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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ldon Jan 12. 2023

현직 광고인이 바라본 드라마 대행사 1화 후기

조금 덜 광고 같은 광고 이야기

2023년 1월 7일 첫 방송을 한 드라마 대행사


티비에서 우연히 JTBC 드라마인 대행사 1화를 봤다.


'뭐지? 광고 대행사 이야기인가? 이보영이?!'라는 생각으로 시청했다. 사이트에 요약되어 있는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 (이보영)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우아하고 처절하게 그린 광고인들의 전투극. 대단한 스포는 하고 싶지 않고, 극중 인물 '고아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대사 혹은 태도에 집중하고자 한다.


따라서, 뉴욕 현직 광고인의 눈으로 바라본 드라마 '대행사' 1화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회고하고자 한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 말고 잘하는 일을 해야지.


카피라이터 직원에게 냉정한 '조언'을 하는 고아인 (이보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피라이터 베이스)


아프지만 공감되는 대사다. 안타깝게도, 필사도 동의하는 생각이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잘하는 일을 해야지 살아남는다는 논리. 나는 극 중 '고아인'을 이해하는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실제로, 광고 대행사 면접에서 자주 묻는 질문 리스트 1위에 "좋아하는 게 뭐고 잘하는 게 뭐예요?"이다. 나도 한국에서 카피라이터로 취직하고자 할 때,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었다. 면접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말이다. 특히, 정말 훌륭한 카피라이터 선배들이 더욱더 그랬던 것 같다. 대체로 카피라이터들은 냉철하고 현실적이며 독종이 많다. 극 중 인물인 '고아인' 또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여성'이다. 여기서, '여성'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 이야기는 이어서 하도록 하겠다.


그 잘난 척 왜 소비자들이 봐야 하는데?


... 잘난 척하는 PT를 뜯어버리는 우리의 고아인 씨디님...


"그 잘난 척 왜 소비자들이 봐야 하는데?" 이 대사 소름 돋았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광고 제작팀 (크리에이티브)들은 아이디어를 벽에 붙여 둔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뜯어 버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 회의실을 'War Room'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전쟁터'라는 뜻이다. 좋은 아이디어 (생각)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바닥에 버려지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Creative Director도 아이디어를 버릴 명분이 필요한데... (그들도 사람이자나~)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그럴 싸한 말들', '잘난 척하는 말들' 예로 들자면, 'HyperConsumer' 이런 합성어들? 극도로 경멸한다. 따라서, 본질이 없는 '있어 보이는 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버려진다. 보통, 정말 훌륭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형용사, 부사 빼고 명사와 동사만으로 '한 문장'으로 말해봐.



이야, 이 대사도 극 중에서 나왔었다. 아마도, 작가가 실제 크리이에티브 디렉터를 만나고 조사를 많이 하신 듯하다. 나도 슬프게도... 이 말을 한다... 그런 내가 미우다...ㅠㅠㅠ 


미국 대행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는 특히나 부사와 형용사 등으로 꾸미는 말들이 많은데, 나는 이런 말들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기획서에는 그런 말들보다는 정말 짧고 본질적인 문장들로 기획서를 쓴다. 오길비는 더많이 단어가 더많은 판매를 부추긴다고 했지만, 컨셉이 되는 문장은 3~4 단어 혹은 1~2 단어로 압축, 요약되어 표현된다. 


즉석해서 예를 들자면,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작고 편안한 자동차, 티코!' 이런 문장은 정말 형편없는 '카피'다. 다른 문장으로... '큰 사람도 작은 차를 탑니다. 티코'라는 문장이 더 좋은 '카피'다. 즉, 이렇게 잣대가 분명해진 크리이에티브 디렉터들은 아이디어를 버릴 수 있는 자질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잘난 척하는 글 말고, 형용사, 부사 빼고 동사와 목적어만으로 된 카피"를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 왜냐하면, 계속 실패하는 아이디어를 내면 우리들은 해고 당하기 때문이다. 흐규흐규ㅠ



사람이 더 살기 좋아진 시대니까 사람의 시대.


'사람'이 더 살기 좋아진 시대니까 사람의 시대.


카피 팀원이 버렸던 아이디어를 꺼냈다. '사람의 시대.'


