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14 - 우리의 빚은 늘어만 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센터 오픈 준비에 매달렸다.
우리가 예상했던 거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자와 원금을 갚고 생활비까지 하려면
더 이상 대출을 받는 건 위험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 축의금에서 남은
모든 돈을 사업자금으로 투자했다.
우리는 그녀와 나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선교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필라테스센터를 차리는 거라
더욱 열심히 일하고자 다짐했다.
인테리어 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지만
공간도 잘 나오고 예쁘게 잘 되어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우리가 바라던
필라테스 센터를 오픈 하루 전이 되었다.
교회에서는 자영업자가 오픈을 하기 전
교회 성도분들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는
'신방'을 한다.
우리 사업장이 잘되길 함께 기도해 주셨다.
우리 어머니와 누나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늦어져서
30분 늦게 도착했다.
이미 신방은 시작된 후라
우리 가족은 조용히 뒤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신방을 마친 후 우리는 다 함께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는 장모님과 목사님들 교회분들을
챙기느라 우리 가족에게는 인사만 했다.
그리고 식사를 할 때도 그녀는 그녀의 식구들과
목사님 옆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고
나는 우리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상하게 목사님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우리 어머니와 누나에겐
눈길을 주지 않으셨다.
조금 서운했지만
누나와 어머니는 같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니
편하게 식사하시라고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작은 가시처럼 마음에 남았다.
하루하루 그녀와 함께 센터를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이 힘든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와 나의 생각 차이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달랐다.
나는 사업을 해봤고 영업을 오래 해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그녀는 센터를 운영하는 원장으로서,
강사로서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생각 차이로
다툼이 많아지고 서로 너무 예민해졌다.
향초의 상표가 보여서 내가 안 보이게
살짝 돌려놓았다.
"하.. 오빠 그거 왜 돌려놔?"
"상표가 보여서 광고하는 거 같잖아
그래서 돌려놓은 건데?"
"내가 하는 게 다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언제 마음에 안 든다고 했어?"
억울함이 올라오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근데 왜 내가 하는 것마다 다시 손을 대?"
"어? 난 더 괜찮아 보이게 하거나
편하게 하려고 하는 거지"
"하.. 알겠어"
한숨 섞인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하는 행동이
그녀에게는 참견하는 듯이 느낀 거 같았다.
그녀와 나의 생각 차이로
그녀가 뭔가 해놓으면
다시 내 스타일 대로 바꿔놓기를 많이 했으니
그녀가 그렇게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나와 그녀의 예민함은 점점 심해지고
퇴근 후 집에서도 이어졌다.
결혼한 지 2달이 다되어가는데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교회를 다녀온 날이면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어린애처럼 훌쩍이는 그녀의 모습이
이제 나에겐 마냥 귀여워 보이지도 않았고
퇴근 후 집에서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바라던
나의 생각도 정말 빗나갔다.
스킨십을 시도하려 하면 피곤하고
혼자 쉬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좋은 대화로 풀어 가려
나의 고민을 얘기했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응? 뭐?"
그녀는 센터에서 잦은 다툼이 있어서
잠깐 얘기를 하자고 하면
경계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난 그녀가 경계하지 않게 하려
부드럽게 말하려 노력했다.
"아니~ 우리 신혼인데
너무 스킨십도 없고 그러니까 마음이 좀 그래.."
"그래 나도 생각 좀 해볼게
그건 진짜 미안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 같아
조금만 기다려줘"
"그래 알겠어
그럼 주말에 금요기도회 끝나고
1박으로 여행을 좀 다녀올까?"
"응? 아.. 아니 난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어 그리고 돈도 아껴야지
그 돈으로 집에서 맛있는 거 시켜 먹자."
"그래 알겠어..."
"오빠~ 우리가 보내는 선교에 앞장서기 위해
이 센터를 차렸잖아
그러니까 선교부터 생각하자!"
"근데 선교도 하는 거지만
우리의 생계나 우리의 미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 둘이 행복하는 것도 있어야지"
"오빠 말이 맞아 그래야지
선교도 하고 우리도 행복할 수 있겠지?
난 너무 불안해 매출이 계속 부족하잖아.."
"그럼! 잘 될 거야~
하나님께 기도하고 준비한 곳이잖아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잖아"
시간은 지나 필라테스 센터를 오픈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센터에서 수없이 다투었다.
우린 너무 달랐다.
"오빠 상담 할 때 왜 그러게 말해?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 드려"
"친절하게 했는데?
그리고 상담 스타일은 좀 다를 수 있지
난 그동안 상담 많이 해봤잖아."
