었다. 딸이니까, 당장 오라고 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빠는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널 어떻게 오라고 하냐'라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당장 며칠 묵을 방은 못 구해 주더라도, 갈 곳도 없다는데 밥이라도 한 끼 사 먹이러 와 줄 줄 알았다. '다시 서산으로 내려가라'는 말을 끝으로 끊어진 전화에 대고, 내가 아는 온갖 저주를 쏟아부었다. 터미널 화장실 구석 칸에 들어가 머리가 멍해질 만큼 울었다. 살아야 하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천 터미널 근처에 사시던 큰엄마 댁이 떠올랐다.

큰엄마는 아빠의 형수였다. 그러니까 아빠 형제 중 맏형의 아내. 큰아빠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는지 그전에 돌아가셨는지, 아무튼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친가 쪽은 명절마다 모든 친척들이 큰엄마 댁으로 모였다. 전날부터 큰엄마 혼자 모든 음식을 준비하셨고, 명절 당일 아침이면 다들 모여 제사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산소에 다녀오곤 했다. 그러다 싸우고… 뭐 그런 평범한 집이었다. 엄마 아빠는 이혼했지만, 나는 명절이 되면 혼자 버스를 타고 큰엄마 댁으로 가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큰아빠들이 용돈을 꽤 넉넉히 주셨으니 그것도 목적이 있었다. 그때가 아니면 푸짐한 명절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지금이야 전이나 잡채도 사 먹지만, 그때는 명절에 문 여는 식당도 드물었기에,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매년 다녀가던 큰엄마 댁이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점차 발길이 뜸해지다가, 아빠도 큰엄마 댁에 안 간다며 나도 올 필요 없다고 해서 연락을 안 드린 지 꽤 됐다. 갑자기 연락하려니 많이 망설여졌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큰엄마는 내 얘기를 대강 들으시고는 일단 오라고 해주셨다.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사를 하셨다며 알려주신 주소로 택시를 타고 가니, 큰엄마가 택시비를 들고 나와 서 계셨다.

큰엄마를 뵙자마자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집에 들어가니 큰엄마 댁에서 키우는 시츄 세 마리가 나를 반겼고, 방에 언니가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해야 한다고 했다. 따뜻한 거실에서 차려주신 밥을 먹고 긴장이 풀리자 노곤함에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누가 나를 깨워서 보니 사촌 언니였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났고, 내가 어려워했던 언니였다. 언니는 이제 출근한다며 내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짙은 화장에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세팅한 언니는 어딘가로 출근했다.

새벽 세 시쯤. 몇 번이나 울리는 진동에 잠이 깼다. 사촌 언니였다. 지금 퇴근해서 집에 거의 다 왔으니 옷 대충 입고 나오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집 앞으로 나갔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고, 창문이 열리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운전하는 사람을 언니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며 차에 타라고 했다. 우리는 셋이 근처 실내 포장마차 같은 곳으로 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 이야기도 하고, 언니는 자신이 하는 일을 얘기해 주었다. 언니는 바(Bar)에 다닌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매니저처럼 언니를 태워다 주고 태워온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이 돼서야 그 술집에서 나왔다. 언니는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거실에서 주무시는 큰엄마 옆에 조용히 누워 밀린 잠을 청했다.

살짝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큰엄마 일어나는 소리에 함께 일어났다. 아침 차리는 것을 돕고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당장 생활할 돈도 필요했기에, 인천에서 숙식과 선불, 가불이 가능하고 면접 복장이 필요 없는 일자리를 찾았다. 대부분 술집 아니면 무슨 일인지 불분명한 일들뿐이라, 첫날과 둘째 날은 검색만 하다 돌아왔던 것 같다. PC방 시간이 끝나면 큰엄마 집으로 가서 휴대전화로 또 일자리를 찾거나, 집안일을 돕고 강아지랑 놀아주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면 언니가 일어나서 같이 저녁을 먹고 언니는 출근했다. 밤 열두 시쯤 큰엄마가 거실에 자리를 깔고 주무실 준비를 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다 새벽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면 비몽사몽에 나가서 아침이 되면 들어오고…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다 하루는 언니가 일자리를 제안해 왔다.

언니가 다니는 바에 함께 다니자는 제안이었다. 돈 한 푼 안 내고 며칠째 얹혀있는 내 입장에서 큰엄마와 언니에게 '싫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큰엄마가 반찬 값 얘기도 하시고 눈치가 보이던 차에 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뭐라고 답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또 거절하는 과정에서 언니가 하는 일을 비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봐 짧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언니는 점점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말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우리 집도 나 혼자 벌어서 빠듯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 힘들게 살아. 너 눈 자꾸 깜빡이는 거 그거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 언니 똑바로 쳐다봐. 똑바로 쳐다보라고! 눈 깜빡이지 말고 입술 뜯지 마. 뭐라고? 말 우물쭈물하지 말고 크게 해. 눈 깜빡이지 말라니까. 너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해? 젊은 애가 할머니처럼 이게 뭐야? 피부 관리 좀 하고."


아침부터 밤 열두 시까지 깨어있다가 겨우 잠들라치면 어김없이 깨워서 새벽부터 술 먹이고, 술잔에 술을 남겨도 혼나고, 언니가 마실 때 안 마셔도 혼났다. 술 먹는 내내 나는 열 마디도 채 하지 못했다. 동트면 집에 들어가 언니는 언니 방에 들어가 암막 커튼치고 잠들고, 나는 거실에서 잠깐 눈 붙이다가 큰엄마가 깨시면 그것으로 하루 수면은 끝이었다. 하루는 큰엄마가 깨신 줄도 모르고 늦잠을 잤다. 시끄러운 소리에 깼는데 큰엄마가 청소기를 돌리고 계시더라. 여태 언니가 깨는 것을 염려해 그 시간에 청소기를 돌리신 적 없으셨는데. 옛날 밥 늦게 먹는다고 외숙모에게 허벅지 꼬집히던 때가 생각나면서 눈물이 자꾸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래도 감사해야지, 내가 이분들 미워하면 안 된다. 그러면 사람도 아니다.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힘들고 눈치 보일 때마다 그 문장을 암기하듯이 계속 되뇌었다.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그런데 그날은 겨우 붙잡고 있던 어떤 끝이 뚝하고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술집에서 나와 한참을 뛰었다. 골목에서도 벗어나 공터 같은 곳을 찾아 들어가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렇게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만큼 소리를 지르고 한참 만에 다시 언니가 있는 술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단출한 짐 가방을 챙겨 조용히 그 집을 나왔다. 감사했다는 쪽지 하나만 남기고.

가장 약해진 순간에 듣게 되는 날 선 비난은, 견뎌왔던 마음의 둑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한 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진짜 발버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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