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엄마가 웃었다

지금 할 수 있는 행복 (행성 -7)

by 이청목

나무에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탐스럽게 피어나는 벚꽃이 보였다.


4월 초,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싶은 날씨였다.


작년엔 이맘때쯤에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에 여행 갔었을 때가 생각났다.


68년 만에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를 보며

아이처럼 신기해하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올해는 제주는 못 가지만 엄마와

벚꽃놀이를 가고 싶어졌다.


요즘 들어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엄마와 비슷한 나이여서

더 자주 떠오른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돌아오는 주말에

벚꽃놀이를 가자고 했다.


마침,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쉬는 중이라

흔쾌히 좋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주말이 되었다.


내일이면 벚꽃놀이하러 가야 하는데

새벽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벚꽃이 만개했다.


그래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꽃잎이 다 떨어지는 건 아닌가 불안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바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고등어조림 냄새에

배꼽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난리를 치고 있었다.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밥상은

언제나 꿀맛이다.


엄마의 음식솜씨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은 더 맛있다.


그건 아마도

음식에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을

알게 돼서인 것 같다.


밥을 맛있게 먹고

편의점에서 12,000원에 4캔을 주는

맥주를 사 왔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동안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다.


엄마는 이부자리를 깔아주며 얼른 자라고 했다.


못 이기는 척 씻지도 않고 바로 이불 위로 올라가

잠을 잤다.


그렇게 10시간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맥주를 마셨으니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달그락달그락

아침에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거실 창밖을 보니 구름이 개고 있었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벚꽃 구경을 하러 출발했다.


가는 내내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벚꽃이 다 떨어진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엄마 집 근처 벚꽃들은

꽃봉오리에서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 집은 내가 사는 서울보다

조금 더 북쪽이다.


다행이었다.


엄마한테 활짝 핀 벚꽃을 보여주고 싶었다.


멀리서부터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차가 서서히 막히기 시작했다.


주차하는 동안에도 벚꽃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함도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차가 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활짝 핀 벚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비가 지나간 뒤라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깨끗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활짝 피어 만개한 벚꽃을 본 엄마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엄마랑 함께 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고

해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해외여행처럼 멀리 가지 않아도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여름이 되면

함께 바다를 가고,

가을이 되면 단풍놀이를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와 함께하는 추억들이

쌓여갈수록

엄마의 행복도 쌓였으면 좋겠다.


엄마의 웃음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