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짓기' 클럽
Building Bridge program을 직역하면 '다리 짓기' 클럽 정도가 되겠다.
교내 연합 클럽 중 하나로 다섯 개의 다른 이웃 학교들의 학생들과 인생 신념과 문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동아리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이 클럽에 가입한 건 우리 학교 이외의 다른 학교의 또래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영어로 말하는지 들어보고 싶었
다. 그냥 학교 숙제가 많다거나 하는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이야기보다 뚜렷한 자신의 신념과 인생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나만의 신념과 종교, 인생철학 등에 대해 깊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흔치 않다고 생각해 이번에도 'Why not?'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신청했던 것이다. 연합 클럽인 만큼 학교를 대표할만한 야무지고 똑똑한 모범생 친구들도 많이 참가하는 클럽이었다. 평소 킹 선생님의 글로벌 시티즌 수업을 좋아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제 사회 이슈에 대해서 배우고 여러 문제에 대한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시점에서 피드백을 받고 나 또한 나만의 관점을 공유할 때면 정말 '세계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글로벌 시티즌 수업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수업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조금 과장일까. 나는 오늘 수업에서는 선생님께서 어떤 국제 이슈에 대해서 소개해주실지 먼저 신문과 뉴스를 보고 예측하기도 해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지구 곳곳에 온통 관심을 쏟았다. 내가 이렇게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보고 글로벌 시티즌 수업을 들으러 학교를 갈 때, 다른 나라의 어떤 친구는 테러 전쟁에 의해 학교는 커녕 삶을 유지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소신 있는 기후 위기 학교 파업 시위를 하면서 노벨 평화상 1위 후보로 뽑혔다. 또, 어떤 친구는 자신만의 날 것 그대로의 일상을 찍은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AI 기술을 이용해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포브스가 선정한 20대 리더 리스트에 올랐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데 각자의 위치에서 해내고 있는 일들이 너무나 달랐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세계를 향한 '글로벌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타파해줄 기회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다른 학교의 남자 친구들도 아주 조금 더 궁금했으리라.
첫 번째 세션은 우리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있는 Sienna college에서 열렸다. 방과 후에 클럽 멤버들과 함께 호스트 학교로 걸어갔다. 다양한 색과 패턴의 교복을 입은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면서 호주 학교의 교복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세션은 갈색 프레피 교복을 입은 호스트 친구들이 학교를 구경시켜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학교 투어가 끝나면 넓은 시청각실에 모두 모여 호스트 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떤 신념을 배우는지에 대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발표가 끝나면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자기소개도 하고 더 자세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소규모였지만 10명 정도 되는 초면인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자기소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인사부터 버벅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라고 말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나는 다 알아듣고 너 말이 다 맞아'하는 인자한 눈웃음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Faith (신념)라는 단어도 미리 찾아가 겨우 주제를 이해했는데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밀도감 있는 대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돈의 카오스 속 첫 번째 다리 짓기 클럽이 끝이 났다. 키 크고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 친구들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ㅎ
다음 세션은 Xavier School에서 열렸다. 멋진 시티뷰가 보이는 학교였다. 오늘 세션에서는 게이 결혼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동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7년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인생 동안 남녀가 연인이 되는 것 이외의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모두가 이성을 좋아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소규모 그룹에서 한 게이 친구가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경험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게 나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처음에 자신이 성 소수자인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가족들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 오늘 점심 메뉴를 얘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용감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단번에 확신해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히잡을 쓴 무슬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고등학생으로서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무슬림 친구들은 미디어가 오히려 평범한 무슬림 사람들 모두를 뉴스에 나오는 중동 국가의 몇몇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라고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신념을 가진 학생과는 달리 무슬림에게 국제적으로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와 싸우며 사는 게 걱정을 넘어선 화가 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 점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더 많이 공부하는 무슬림 친구들의 주체성 있는 모습은 내가 그들을 향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박살 내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절대 그 사람을 단정 지을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를 수 있고 그대로 존중받아야 했다.
마지막 세션은 유대인 학교 Bilak School에서 열렸다. 유대인 학교가 따로 운영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로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그룹이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 클럽을 통해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역사책에서 읽기만 했던 유대인 친구들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니 그들에게서 또 다른 유쾌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학생들이 진행하는 유대학에 대한 발표를 들은 후, 이스라엘의 대표 음식 후무스가 요리된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쌈장 같은 텍스처에 매운맛을 싹 걷어낸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에 피타 빵과 크로켓을 닮은 팔라펠을 함께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의 신념, 영감, 믿음에 대해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눈다.
