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했던 금요일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찾아온 작은 행복 (행성 -10)

by 이청목

출근해서 이송 스케줄을 확인했다.


오전 두 시간 동안

이송 일정이 비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조용한 아침이었다.


그래도 나는 차량을 타고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병원 입구 쪽에 차를 세웠다.


차량 앞, 뒤로 의원이름과

전화번호가 있다.


차량을 세워 두는 것만으로도

내가 속해 있는 암 전문 의원이

홍보가 되기 때문이다.


병원 앞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병원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병원이라는 곳은

늘 조용한 전쟁터 같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 환자분들 중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치료를 받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매일 종합병원에 와서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암 전문 의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이어 간다.


예전에는

종합병원에 입원해서

모든 치료를 받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암에 걸린다 해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 치료라는 것은

생각보다 긴 시간의 싸움이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짧게 떨렸다.


팀장님 전화였다.


입원실 청소를

잠깐 도와 달라는 연락이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다시 의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청소도구를 가지러 미화실로 갔다.



미화반장님은

청소도구를 챙겨 주시더니

잠깐 기다리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얼른 마시고 가."


두유였다.


나는 두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달지 않은

고소한 두유였다.


차가운 두유가

입을 지나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내 몸속 어디까지가

비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아침으로 먹은 삶은 계란 한 개와

물에 탄 단백질 파우더는

이미 오래전에 소화됐나 보다.


미화반장님이

몰래 건네준 두유 한 잔이

비어 있던 속을 조용히 채워 주었다.


시원한 두유를 마셨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


청소를 마치고

환우분을 모시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무릎이 불편한 환우분을 위해

목욕탕 의자를 차량 뒷좌석 문 앞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환우분은 목욕탕 의자부터 밟고

힘겹게 올라탔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오늘 치료 끝나고

집으로 갑니다.”


외박으로 집에 가셨다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오신다는 말이었다.


환우분들은 이제

내가 묻지 않아도

자신의 스케줄을 먼저 말해 준다.


치료가 끝나면

내가 다시 모시러 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외박을 하는 덕분에

모시러 갈 시간이 줄어들었다.


한가한 금요일 오전이

조금 더 한가해졌다.


차 안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바쁜 날도 많지만

이렇게 여유로운 날도 있다.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날도 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찾아온

작은 행복.


생각해 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닌 것 같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찾아온 작은 행복

몰래 건네준 두유 한 잔처럼

잠깐의 여유와 작은 친절 속에서

조용히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은

조금 한가했고 따뜻했다.

그래서 마음도 가벼워졌다.


내 생각엔

바쁘게 살아가는 하루 속에서도

이런 작은 순간들이

마음을 버티게 해 주는 것 같다.


오늘은

아침부터 괜히 기분이 좋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