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by 이청목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상장 같은 걸 들고

걸어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2월, 학생들이 졸업하는 시즌이었다.


해맑게 웃는 학생들을 보니

내가 졸업한 것도 아닌데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4학년 담임 선생님은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매번 몽둥이를 들고 다녔다.

그리고 몽둥이에 호칭을 붙였다.


낚싯대 뒷부분에

검은색 테이프를 칭칭 감아놓은 것을

'삼촌'이라고 불렀고,


매일 마른 수건으로 닦아서

번들거리는 당구채는 '아버지',


당구채보다 두껍고

거칠어 보이는 몽둥이는 '할아버지'였다.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조차 싫다.


지금으로 말하면

채벌이 주특기인 선생님이었다.


숙제를 안 해도 때리고,

준비물을 안 챙겨 와도 때리고,

뭔가 조금만 잘못하면

삼촌, 아버지, 할아버지 중에 골라야 했다.


시험을 보고 나면

자신의 시험지를 직접

채점하게 했다.


그리고 틀린 숫자대로

손바닥이나 손등을 맞았다.


말로는 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선생님이 매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악마가 몽둥이를 들고 오는 것 같았다.


시험을 못 본 날에는

몽둥이로 맞을 생각에 한숨만 푹푹 나왔다.


시험지 채점하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답을 불러 주었다.

맞는 게 아프고 싫어서

틀린 문제 4개를 맞았다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날따라

채점을 한 번 더 한다고 했다.


시험지를 분단별로 바꿔서

다시 채점하도록 했다.


1분단 학생들의 시험지는 3분단으로,

2분단 학생들의 시험지는 4분단으로.

결국 나는 거짓말로 채점한 게 들통났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동지인 녀석들이 대여섯 명 정도 되었다.


나의 동지들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당구채로 맞았다.


우리는 다 울었다.


너무 아파서 학교를 가기 싫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왜 삐뚤어지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을 믿어주지 않고 공포심으로만

공부를 시키려 했던 선생님.


내 기억에 선생님의 채벌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누구는 살살 때리고,

누구는 아빠하고 얘기가 됐다며

들어가라고 했었다.


어린 나이에

우리 집은 가난해서

나는 선생님께 매일 혼나는구나!

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5학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선생님을 안 봐도 된다는 안도감과

5학년 담임 선생님도 그러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다행히도

5학년 담임 선생님의 사랑의 매는

자로 손바닥 한두 대가 다였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잘 때리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 성적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수학 경시대회를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5학년보다 6학년의 성적은 더 좋았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림을 그려봐.


너는 체육을 잘하니까

운동을 열심히 해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잘하는 것을 칭찬해 주는 선생님이었다.


졸업할 때

내 통지표에는 수, 우, 미, 양, 가중에

수와 우만 가득했다.


졸업식 때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사진이 보고 싶다.


설 연휴 때 꼭 찾아봐야겠다.



어린 청목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청목아

시험지를 거짓으로 채점한 건

분명 잘못한 일이 맞아.


하지만 그 선택은

네가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맞을까 봐.

또 아플까 봐.

그게 겁이 나서 그랬던 거지.


그건 비겁함이 아니라

어린 네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어.


이제 와서 보니 그때의 너는

잘못한 아이가 아니라

겁이 많았던 아이였더라.


그러니까

기억을 억지로 지우지 않아도 돼.


이제는 이해해 주는 어른이

되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