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하루에도 의미가 있다.

좋아서 하는 일과 버티는 일 사이에서(행성 -14)

by 이청목

‘따르릉’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시계 소리

새벽 4시 50분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다.


알람 시계를 끄고

나무 몽둥이처럼 굳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평소와 다르게

몸은 쇳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매일 먹는 고지혈증 약을 먹기 위해

약통을 열었다.


이런...

약이 두 개만 남았다.


보통은
일주일 전에 약을 타러 간다.

그런데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퇴근 후 글을 쓴다는 핑계로

내 건강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처방전을 꼭 받으러 가야만 했다.


출근 준비를 서둘러 했다.


직장에서는

늘 그러듯 웃으며 환우분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인지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런 날은

운전하느라 앞만 보고 있어도 된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남은 환우분은 단 두 분이었다.


4시 30분에

치료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5시가 퇴근 시간이지만

10분 늦게 퇴근한다는 마음으로

환우분을 모시러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환우분이 손을 흔들며 본인의 위치를 알렸다.


그리고 그때

다른 종합병원에 있는

마지막 환우분께 전화가 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4시 50분이었다.


팀장님께 지금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전화했다.


팀장님은 평소에 늘 이런 말을 했다.


“나는 7시 되면 칼퇴근할 테니

이 주임은 5시 되면 칼퇴근해”


나는 7시 출근 5시 퇴근이고

팀장님은 9시 출근 7시 퇴근이다.


그래서 팀장님이 마지막 환우분을

모시러 가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님의 지시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오는 길이니까 들렸다가 다 모시고 와”


마지막 환우분이 계신 병원은

지금 내가 가는 것보다

팀장님이 가는 게 15분은 빠르다.


환우분을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게 하려면

팀장님이 가셔야 하는 게 맞았다.


결국 나는

마지막 환우분까지 모시고 돌아왔다.


사무실 안에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웃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정리를 했다.

퇴근은 30분이나 늦어졌다.


고지혈증 약 처방전을 받기 위해서는

6시까지 병원에 가야만 했다.


서둘러 운전하는데

갑자기 끼어드는 승용차와

점점 늘어나는 차들로

예민해졌다.


다행히 병원에는 6시에 도착했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하라는 것.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까지 30분 늦어지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직장을 그만두었던 이유가

이런 부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만둘 수가 없다.


고정지출이 있다.

그리고 글을 계속 써야 한다.


그래서

쉽게 그만둘 수 없다.


안 좋은 생각을 계속하고 있으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분이 더 상할 것 같아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쪽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차 안에서 사람들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가 글이 된다.


치료를 받으러 들어가고 나면

대기 시간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시간에

대화 나눈 내용을

메모를 하기도 한다.


틈틈이 SNS를 하면서

짧은 글을 쓰기도 하고,

브런치 글을 읽기도 한다.


나는 돈을 벌면서도

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내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완벽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일과

버티며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엔

우리가 버티는 삶에도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생각을 바꾸길 잘한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고


하기 싫었던 일을

나에게 맞는 일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