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뒷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였다.

그리워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 얼굴

by 이청목

나의 아버지는 1954년생이시다.

8남매 중 다섯째로 때어나

전쟁 직후의 한국을 살아낸 세대이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에게 자주 혼났다.

왜 그리 자주 맞았는지,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아버지의 마음에 내가 자꾸 거슬렸던 거 같다.


지금부터 37년 전쯤 되었을까?


나는 국민학교 저학년이었고

친척 누나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날 솜사탕이 먹고 싶었던 나는 아버지에

솜사탕을 사달라고 칭얼거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아버지는 많은 하객들 앞에서 나를 때리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던,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 나는 매형은

그날의 일을 2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

그 이야기를 꺼내며 안타까워하셨다,



아버지가 날 싫어하셨을까?

그건 아니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6.25 전쟁이 끝나고 난 직후 태어나셨고

많은 형제들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국민학교까지만 다니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먹고살기 위해

주먹 세계에 계셨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처럼 살아가게 될까

두려우셨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작은 잘못 하나에

엄격하게 혼내야 된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많은 형제들 속에서 치열하게 살며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아 본 적 이 없었기에


나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유치원 시절부터

날 데리고 낚시를 자주 다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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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을 잘못했거나

낚싯대를 부러뜨렸을 땐 혼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기억나는 건


컵라면, 삼겹살, 그리고

나를 아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아버지가 점점 더 많이 보고 싶어진다.


나의 사업이 어려워질 때면

IMF 시절, 모든 것을 잃고

침묵으로 버티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축 쳐진 아버지의 어깨..


아버지는 분명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멋있는 아버지의 모습

가장으로서

듬직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힘들게 모아 온 재산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던

나의 아버지.


그때의 아버지 뒷모습과 축 처진 어깨가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내 어깨와

비스듬히 보이는 나의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어서

아버지의 얼굴을 떠 올리려 하는데...


아버지 얼굴이 빨리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노력해야 떠오르는 아버지 얼굴..


아버지

아버지의 얼굴을 빨리 떠올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너무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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