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피소드 #4]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있는 곳이다.
그날 나는 웃음을 참느라 숨이 막혔다.
6월 괴사성 폐렴으로 입원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떤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침대를 감싸고 있는
커튼 밖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단호했고,
고집도 보통이 아니었다.
"여보 나 갈게요,
치료 잘 받고 있어요 내일 올게"
부부처럼 보이는 할머니는
간병사 분께
할아버지 잘 부탁드린다고 하며
집으로 가셨다.
그날 할아버지는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지
병실 안팎을 밤새 왔다 갔다 하셨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간병사 한 분이 간호사님한테
일러바치듯이 투덜거리며 얘기를 했다.
"어제 잠을 통 못 잤어
옆에는 밤새 기침하고
앞에서는 계속 왔다 갔다 하고."
그 순간, 할아버지가 불쑥 끼어들었다.
"앞이면 우리 같은데 우리가 뭐요!?
나 때문에 잠 못 잤다고 그러는 거야?
시부럴"
어제 들어온 그 할아버지가
욕을 하시며 뭐라고 하셨다
성깔이 보통이 아닌 할아버지였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가셨다.
간호사님은
간병사님께 그런 언행은 조심하라고
한마디 하셨다.
"여긴 호흡기 내과니까
당연히 기침하는 환자가 많죠
여사님 말 조심 하세요!"
한편으로는 좀 통쾌했다.
왜냐하면..
그 밤새 기침 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커튼이 쳐있다고는 하나
내가 옆에 있다는 걸 알면서
나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하니
본 적도 없는 간병사님께 서운했다.
그래서 간호사의 사이다 같은 한마디에
내 편을 들어주는 듯,
속 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제 사모님이
김이랑 장아찌 가지고 오셨는데 드릴까요?"
"됐어요 안 먹어"
"맛있을 것 같은데
옆에다 둘게요"
"허참 됐다니까
말 되게 안 듣네!"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불만이 있으신 거 같았다.
간호사가 또 한 바퀴 돌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전 날 새벽부터 할아버지는
링거 맞는 부위가 많이 부어 있었나 보다.
"할아버지 팔이 많이 부었어요
주사 자리를 옮겨야겠어요."
"이게 뭐가 부었어,
괜찮아 안 부었어"
완강한 할아버지에게
간호사도 말씨름을 하기 싫었는지
오후에 빨갛게 되어 있으면 바꾼다고 하며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간호사는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할아버지부터 확인했다.
"이것 봐요 빨개지셨잖아요~
아팠을 텐데
이번엔 진짜 바꿔야 돼요"
"아녀!! 난 괜찮아 내버려 둬!"
그때 옆에 있던 간병사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버님 빨갛게 됐잖아요
붓고 염증 생기면 큰일 나요!"
간호사님은 유치원생 아이들을 타이르듯이
할아버지를 타이르고 바늘 위치를 바꿨다.
"어이구 잘 참으시네요~
한 번에 바꿔서 아프시지도 않죠!
쉬고 계세요"
할아버지는 간병사님께 화가 나셨다.
"가만히나 있지 뭐 하러 얘기를 해요
가만히 있지, 여기서 하는 게 뭐 있다고!
가만히 있는 게 그렇게 어려워?"
"아니 아버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여기서 하는 일이 그런 일 하는 거예요
그럼 저를 왜 부르셨어요"
할아버지의 악담은 끝날 줄 몰랐고
어디론가 전화하셨다.
"이 여자 당장 집에 가라고 해"
아무래도 집에 계시는 할머니께
일러바치는 듯했다.
전화를 마치고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셨다.
간병사님이 따라가려고 함께 나섰다.
"왜 따라와, 따라오지 마!"
간병사님은 할아버지가 나가고 나서
욕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였다.!
갑자시 헐레벌떡
할아버지가 다시 들어오셨다.
그러더니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 문을 잡고 흔들었다.
"덜컹, 덜컹"
잠겨 있는 화장실엔 이미 다른 환자분이 있었다.
커튼 밖에서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왜 그래요, 왜.. 왜 그래요"
간병사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윽! 허헙!"
할아버지의 숨 참는 소리인지,
숨이 넘어가는 소리인지..
간병사님은
"저.. 저기! 저기로 가!"
무슨 일이었을까? 5분쯤 지났을 때
간병사님은 혼자 투덜거리며
병실을 들어오셨다.
"더러워 죽겠네 진짜,
똥을 한 발자국에 한 덩이씩 싸고 가네
상놈에 새끼!"
무슨 일이냐는 다른 보호자의 질문에
폭풍 같은 한탄이 쏟아져 내렸다.
"엊그제부터 변비약을 먹었는데
오늘에서야 약이 들었나 봐요!
똥을 한 발자국에.. 에이씨 더러워
성질을 내지를 말던가!
같이 간다고 할 때 뭐라고 하지를 말던가,
진짜 에이 짜증 나"
할아버지가 똥을 싸서 짜증이 난 이야기를
20분가량 했을까?
할아버지가 아무렇지 않게 혼잣말을 하며
들어오셨다.
"아유~~~~
그냥 막! 밀고 나오네 그냥."
"샤워실에서 씻고 오세요 준비해 드릴게요."
"화장실에서 대충 씻긴 했어요..."
할아버지가 존댓말을 깍듯하게 하신다.
'큭큭큭 화장실에서 씻었다니!'
진짜 웃음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할아버지가 샤워를 하러 가신 사이에
간병사님은 할아버지 아내 분께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아~ 네.. 사모님!
할아버지가 똥을 쌌어요~
속옷이 부족하니까 더 가지고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큭큭큭큭'
나 혼자 속으로 너무 웃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아침밥이 나왔다.
간병사님은 무뚝뚝 할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짱아치하고 김 드려요?"
"예예 주세요, 쪼~끔만 주세요
허허..."
할아버지는 말 잘 듣는
세상 다정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할아버지와 간병사님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나도 살아가면서 미운 사람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도
말은 곱게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