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사

일요일 산책이 남긴 생각들

by 이청목

늦잠을 부릴 수 있는 일요일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커피 한 잔을 들고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굳이 목적이랄 것도 없는 산책이었다.


이런 느긋함이 오랜만이라

천천히 걷고 싶었다.


커피 온도는 미지근해져 가고 있었고,

겨울의 공기는 시원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내 오른쪽 뒤편에서

아주머니 두 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오십 대 초반쯤 되는 분들이었다.

말끝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나는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사람은

진짜 별로야.

우리 남편이 그래서 내가 욕을 많이 해.”


그 말을 듣다 보니 발걸음이 느려졌다.


아주머니들은 내 속도를

그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남편이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민감한 질문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주머니는 그때마다 부끄럽고 속상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대화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게

도대체 정확히 무엇일까?


사람이 말하면 다들

‘공사 구분해야지’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바로 검색을 했다.


공적: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공영역

사적: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위한 개인 영역


정의는 분명했다.


하지만 검색 결과를 읽고도 더 혼란스러웠다.


이걸 사람이 정말 잘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일은 구분할 수 있겠지만,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까지 공사 구분이 가능할까?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험담을 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교회 일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에게 말실수를 했다는 이유였다.


말투도 마음에 안 들고,

사람 됨됨이도 별로라고 했다.


욕만 빼고 거의 모든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사람이라며,

목사님께 책상을 사드렸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게 과연 공과 사를 구분한 행동일까?


아니면

감정과 상황을 자기 편한 쪽으로 분리한 것일까?


나는 목사님과 교회 일로 대화를 했다면

그때의 감정 또한

공적인 상황에 포함되는 것은 아닌가?


그 집사님은 감정은 뒤에서 사적으로 풀고,

공적으로는 그 사람의 위치만 보고

선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분의 행동에

‘진심’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럼 먼저 대화하고 풀어야 하는 게

정말 상대방은 위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 감정을 기준으로

공사 구분을 바꿔 버리는 행동’


그렇게 되면 어떤 관계도

오래가기 어려 울 것 같다.


좋을 때만 사적이고,

불편할 때는 공적으로 돌아서는 관계.


공과 사를 진짜 구분하고 싶다면,

감정부터 정리하는 일이 먼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서 들린 아주머니의 단순한 대화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 얘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감정을 공과 사로 구분해 버리며

누군가를 상처 준 적은 없었을까?


상대의 실수를 ‘공적 문제’로만 판단하며

대화할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적은 없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했을 때 윗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랫사람들에게 일 좀 나눠 주세요.

그렇게 혼자 일한다고

승진 빨리 되는 거 아닙니다.

아랫사람을 잘 올라올 수 있게 끌어줘야

내가 승진하는 겁니다."


평소에도 나한테

좋은 말을 해 주는 분이 아니었다.


난 이 말을 꼬아서 들었다.

혼자 승진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여긴 회사니까'라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론 그 사람을 수없이 욕을 했다.


시간이 지나 진급을 해서 보니

나에게 뭐라고 했던 그분이,

가장 많은 점수 주셨고, 그분의 추천으로

진급을 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 그분에게 지난 과거에 있던 일들과

내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분과 나는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둘도 없는 술친구가 되었었다.


그럼 이관계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문제일까?


만약에 사이가 좋을 때

회사 밖에서 술을 한잔 하며,

아랫사람을 도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내 기분이 상했다면

이건 공적인 것일까 사적인 것일까?


너무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다.


공원을 한 바퀴 더 돌면서

머릿속에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수많은 만남을 경험했고,

수많은 오해와 감정을 경험했다.


늦잠을 부리던 일요일 오후

아주머니의 대화 한마디는,


내 생각을

한참 동안 걸음을 늦춰가며 정리하게 했다.


별것 아닌 산책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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