나는 이 글을 보자마자, 과거 TBWA 박웅현 씨디 팀이 제작한 '사람을 향합니다.'가 떠올랐다. 아마도, 드라마 작가는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책 '우리 회의나 할까?'에 쓰여 있는 회의록을 복기하지 않았을까? 카피를 있는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으니까, '사람의 시대'라는 컨셉으로 표현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은 2005년부터 지속되어 온 SK 텔레콤의 브랜드 캠페인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이 SK 텔레콤이라는 메시지다. 그를 기반으로, 브랜드 캠페인 및 사회 공헌 캠페인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장시켰다. 2020년 인쇄 광고를 보면, '가능성의 릴레이'라는 지속적인 캠페인을 볼 수 있다. 사실, '가능성의 릴레이'는 2012년에 최초로 시작된 장수 캠페인으로 '사람을 향합니다'의 지속형 캠페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에서 기술로 다시 사람으로'라는 태그라인으로 사람이 꿈꾸는 것을 기술이 해낸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따라서, 극 중에 등장한 '사람의 시대'라는 것은 아마도(?) SK 텔레콤의 빅 아이디어인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것을 오마주 했다고 생각한다.


200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캠페인. 위는 2008년 인쇄 광고.
'사람을 향합니다' 지속형 캠페인 '가능성의 릴레이' 2012년 판 버전.


전할 수 없는 마음까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SK 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 중,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했던 광고는 위와 같다.


광고의 배경은 택시에 올라탄 한 중년 남성이 죽은 딸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2003년 포항 서의호 씨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카피가 나오고, 중년 남성은 죽은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생전 딸의 녹음 목소리.


"영은이가 보고 싶은 분은 음성을 남겨주세요. 삐이-"


전화를 끊고, 다시 한번 전화를 거는 남성. 

"영은이가 보고 싶은 분은 음성을 남겨주세요. 삐이-"


택시에서 내린 남성은 혼잣말을 한다.


"우리 딸, 하늘나라에서 잘 있니?"


전할 수 없는 마음까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SK 텔레콤.


심금을 울린다. 나는 이런 광고가 사무치게 그립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광고가 진짜 광고라던데...

20년 전에 이런 광고를 만들었던 광고 제작팀이 자랑스럽다.


아래는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 모음집이다.


https://youtu.be/gepHOUSRCug



저는 광고 만드는 일이 옷 입고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요.



"광고 만드는 일이 옷 입고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즐거운 일이다." 


이 문장도 아주 유명한 문장이다. 데이비드 오길비가 책에서 썼던 말인데, 수많은 광고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문장이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카피라이터 및 아트디렉터들이 본인의 업을 자조적인 태도로 표현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물론, 우리 엄마는 아직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신다"는 말도 항상 덧붙인다. 하하.


Advertising is the most fun you can have with your clothes on. 
... 당신이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어떤 일이냐고 물어본다면...



회사가 어디 실력으로 승진을 하나...


... 사수에게 피드백을 받으러 온 '고아인'에게 혼잣말을 하는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선배님...


갈등의 복선이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여성으로서 대행사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갈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여성이라는 성별뿐만 아니라,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유, 또한 대기업 회장 손녀딸이 아니라는 출생의 이유 등... 수많은 이유들이 '고아인'의 성장을 막는 갈등이 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 아닐까? 실제로, 많은 여성 광고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를 가지면서 동시에 광고를 할 수 있을까요?" "육아 휴직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여성으로 부장이 될 수 있을까요?" 등... 수많은 현실적인 제약들에 대한 고민들이다. 요즘에는 학벌, 성별, 출생, 지연 등보다는 실력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꼭 그렇지는 않다)


... 막 본부장으로 승진한 주인공에게 권고사직을 권하는 더러운 문화를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어떨까? 미국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것은 Ageism. 40대가 되면, 광고 대행사에 다니는 게 가능이나 할까?라는 걱정. Fenimsm은 불문율인 것 같다. 미국에서는 뉴욕, LA, 시카고가 가장 큰 광고 산업 지역이다. 잘 알다시피,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 그만큼, 남녀차별에 대해서 엄격하다. 따라서, 여성이라서 실력이 있음에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안 시킨다?라는 건 없다. 실제로, 나는 수많은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 일해왔다. 여전히 남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많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큰 Diversity에 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조금 덜 한 것 같다. 실제로, 육아 휴직에 대해서 아주 관대하고 그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있는 대기업 광고 대행사 기준에서는 그렇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여자는 임신하면 끝이지."라는 아주 몰상식한 생각이 팽배한 것 같다. 따라서, 이 드라마의 '고아인'은 분명히 이겨낼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시청자들이 바라는 사이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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