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

by 천세아

시간은 흘렀고, 집안 사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빚은 계속 늘었고, 서산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왔다. 매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쉬운 고통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곳마다 새로운 적응을 해야 했고, 버는 족족 빚 갚고 집에 보내고 나면 로드샵 로션 한 병조차 사치였다. 고시원, 달방, 기숙사, 친구 집. 값싸게 머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기꺼이 일했다. 경험은 쌓였지만 경력은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은 많았으나 온전히 내 것이 된 것은 없었다. 나이는 점점 차오르는데, 집에서는 이런 나의 희생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어쩌다 한 번씩 엄마 집에 내려가면, 전에는 없던 값비싼 가전이나 가구가 눈에 띄었다. 따져 물을 기운도, 용기도 없었다. 악마 곁에 엄마를 두고 홀로 도망쳤다는 죄책감. 그것이 내 등을 내내 짓눌렀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산으로 내려와 같이 살자는 제안이었다. 큰오빠가 원양어선을 타게 되어 몇 달에 한 번씩만 집에 들를 것이라는 이유였다. 나도 내심 엄마 곁이 그리웠기에, 못 이기는 척 짐을 싸서 내려갔다. 당시 살던 곳은 논밭 한가운데 있는 집이었는데, 방-거실-주방이 하나로 연결된, 말하자면 긴 원룸 형태였다. 우리가 집을 비우면 지붕에서 쥐새끼가 내려와 우리 먹던 음식을 뜯어먹을 정도였다. 내 나이 이십 대 후반이었으니, 아무리 시골이라도 그런 집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감사했다. 더 이상 혼자는 아니니까.

오빠는 엄마 말대로 며칠 뒤 배를 탄다며 떠났다. 하지만 반년 남짓 지나 그는 웬 중국 여자를 데려와서는 결혼할 거라고 했다. 그 중국 여자는 나를 '메이메이'라 부르며 엄마에게도 살갑게 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에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유부녀였고, 결국 오빠가 배 타며 벌어온 돈을 모두 뜯기고서야 끝이 났다.

지독한 가난과 불안 속에서 '가족'이라는 굴레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희망을 좇아 떠나보지만, 삶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또 다른 비극을 반복한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고통을 받아들이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불행은, 때로 낯선 희망보다 편안한 그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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