"그래 알고 있는데 내가 볼 땐
좀 센 거 같아서"
그녀의 그런 말들은 별거 아닌데
나에겐 쌓이고 쌓여
지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가 뭔가 센터일을 하면
내가 계속 바꾸어서
참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녀의 말들이 관심이 아닌
지적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하.. 내가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마음에 안 들면 직접해"
"내가 수업 중인데 상담을 어떻게 해!
그리고
상담이랑 온라인 마케팅은 오빠가 한다며
오빤 여기서 뭐 하는데?"
"하.. 어이가 없네? 그럼 내가 여기서 놀아?
나는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해서
목소리도 커지고 서운한 마음에
말을 막 해버렸다.
나는 이렇게 계속 다투는 이유가
우리는 24시간 계속 같이 있고
같은 일을 하니
서로 존중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하던
부동산 상가 분양 일을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통보를 하듯 얘기를 했다.
"우리가 너무 많이 다투잖아
그래서 나 다시 상가분양 하려고
혼자 할 수 있지?"
"어? 언제부터 할 건데?"
"다음 달부터 현장 새로 하는 데 있어서
거기로 바로 가려고 집에서도 가까워"
상가 분양 일을 다시 시작하니
한 군데 계속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하는 일이다 보니
마음도 훨씬 편했다.
하지만
통장 잔고를 보는 순간 불안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데
월급처럼 안정적인 급여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불안했다.
대출이자랑 원금 생활비까지
돈을 모으는 건 생각도 못하고
버티기라도 잘하자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그녀에게 남편으로서의 책임감도 보여주고
돈도 잘 벌어서
그녀가 조금이라도 힘들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하루에 1만 5천보 이상 걸었다.
전단지를 돌리고 유튜브를 올리고
하루에 5시간도 못 자고 일을 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 반대로
코로나 여파로 은행 금리는 최고점을 찍고
부동산 시장은 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나는 6개월 동안 벌었던 돈은
120만 원이 전부였다.
센터도 매출이 처음 오픈할 때보다
절반 이상이나 떨어졌다.
6개월 동안 나의 빚은
3천만 원이나 더 불어나 버렸다.
"이번 달도 마이너스 5백이네..."
나는 그녀의 얼굴 보는 것도 미안했다.
나는 결단을 내리고 월급을 받는
직장을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이는 40대 초반에 고졸.
직장생활을 해본 경험은 거의 없고
자영업과 프리랜서로만 일했던 나를
뽑아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는
들어가자마자 인격모독과 욕설로
1주일 만에 그만두었고
두 번째 들어간 회사는
택배회사인데 탑차 트럭에
블랙박스도 없고 후방카메라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가 오는 날
위험했던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여기도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의 형부가 일하는 회사에서
한 달 아르바이트비로 300만 원이고
총 3개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녀의 형부와 일을 시작했다.
역시 300만 원은 괜히 주는 게 아니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는 시간
오후 7시~7시 30분까지 일을 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와 씻고
숙소에서 하는 일을 옆에서 배우면
하루 자는 시간은 5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주 6일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 다시 현장으로 출장을 가는 방식이다.
몸은 힘들었지만
우리 가정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참을 수 있었다.
그녀의 형부는 본인이 회사 팀장이니
회사에 얘기해 준다며
직원으로 입사를 하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형부랑 일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월 300만 원으로
우리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하겠다고 결정했다.
며칠 뒤 출장지로 출발하기 위해
그녀의 형부가 나를 데리러 왔다.
간단한 인사 후 그녀의 형부는 말을 꺼냈다.
"회사에 정직원 얘기한 게
연봉을 월 300만 원은 못 맞춰준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한번 맞춰 볼게요
제가 얘기하면 거의 해주니까
잘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며칠 뒤에 나온 말은
연봉을 가장 낮은
최저임금으로 해준다는 말이었다.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녀의 형부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일하겠다고 얘기했다.
며칠 후
"하... 회사에서 사람을 안 뽑는다고 하네요"
"갑자기요?"
"네 뽑더라도 경력직만 뽑는다고 해요"
"아.. 네.. 괜찮아요! 그럴 거 같았습니다.
혹여 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팀장님이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잖아요"
"네 나중에 제가 회사 차리면
그때 와서 영업팀장으로 와주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서운했지만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 말을 전했다.
그녀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그녀는 나에게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속으론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3개월째가 되는 마지막 날까지
아침에 일어나 기도를 하는 것뿐이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저에게 허락해 주세요.
버티는 힘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