종교적으로 치우쳐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만 편파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고르게 '나'에 집중하며 이야기한다. 각자가 어떻게 그 종교를 가지게 되었는지부터 왜 그 종교를 떠나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사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두와 담담하게 그리고 성숙한 태도로 공유하는 17살들이었다. 내가 떠올리는 유대인은 세계 2차 대전과 천재, 그리고 부유하다는 이미지였다.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실레가 될 질문일 것 같아 '에이, 안돼. 그냥 말자.' 하고 입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오늘 물어보지 않으면 평생 답을 못 얻을 것 같아 쉬는 시간에 유대인 선생님께 살짝 여쭈었다. 불쾌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오래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돌려 질문을 드렸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독일인을 싫어해요?"라고 물어봤다. 불려 나갈 각오까지 하고 눈 질끈 감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은 의외로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ㅎㅎ 좋은 질문이야. 사실, 유럽에서 유대인에게 가장 지지적인 나라가 독일이야."라는 상상도 못 한 답을 해주셨다. 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 머릿속 내가 생각하고 알고 있던 모든 사실들이 마구 엉켜 뒤틀리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는 게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다리 짓기 클럽을 통해 더 많은 문화와 종교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문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점은 내게 아주 중요한 변화였고 그런 기회를 제공해준 다리 짓기 클럽은 터닝 포인트다 다름없었다. 성 소수자 친구들, 유대인 선생님, 무슬림 친구들과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돼서 감사했다.
한국에선 접해 보지 못한 종교의 의식과 관습, 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고 ‘나의 종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부모님이 A라는 종교를 갖고 계시면 당연하게 자녀들도 A 종교를 따라야 되는 줄 알았다. 나의 신념과 나의 종교는 내가 선택하는 것. 가족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내 결정에 의해 특정 종교를 따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신념은 무엇이 있는지 더 시야를 넓혀 알아볼 수 있었다. 다리 짓기 클럽을 통해 다른 학교도 방문하면서 대학교 같은 거대한 캠퍼스를 가진 학교, 기숙사 학교, 각 종교적인 모습이 뚜렷한 학교들을 다녀보았다. 천장이 굉장히 높았던 웅장한 성당 채플에서 색다른 예배도 드려보며 다양한 종교의식들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 인상 깊다. 새로운 신념과 종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좀 불편한 대화일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종교 얘기를 나눌 때 습관적으로 ‘잘 모르겠다’,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라고 제일 많이 말한 것 같다. 그만큼 마음에 확 와닿지 않으면서도 내가 드는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주제가 ‘종교와 신념’ 아니었을까. 그렇게 모르겠다고만 말했는데도 '모를 수 있는 게 당연하다'면서 다들 나에게 공감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줬던 멋진 친구들이었다. 다음 세션에도 참가할 거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교환학생이 아니라 재학생이었다면 계속 참가했을 클럽일 거라고 말했더니 다들 내가 교환학생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꼭 안아준다. 세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한 층 더 눈높이를 더하면서도 나만의 문화와 신념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잘 스며들게 한 것 같아 의미가 있었다. 큰 보울 속 각기 다른 신선한 샐러드 재료가 되어 다양한 문화와 신념을 마구 공유하는 상큼한 샐러드 볼처럼.
다리 짓기 클럽 세션이 모두 끝나고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활동을 하는 모의 유엔 클럽을 알게 되었다. 다리 짓기 클럽이 캐주얼 옷이라면 모의 유엔 클럽은 비즈니스 정장이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싶은 단어였지만 '유엔'은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단어였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막상 각 잡힌 국제회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냥 재밌진 않았다. 한껏 겁을 먹고는 글로벌 시티즌 킹 선생님께 방법을 여쭤봤더니 나를 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같은 반 친구 마틸다를 소개해주셨다. 첫날은 Mock session (연습 토론)이었는데도 숨 막히는 논쟁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모의 유엔 클럽을 분위기를 느끼고 더 겁을 먹었다. 각 국 대표를 맡은 참여자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영어 문장들에 절로 멍이 때려졌다. 게다가, 모의 유엔은 유엔의 개회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진행하기 때문에 처음 듣는 '유엔 용어'도 많았다. 친절하고 참하게 생긴 마틸다의 얼굴에서 논리적인 언어와 단호한 제스처가 나오는데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멍은 그만 떄리고 나의 스피킹 레벨을 하루빨리 향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는 순간, 두 번째 토론에 참여해보겠냐는 당황스러운 질문이 들렸다. 이번에도 일단 해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각 나라를 대표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대신 말해준다거나 내 차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맡은 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국가 대표로서 뭐라도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나대는 열정으로 이렇게 나는 주립 모의 유엔 토론 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 용케 껴있다
