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믿음보다 망설임이 커졌다

이별 12# - 흔들리는 내 마음, 축복보다 시험 같은 하루

by 이청목

드디어 결혼식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녀는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

2년에 한 번씩 선교사님을 모시고

국내 성지순례를 하는데

스텝으로 꼭 참여하자고 보챘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공동체 활동은

피하고 싶었다.


아무리 교회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곳이면

누구든 상처를 받는 것을 많이 봐왔고


스텝으로 참여하는 거라

무거운 짐을 들거나 무리하면

그녀는 허리가 약해서

결혼을 앞두고 다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설득을 했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인데

우리가 센터를 차리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언제 또 가보겠어~"


"꼭 가야겠어? 우리 성지순례 다녀오면

그다음 주가 바로 결혼식이야!

오래 걷거나 무거운 짐 들다가

허리라도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안 다치게 하면 되지 진짜 나중엔

갈 시간이 없어.."


나는 결국 그녀를 위해 함께하기로 했다.


그녀 말대로 우리가 센터를 차리고

아이를 낳으면 함께 순례여행 가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국내 성지순례는 2년 전보다

많은 인원이 가게 되었다.


선교사님 가정이 30명

교회성도 30명

총 60명의 숙박과 식당을 알아봐야 했다.


60명의 숙박과 음식점을 알아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가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스텝으로 답사할 장소와,

식당, 호텔을 알아보고 예약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은 흘렀고

3박 4일 순례의 출발 날이 되었다.


그날은 평일이었지만 교회가 성도들로 북적였고

짐 나르는 사람들 간식 챙기는 사람들

선교사님들께서 타고 오시는 차량을

정리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목사님의 기도로

3박 4일의 국내 성지순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도 안전한 게 잘 여행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결혼 전에 행복한 추억 하나라도

더 쌓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많은 인원을 통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첫날부터 스케줄은 꼬이기 시작했다.

선교사님들께 많은 곳을 보여 드리려

스케줄을 너무 빡빡하게 잡았고

차도 생각보다 많이 막혔다.


모든 장소의 스케줄은 1시간씩 다 밀렸다.


저녁이 되고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하고 긴장된 하루였다.

중요한 건 순례를 다니면서도

그녀와 함께 새벽기도는 꼭 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난 다음날도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갈 생각을 하니 더욱 피곤해졌다.


그렇게 여행의 하루하루는

새벽기도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3박 4일의 여행 중

3일째 아침에 내가 우려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꼭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 일 이 발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아침에 일찍 호텔 로비에

마지막 지역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앉아있었고

내 옆에는 그녀와 예비 장모님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의 교회 어르신이 다가오셨다.


"1주일 뒤면 결혼하는데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자매한테 잘해줘 안 그러면 내가 뺏어갈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교회 중직자에 계신 분들이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해도 되나 싶었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어르신이 또 말씀하셨다.


"내가 우리 아들 일찍 낳았으면 벌써

뺏어 갔어 그러니까 잘해!"


웃음기 하나 없이 던져진 말들이

내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고

말문이 막혔다.


"아니 교회 공동체에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해 주라고

안 그러면 뺏어서 우리 아들 줄 거야!"


너무 화가 나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화를 억누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참...

그럼 왜 지금 까지 가만히 있었어요?"


내 목소리와 표정을 보고

이제야 심각성을 알았는지

그분들은 사과도 없이

그냥 그 자리를 일어나셨다.


난 그분들도 너무 싫었지만

내 옆자리에서 가만히 있던

그녀에게 너무 서운했다.


예비 장모님이 오히려

위로하듯 나에게 말했다.


"저분들이 생각 없이 농담을 하셨네

그냥 넘어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버스 안에서 그녀에게 따지듯 얘기했다.


"왜 가만히 있어?

그럴 땐 나서서 왜 그러시냐고

내 편들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내가 거기서 뭐라고 오빠 편을 들어?

오빤 내가 칭찬받거나

나에게 잘해 주라는 말 듣는 게 그렇게 싫어?"


"뭐? 이게 지금 그런 뜻이야?"


그녀와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혼을 발표한 뒤

나는 교회에서 그녀에게 잘해 주라고

이미 너무 많은 분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물론 농담이라는 것도,

잘해주라는 뜻이라는 것도 잘 안다.


늘 웃으며 넘기던 말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아프게 다가왔다.


나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아들이고

사회에서도 크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누구한테 싫은 소리 듣고 살았던 것도 아닌데


내가 교회에서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에게 말씀하신 분들은

표정도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약 올리듯 말씀하셔서 너무 기분이 나빴다.


'하... 너무 힘드네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마지막 1박을 남겨두고 나는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표정관리 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놀리듯

그녀를 자기 아들에게 준다고 했던 분이 오셨다.


"형제님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네? 여기서 말씀하세요"


"아니 이쪽으로 와보세요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정말 가기 싫었지만

할 말이 있다는 그분이

나에게 사과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따라갔다.


"화났어요? 화 풀어요"


표정이나 말투가

나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분은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미리 수를 쓰는 눈치였다.


"됐습니다, 앞으로 저한테는

말 안 걸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알 만한 분이 공동체에서 이렇게

농담하는 것부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에이 그냥 화 풀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내 팔을 잡고 화 풀라고 한다는 말이

사람들이 쳐다보니 빨리 화를 풀라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더 이상 화내기도 싫었다.


"이거 놓으세요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화 풀라고요?

하.. 됐고요 앞으로 저한테 말도 걸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마십시오. 저도 그게 편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날 구겨져 있는 나의 표정을

억지로 피고 밝게 하느라 힘이 들었다.


그 어르신의 만행과

그녀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1박을 하는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

여행의 피로를 풀어드리기 위해

원하는 사람은 족욕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족욕을 하러 가기도 싫었다.

사람들과 얽히는 것도 싫었고

표정관리 하는 것도 더 이상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반신욕을 하며 붉게 해지는

노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날 저녁 마지막 밤

스텝들 수고했다며 목사님께서는

잠시 자리를 같이 하자고 하셨다.


그리곤 리조트길이 복잡하니

데리러 와달라고 하셨고

나를 보내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난 이미 오늘 있었던 일이

목사님 귀에 들어갔구나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을 모시러 갔다.


"목사님 여기입니다"


"아 여기가 워낙 커서 헷갈릴까 봐

와달라고 했어요"


"네 괜찮습니다 여기서 가까워요"


"근데 아까 족욕하러 안 왔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목사님이 돌려 말하시는 거 같아

난 직접적으로 말씀드렸다.


"알고 물어보시는 거 아닌 가요?"


"아니 난 얘기 들은 거 없고

그냥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다고만 들었어요.."


목사님은 내 대답에 당황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무슨 일이 있던 건 누구한테 들으셨나요?

뭐라고 들으셨나요?

목사님께도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인생의 선배로서 말해준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결혼 전에 가진 것 하나 없는

신학생이었으니까 그때 엄청 홀대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내가 더 잘해서 나중엔

이런 대접받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청목형제도 지금 보다 조금 더 노력해서

이런 말들이 쏙 들어가게 하는 건 어때요?"


목사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목사님은 나의 기분을 풀어 주시려

노력하시는 것도 보였다.


이날 밤은 결혼식을 1주일 앞둔 날이었다.


결혼식은 눈앞에 다가왔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바람 한 번에도 무너질,

물이 다 마른 모래성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