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다시 간 학교

그때의 나는 아직 그곳에 있다(행성 -11)

by 이청목

3월의 하순이 시작되는 주말이었다.


이상기온 탓인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날씨가 20도까지 올라갔다.


그날은 서울 문래동에서 모임이 있었다.


나의 20대 30대 40대를 함께해 온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마침, 약속 장소 근처에서

지인 결혼식이 있다는 동생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


주말 서울 시내에 이동하는 차들은 많았지만

막히지는 않았다.


차에서 내리고 시간을 봤다.

약속 시간까지는 두 시간이 남았다.


사실 일찍 도착하면 꼭 가보려던 곳이 있었다.


영등포 초등학교.

내가 다녔던 학교였다.


13살 부천으로 이사 갈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32년 만에 모교를 다시 왔다.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깨끗해졌지만

뭔가 썰렁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던 건물은 허물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나무를 심어

작은 공원이 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건물은

다행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가대표까지 배출했던 배드민턴부가 있던

커다랗던 강당은

지금 보니 이렇게 작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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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뒤에 있던 수영장은

정리되지 않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정문 앞에 섰다.


학교 다닐 때 정문 입구에 서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나서야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던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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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내내 외우던 경례문은

32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났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여봐요.”


허락 없이 들어온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편하게 찍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영등포에서 가장 큰 공립 초등학교인데

폐교되게 생겼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내려앉았다.


학생 수가 줄어서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제야 학교에 들어왔을 때

썰렁했던 느낌이 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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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뛰어놀던 곳.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곳.


그런 소중한 공간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를 바라봤다.

술래잡기를 하며 잡히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뛰어다니던 기억


나무에서 떨어진 송충이를

나뭇가지에 올려 장난치던 기억


새파란 수영장에서

누가 숨을 오래 참는지 내기하다가

콧물이 나왔던 기억까지.


학교를 보는 순간

모든 게 한꺼번에 떠올랐다.


내 친구들,

잘 살고 있겠지.


정문 앞에 다시 섰다.


지금의 나는

이곳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