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행성 -12)

by 이청목

환우분을 모시러

A병원에 도착했다.


그날은 유난히

이동 거리가 길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가며

환우분들을 모시다 보니

어느새 네 시간 가까이

운전하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자

허리에서 괜히

삐그덕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아이고 허리야…”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환우분이 나오시려면

아직 1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차에서 내려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천천히 뱅글뱅글 돌렸다.


굳어 있던 허리가

‘뚝뚝’ 소리를 내며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다리도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며 몸을 풀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갑자기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게 누꼬!”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두 분은

손을 꼭 잡은 채 한참을 웃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고향 친구인 것 같았다.


한 분은 환자로 오신 것 같았고

한 분은 보호자로

함께 오신 것 같았다.


“진짜 세상 좁다.

우예 여서 만나노.”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래서 사람은

죄짓고 살면 안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


두 분은 한참을 웃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예전에 장사를 하던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 우리나라에는

등산복이 크게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시장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사람들은 등산복을 입고 다녔다.


그때 나는 인천에서

등산복 장사를 했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광명에서

등산복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네

가게 옆에 구둣가게 있니?”


어머니 가게에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

옷을 고르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옷 가게

우리 동네에도 있는데…”


어머니는

그냥 맞장구를 치며

어느 동네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동네가

내가 장사하는 동네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손님이

우리 옆 가게 구둣방 사장님의

친구였다는 사실이었다.


그 손님은

구둣방에 놀러 왔다가

우리 가게에도 들르던

단골손님이었다.


손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


“이래서 사람은 죄짓고 살면 안 돼.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괜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없을까.


옷값을 깎아 달라고 할 때

내가 얼굴을 찡그린 적은 없었는지.


불친절하게

대한 적은 없었는지.


괜히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날 이후

나는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장사를 할 때도

가능하면 웃으며

손님을 대하려고 했다.


그 기억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

병원 앞에서 만난 아주머니들 덕분에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지 않은 것 같다.


어디서 누구를 다시 만나게 될지

정말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이

좋은 인연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항상 웃으며 살아가야겠다.


앞으로 웃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으니

오늘은 행복한 하루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