나는 학생들이 체득한 생각이나 지식 따위는 모두 무시하는 주입식 교육보다 개개인의 의견을 인정하고 경청해주는 선생님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며 시너지를 내는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마틸다랑 만났던 첫날, 틸다는 "내가 너 궁금한 거 도와줄게. 영어 시간 맥배스는 이해되고 있어? 역사 시험 타임라인도 언제 한번 날 잡아서 같이 만들어보자"라고 선뜻 얘기를 해주었다. 무한 경쟁 사회 속 한국 친구들에게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중학교 때, 잘 정리된 문제집을 보고 "이 문제집 뭐야?"라고 물었는데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서점에 가면 다 팔아."라며 문제집을 철썩 닫고 집어가는 여학생과는 매우 달랐다. 공부를 도와준다는 말이 굉장히 묘하면서 무한대로 든든해졌다. 틸다는 나와 통하는 게 많은 친구였다. 내가 만난 17살 중에 '공공외교'란 말을 알아 들었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같은 관심 분야인 국제 이슈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다. 중국과 남북한 관계 등 아시아 사회에 대해 나보다 아는 게 더 많은 친구였다. 호주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시아 사회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가진 문화도 공유하면서 나는 종종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서로의 눈을 바로 보며 얘기하고 있으면 내가 되고팠던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영롱한 호수 빛 같이 푸른 눈을 가진 친구와 막힘없는 영어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끝없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짜릿했다.
멜버른 시립 도서관의 한국 책 서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꽤 오래된 책들 사이로 내 눈을 사로잡은 책은 ‘링컨 타운 카를 타고 보스턴을 달린다’였다. 제목보다 더 반짝였던 건 ‘글로벌 커뮤니케이터, 외교관 지영선’이라는 작은 글씨였다. 글로벌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었던 나는 책을 얼른 집어 들고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을 대출을 하려고 대출증을 만드려는데 도서관 회원이 되는 과정이 무지 복잡했다. 그래서, 책을 끝내기 위해 시립 도서관을 3번이나 다시 찾아 책을 끝냈다.
그때의 내가 남긴 책에 대한 메모다:
보스턴의 정치인들은 사무실을 상가 일층에 자리 잡아 투명하고 큰 창문을 통해 그들이 일하고 회의하는 장면이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보이면서 일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듣고 그 속마음까지 읽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문화, 환경, 여성 등 다양한 분야의 폭넓은 지식과 문화적 소양을 쌓으신 점을 닮고 싶었다. 이런 장점으로 보스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총영사’의 역할을 잘 해내신 것처럼 나 또한 한국과 세계를 잇는 가 역할을 하는 문화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싶다. 지영선 외교관님은 ‘여자로 태어난 게 강점일까? 약점일까?’ 하고 독자에게 질문은 던지기도 했다. 처음 생각해보는 질문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국립 외교원 사이트와 여성 외교관분들을 찾아보던 중 한인 뉴스 사이트의 여성 외교관님에 대한 기사에 달린 다른 주의 한인 회장의 어이없는 댓글을 읽게 되었다. ‘여성 총영사여서 터놓고 지내지 못한 게 아쉽다.' '여성 총영사여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남자가 중요한 사회적 위치를 맡는다’, ‘남자가 일을 더 잘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매우 언짢았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구 앞에서든 유동성 있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외교관은 '대사나 총영사라는 스타가 되기 전에 길고 고된 뒷바라지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외교관님 글처럼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한국은 폭죽이라고. 작지만 한 번 보면 황홀함을 맛볼 수 있는 재밌고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매력 터지는 나라라고. 외국 친구들이 세계 지도 어디쯤에 한국이 위치해 있다는 것도 잘 모르기도 하지만 우리만의 위치에서 뿜어 나오는 당당한 아우라와 부드러운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유 노 김치에서 강남 스타일, 방탄 소년단, 그리고 이제는 오징어 게임까지. 그만큼 건강하고 매력적인 나라인데 작은 나라 안에서만 무한 경쟁을 하는 교육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글로벌 시티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항상 아시안에게 인사를 할 때면 니하오와 곤니찌와에서 그치고 마는 것 아닐까. 그런 작은 상처에 마데카솔을 발라주는 역할을 하는 문화 외교관이 되어 한국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멜버른 시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책들, 학교에서 만나는 여러 나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아일랜드,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온 친구들, 또 그 친구들과 글로벌 시티즌 시간에 이야기하는 국제 사회 문제들, 다리 짓기 클럽에서 얻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들이 모두 모여 이루는 다채로움 덕분에 나는 세상을 더욱 넓고 깊게 바라보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각들이 나에겐 소중한 선물이며 여전히 나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