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마음을 열면 (행성 -9)
강동구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인간관계가 정리됐다.
따뜻한 봄날이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었다.
삶이 조금 무료하게 느껴졌다.
건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싶었다.
여러 모임을 알아보다가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함께 성장하고 싶은 사람만
가입해 주세요.
술 마시는 모임 아닙니다.”
내가 찾던 분위기였다.
그래도
막상 나가보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알 수 없다.
가입 후 처음 모임에 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묘한 긴장을 동반한다.
저 사람이 회원일까,
먼저 인사를 해야 할까.
잠시 멈칫하는 사이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와 어색한 웃음이 오갔다.
“안녕하세요, 이청목입니다.”
말을 꺼내는 순간에도
잠깐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들끼리는 이미 익숙한 분위기였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든
내 이름이 닉네임이다.
그날도
이청목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섰다.
내 차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첫 번째 장소는
춘천의 닭갈비집이었다.
“청목씨는 어떤 이유로 모임에 가입하게 됐나요?”
천천히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대답을 이어가다 보니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어색함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춘천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이미 차로 가득했고
겨우 자리를 잡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손짓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닭갈비가 나왔다.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냄새와 함께
대화도 조금씩 익어갔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말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웃음도 조금씩 늘어났다.
식사를 마치고 들른 박물관.
각자 다른 것을 보고 있었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편안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른 카페.
따뜻한 공기와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낯선 관계였던 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헤어질 때쯤에는
처음의 어색함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 같다는 것.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낯선 사람이
익숙해진 하루였다.
그날의 따뜻했던 봄처럼
그날의 사람들도
조금은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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