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빨간 날, 다른 마음

그때와 달라진 나 (행성 -15)

by 이청목

달력을 넘기다가

빨간 날이 눈에 들어왔다.


연휴였다.


예전에는 달력에 빨간 날이 많아지면

마음이 먼저 무거워졌다.


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명절이 끼어 있는 달,

연휴가 두 번이나 있는 달,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


사람들은 쉬는 날이 많아지면 기뻐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회원들이 여행을 가면

운동 횟수는 남아 있고

재등록은 뒤로 밀렸다.


신규 등록은 줄어들고

센터는 평소보다 조용해졌다.


예약표에 빈칸이 보이면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번 달은 괜찮을까.

고정비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러다 흐름이 꺾이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쉬는 날은

나에게 숫자를 세는 날이었다.


회원들이

“이번 주 여행 가요.”라고 말하면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남은 회원권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 회원은 언제 재등록할까.

다음 달에도 계속 올까.


수업 시간표를 보며

혼자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센터를 지키는 사람이었고,

매출을 책임지고

직원 월급과 월세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연휴는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었다.


연휴가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바빠졌다.


사람들이 쉬는 날이

나에게는 긴장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달력에 빨간 날이 많으면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금 더 자도 되겠구나.

늦잠을 자고 일어나

커피포트를 뜨겁게 달구고

여유롭게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겠구나.


이번 주에는 도서관 가서

마음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겠구나.


예전의 나는 연휴를 걱정했고

지금의 나는

연휴를 기다린다.


같은 빨간 날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마음마저 이렇게 쉽게 달라질 수 있나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간사한 게 아니었다.


그저

삶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책임져야 할 것이 있었다.

매달 채우고 넘겨야 할 숫자가 있었다.


사업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짊어지는 일이었다.


나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직원의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연휴는

그 책임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숫자에서 멀어졌다.


직장을 다니며 내 몸과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피곤하면 조금 더 쉬어도 되고

마음이 지치면

잠시 멈춰도 된다.


상황이 바뀌니

연휴의 의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쉬면 손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쉬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람인데 생각은 이렇게 달라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연휴를 반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쉬는 날에도 일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내 생각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센터를 지키기 위해 불안했고

지금의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쉬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영업이나 사업이

안 좋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지금의 나는

쉬는 날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연휴를 기다리는 내 마음을

굳이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삶을 인정하고

연휴의 시간에

느긋한 드립 커피와 늦잠으로

행복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