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네, 그날 이후

이별 #3 - 벽이 허물어지던 순간

by 이청목

그 벽이 무너진 건, 뜻밖에도 이스라엘이었다.


교회에서 다체로 떠난 성지순례

출발한 지 이틀째, 우리는 헤르몬 산에 올랐다.


눈 덮인 산과 차가운 공기가 맞이하던 그곳은

스키를 타러 오는 관광객들도 북적였다.


헤르몬 산 꼭대기를 가기 위해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관리자가

수동으로 리프트 안전바를 내려주는데


관리자랑 소통이 안되었는지

그녀가 제대로 앉기도 전에

안전바를 내리는 바람에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꼭 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다행히 아주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바로 잘 걸을 수는 없는 거 같았다.


절뚝거리며 걷는 그녀를

목사님은 나에게 부축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청목형제 괜찮으면

자매 부축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다.


좋게 보던 사이도 아니었고,

나도 성지순례 여행을 온 건데..


나는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여행자로서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부축이라니.


하지만 이스라엘에 같이 온 사람 중에

청년은 나를 포함 3명밖에 없었고

남자는 나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축을 했다.

그 순간부터 12일의 일정 중

거의 10일을 나는 그녀의 곁에서 걸었다.


어색했던 거리를 반 발자국씩 줄이며

한쪽 팔로는 그녀를, 다른 한쪽 팔은

내 짐과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게다가 여행 내내 내가 직접 운전을 맡았다.

그리고 내 옆자리 보조석은

그녀의 자리가 됐다.


이스라엘의 험한 산악지형,

거칠고 빠른 현지 운전,

좌회전 신호가 거의 없는 로터리 도로


게다가 차량이 수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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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차량이다 보니

산악지형인 이스라엘에서는

기어 변속을 자주 해야 해서

양손을 다 써야 했다.


운전대 위로 흘러내리는 땀

부축하느라 조금 느려진 걸음,

그리고 차에서 오가는 짧은 대화들


그렇게 반걸음씩 그녀에게 가까워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숨소리와 걸음 속도를 보며

천천히 맞춰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쌓아두었던 그 벽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내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헤르몬 산에서 꼭대기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목사님께서 군대에서 배웠다고 하는

체조인지 율동인지를 알려 주셔서

그녀가 따라 했고


갑자기 율동을 구경하던

주위에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함께 하나가 되어 따라 하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목사님이 알려주시는

율동을 따라 했을 뿐인데

주위에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서 모이는구나


교회에서

드럼, 찬양인도, 피아노반주를 하던 모습이

굳이 나대는 게 아니었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혹은 누군가가 부탁해서

나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잘 모른 채

내 마음대로 판단했던 게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