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잃을 뻔한 날에

나는 나를 선택했다 #행성 -33

by 이청목

회사에 입사하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침에 출근하는 마음.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회사까지의 거리는 20킬로미터

기대감 덕분에 금세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괜히 옷매무새를 한 번 더 고쳤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하고

교육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교육장은

히터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따뜻해지지 않은 공기 속에서

나 혼자 먼저 앉아 있었다.


교육생들이 다 모이고 교육을 시작했다.


오전 교육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며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교육을 들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내가 해야 하는 업무는 무엇인가?


점심시간에 교육생들이

질문을 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하는 거죠?”


“교육비는 월급에 포함돼서 나오는 거라는데

그러면 언제 어떻게 나오는 거예요?”


한 교육생이 대답했다.


“교육비는 만 오천 원인데

2주 교육받고 그만두면, 그거 못 받는 거예요”


“진짜요?”

나는 순간 놀랐다.


면접 볼 때는 이런 얘기는 해주지 않았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오후 교육 시간이 되었다.


관리자는 우리에게

식사하면서 서로 얘기하고,

궁금한 게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뭐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교육생들은 그때야 하나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교육은 2주 동안 진행되고,

계약서는 2주 후에 쓰게 되고,

교육비는 다음 달에 월급과 함께

포함되어 들어온다고 했다.


결국 2주 교육받고 그만두면

아무 돈도 받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회사까지는 왕복 40킬로였다.


기름값이 들었다.

점심은 늘 밖에서 사 먹어야 했다.

심지어 주차료도 내 몫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더 많이 벌면 되겠지,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하는 업무에

대해 배울 시간이 됐다.


다 얘기를 듣고 보니

결국 텔레마케팅 업무였다.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계약을 체결하는 업무였다.


통화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알려줬다.

심지어는 녹음하라고 해서 녹음까지 했다.


그리고 관리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건 절대 영업이 아니라고.

판매가 아니라고.

교육 마지막엔 꼭 이 말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심란했다.


내가 면접 때 들은 내용이랑 너무 달랐고

통화할 때 어떻게 말하라고 하는지

알려준 내용에는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에 와서도 고민을 하며

관리자가 알려준 통화 내용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음속에는

내일이면 또 다른 내용도 배우겠지

그래 잘해보자는 바람으로

한글 파일로 일일이 다 적으며 외웠다.


그리고 이틀째 아침이 되었다.

여전히 부푼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교육장에 들어갔다.

역시 내가 가장 먼저 왔다.


그리고 이어 교육생 한 명이 더 왔고

나머지 교육생들은 오지 않았다.


오전 교육은

어제 배운 통화 내용을 복기하고

오후에는 발표하라고 했다.


그 후에는 실전에 투입되어

연습하는 일과였다.


결국 내가 일하는 업무는 그게 전부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관리자는 우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못 외우는 거냐고,

왜 이렇게 느린 거냐고,

이 정도면 어제 퇴근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연습도 안 한 거라고 했다.


나는 앞에 함께 있는 교육생이

조금 느린 것 같아서 맞춰 주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는 관리자가 나갔다.


나도 답답한 마음에 물을 마시려고 나갔다.


관리자가 갑자기 탕비실로 나를 불러 세웠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가 느리면 그냥, 너라도 치고 나가

저 친구가 느리면 버릴 거야”

난 이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저런 사람이 관리자라니.

한동안 그 말이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같은 교육생인데

느리면 버린다는 말을 나한테 왜 하는 걸까.


나중에 나도 잘 못하고 느리면

버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어렵게 들어온 회사인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원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라서

중심을 잃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내 편을 들기로 했다.


사람을 버린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이날은 회사를 그만둔 날이 아니라,

나의 중심을 바로 잡은 날이다.


아직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신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사람을 버리는 곳으로는 가지 않는다.


오늘은

나의 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는 하루가 되어서

다행이고,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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