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섹슈얼리티

by 배윤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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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확정 기일을 앞두고 삼 주 전, D와 나는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다. ‘이별 여행’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긴 했지만 무슨 의식을 하고 싶다기보다도 둘 사이에 들끓는 말과 에너지를 해소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했고 그는 동의했다.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갔다. 코로나 확산이 한창인 시기였다. 호텔 안은 이 년 전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텅 비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드물었다. 로비에 두어 명 있던 직원들의 접객은 여전히 정중했지만 오성급 호텔이라기엔 초라한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들의 열기와 목소리가 빠져나간 곳은 어딘지 조금씩 낡고 빛이 바래 보이기 마련일까.

“서울 광장이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건 처음 봐.”

나는 라운지에 앉아서 유리창 밖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행사 시설도, 오가는 이도 없기에 광장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호텔에서 마련한 ‘해피 아워’였다. 라운지에서 무제한으로 와인과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시간. D와 나는 연어, 새우, 치즈를 앞에 놓고 와인을 마셨다. 투명한 와인은 차갑고 쌉쌀했다. 그와 마주앉아서 와인을 마시며 나는 어느 정도 흥분해 있었다. 늘 돈을 아껴야한다는 강박 속에 살다가 오랜만에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먹고 마신 다음 그와 섹스를 하게 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혼하기로 한 남편과 섹스를 한다니. 마치 금기를 위반하는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우리 사이의 섹스라는 이슈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처럼 느껴졌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수월했다.

왜 지금에 와서야,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에게 성욕을 느낄 수 있는 걸까? 나에게 섹스란 무엇일까? 삼십 대 중반인 오늘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십 대 때는 금지된 일이었고, 이십 대 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결혼하고 나니 의무가 됐다. 어떨 때는 이 사실이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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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고 동거를 하던 시기에 D는 나의 어깨를 감싸고 길을 걸었다. 한쪽 팔을 쭉 뻗어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 나는 반대쪽 팔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내 상반신을 감싸는 그의 팔. 밤길을 걸을 때 범죄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고, 길 가는 남자와의 시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팔. 한때는 이 팔 안이 내가 오랜 세월 헤매다가 겨우 발견한 울타리 같았다. 그 팔이 세상이 나 사이에 그어진 경계처럼 느껴지기 전까지는 마냥 안온했다.

울타리가 없다면 안과 밖도 없는 것 아니야? 나에게 왜 이 질문이 싹트게 됐는지 곰곰이 되짚어본다.

2018년 트위터에서 탈코르셋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사람들은 탈코르셋을 하기 전과 후 자신의 모습을 개인 계정에 올렸다. 하나는 웨이브펌을 한 긴 머리에 짧은 원피스를 입고,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 안기듯 기대어 있는 사진. 또 하나는 머리를 삭발하고 편안한 바지를 입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 있는 사진. 나란히 배치된 두 사진을 보는 순간 생각 이전에 가슴이 반응했다. 너무너무 속이 시원했다. 체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체한 것들이 일시에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가 즉시 머리를 자르고 옷 스타일을 바꾼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몸의 자세를 인식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다리를 모으고 최대한 작은 공간을 차지하는 데 익숙한 여성의 몸과, 다리를 벌리고 최대한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남성의 몸. 그 무렵 어린아이들이 성인처럼 분장하고 드라마의 장면을 흉내내는 유튜브 동영상을 봤던 기억도 떠오른다. 어른 흉내를 내는 순간 여자아이는 눈을 내리깔며 남자아이에게 넥타이를 묶어줬고, 남자아이는 어깨를 펼치고 턱을 치켜들었다. 미디어를 통해 숱하게 봐온 장면이었는데 비로소 그때야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D에게 말했다.

“자기가 팔로 나를 감싸면서 걷는 게 싫어. 내가 자기 소유물이 된 것 같아. 모욕적이야.”

내 말을 듣고 D는 화를 냈다.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는데? 내 손이 닿는 것조차도 이렇게 싫어한다면 나를 좋아하긴 하는 거야?”

“나는 자기가 싫은 게 아니라 이런 스킨십 방식이 싫은 거야. 자기가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허리를 감싸는 자세가 싫어. 둘이 함께 손잡고 걸으면 되잖아? 나란히, 친밀하게, 평등하게.”

D는 알겠다고 했지만, 한번 만들어진 습관은 바뀌기 힘든 것인지 이후에도 그는 자꾸 내 어깨와 허리에 손을 올렸다. 슬그머니 뿌리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 몸에서 손 떼. 손가락을 다 부러뜨려놓기 전에.”

그의 얼굴에 억울한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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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 무렵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갔다가 화장실에 들렀다. 복도에서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섰을 때 바닥에 흩뿌려진 휴지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화장실을 쓴담, 생각하면서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유를 알게 됐다. 화장실 문의 작은 틈마다 하얀 휴지들이 꽂혀 있었다. 그래,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느라 바닥에 휴지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구나. 나도 공중화장실에서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작은 틈에 휴지를 뭉쳐서 꽂는 데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적당히 말린 휴지는 제대로 꽂히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이 구멍 중에 몇 개가 카메라 렌즈의 구멍일까. 화장실 문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내가 자주 오가는 홍대입구역 화장실에서도 생각했다.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과 술집의 화장실에서도 생각했다. 원래 화장실 문이라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건지, 구멍이 단 하나도 없는 곳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었다.

언젠가부터 볼 일을 보기 전에 바지를 내릴 때는 윗옷의 옷자락을 최대한 아래쪽으로 끌어당기는 버릇이 생겼다. 이곳에 존재할지 모를 익명의 시선들로부터 내 성기를 가리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변기에 앉아 있으면 이상한 소망이 떠올랐다. 내 몸이 딱딱한 껍질이 되기를. 단 한 방울의 액체도 흘리지 않는 몸이 되기를.

2019년 초 불법촬영 영상이 유통되는 웹하드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남자들은 단 돈 몇 백 원에 여자를 강간하는 영상이 팔린다고 증언했다. 버닝썬, n번방 기사가 그 뒤를 이었다. 여자를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돈을 번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국 사회의 상식이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면 가슴에 무거운 것이 쿵 하고 떨어졌고 이내 침묵이 찾아왔다. 가슴이, 이내 온 몸이 침묵했다.

그 느낌을 언어로 정리하려면 한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너는 죽어가고 있다.' 잠시 잊을 만하면 새로운, 사실은 하나도 새롭지 않은 사건이 불거져서 다시 한번 이 느낌을 각인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D와 섹스를 할 수 있겠는가? 옷을 벗고 그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는 일, 무릎을 꿇고 그의 성기를 입에 넣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처음에는 섹스만이었지만 나중에는 어떤 종류의 스킨십도 견딜 수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의 침대가 정치적 토론의 장처럼 보였다. 나는 나 개인이 아니라 여성의 대표이고, 그 또한 남성의 대표였다. 집단의 역사에 대한 고려 없이 내가 천진하게 그를 애무하고 흥분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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