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피소드 #7]
텔레비전에서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나왔다.
그중 하나는 자원봉사를 하라는 조언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고립감을 줄이고
사회적 관계망을 넓히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누군가를 돕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며,
성취감과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살아갈 희망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두 번째 이유가 쉽게 인정되지 않았다.
마치 나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며
희망이 생긴다는 말 같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5년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밤이었다.
집 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 침대 위였다.
집 앞을 지나가던 검은색 렉스턴 차량이
나를 쓰레기봉투로 착각해
그대로 밟고 지나간 사고였다.
발목은 조각났고 고관절은 탈골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고관절 탈골은
넓적다리뼈가 엉덩이뼈에서
빠져나오는 상태였다.
한 번 빠지면 재발 위험이 높아
움직임을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다리를 내리면 다시 탈골될 위험이 있어서
가로 50cm, 세로 30cm의 쿠션을
다리 아래 두고 늘 들어 올린 채 있어야 했다.
화장실을 가서도 왼쪽 다리를 들고 있었고,
잠을 잘 때조차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야 했다.
옆으로 눕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답답하고 숨 막히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하루는 더디게 흘렀고, 웃음을 잃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료가 모두 끝나도
장애가 남아 절뚝거릴 수 있다는 말은
미래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퇴원 후 3개월은 재활치료도 받아야 했고
직장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앞으로의 삶까지 죄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내 옆 침대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일을 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졌다는 청년이었다.
나보다 젊어 보이는 환자였고
보호자는 우리 어머니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 둘이
나란히 누워 있을 뿐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혼자 휠체어로 화장실을 가고
세안과 양치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몸을 조금도 가누지 못한 채
오직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가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청년과 비교하면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처음 들었다.
렉스턴 차량이
내 몸통을 밟지 않아 살았다는 사실,
목을 밟지 않아 여기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감사했다.
병원에 누운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의사는 휠체어 대신 목발을 짚으라고 말했다.
이제 쿠션 없이도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옆으로 눕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에
당장이라도 옆으로 누워 보고 싶었다.
전기 톱날이 '윙' 소리를 내며
깁스를 잘라냈다.
혹시 살을 건드릴까 긴장했지만
다시 자유가 찾아온다는 생각에
숨이 벅차올랐다.
두 달 동안 깁스 안에 있던 다리는
근육이 빠지고 하얗게 바짝 말라 있었다.
내 다리가 맞나 싶어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봤다.
조금씩 발을 내디뎌 보라 하기에
굳은 관절을 달래듯 움직였다.
첫발을 내디뎠다.
찌릿하고 굽어지지 않는 발목에 당황도 했지만
굳어 있는 발목을 살살 달래 가며 움직였다.
땀이 송골송골 흐르고
환자복 안 티셔츠가 젖도록
복도를 반복해서 걸었다.
한 달이 지나자 목발 없이도
걷는 것이 가능했다.
그 무렵,
청년의 보호자였던 할아버지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다음 주에 퇴원하죠?
가기 전에 우리 손자한테 잘 나을 수 있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안 될까요?”
알고 보니 그 청년도
나와 비슷한 절망 속에 있었다.
그런데
휠체어에 앉아 있던 내가 목발을 잡고 일어서고
목발 없이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청년을 보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을 처음 얻었고,
그 청년 역시 내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큰 빚을 갚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침대 옆으로 걸어가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시면
다시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린 젊으니까, 회복도 빠르잖아요.
꼭 건강해질 겁니다."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말,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힘을 얻는다는 말'이
그제야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에 그 효과를 경험한 사람이었음을
늦게야 깨달았다.
이름도 알 수 없고 나이도 알 수 없는 그에게
이제라도 말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병실을 떠올리며
당신 덕분에
희망이 생겼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