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당신과 나의 삶이 하나의 서사일 때

by 배윤민정

책 증정본을 받고 나니 이상하게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오래전 브런치에 올린 다음 SNS로 몇 차례나 조리돌림을 당해오면서 이미 저잣거리로 내보낸 것 같은 글이었지만, 이렇게 책이 나오니 새삼 긴장된다. 마치 처음으로 세상에 이 글을 공개하는 것 같다.


에세이 작가란 정말 이상한 직업이군. 이렇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공중에 떠드는 직업이 또 있단 말인가? 타 예술 장르가 가지는 방어막 하나 없이. 결국 생활 속의 내가 글 속의 나와 계속 거리를 두는 식으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상당히 자기분열적인 상황이다. 건강한 멘탈로 늙어 죽을 때까지 에세이(그중에서도 회고록) 쓰는 사람 있나? 내가 아는, 자전적 글쓰기 분야에서 탁월한 작가들 중 많은 이들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혼란한 생을 살다 갔다. 그들이 술의 매력에 대해서 하나같이 '취하면 안전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던 것도 씁쓸하다.


나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언제나 주먹이 날아오면 맞받아칠 태세로 긴장하고 있다. 동시에 아주 행복하다. 동시에 아주 외롭다. 동시에 너무 피곤하다. 동시에 영원히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바란다. 이런 이상한 기분.


어젯밤에도 새벽에 전남편과 함께 있는 꿈을 꾸다가 깼다. '우리 청오리, 너 너무 귀엽구나.' 이렇게 내 별명을 부르면서 말하는 모습. 나는 요새 어느 누구에게도 혀짧은 소리를 내면서 애교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모습은 전남편 말고는 누구 앞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목이 타들어 가는 상태로 살았는데 내가 마시고 남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껏 헤엄칠 수도 있는 넓은 호수를 만난 그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서 느껴본 적이 없다.


요새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이 생각이다.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이 정도까지 집요하게 글을 쓰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 진지한 작가가 되는 것과, 담뿍 쏟아지는 사랑 속에서 행복해하는 것은 나에겐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전에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제 삶의 동력은 결핍에서 오는 고통인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돌아가서, 아니 지금도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애정 욕구 둘 중에 하나가 충족되는 삶을 택하라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그토록 후자의 상태를 원하는 데도. 이것이 슬프다.


내 책은 전남편에게도 그의 외도 상대에게도 흉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자신들의 삶을 도려내서 전시하려는 칼날. 출간 전 전남편에게 원고 검토를 요청했고, 그밖에 내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을 공유했지만 상대방이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을 허락하든 무시하든 내 마음은 계속 어둡다. 언제나 내 글은 타인을 상처 입히지. 하지만 생의 어떤 시점에서 그들의 삶과 내 삶이 긴밀하게 얽혀 버린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빼놓고 어떻게 내 삶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는 수동적인 피해자로 남아 있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데, 발화하는 순간 나는 가해자가 되는 걸까?


내 첫 책이었던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를 읽고 당시에 시가 구성원들은 아주 괴로워했다고 들었다.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 했고, 내가 또 자신들의 얘기를 글로 쓸지 몰라 내 앞에서 뭘 말하기 무섭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세상에 알려지는 게 그토록 부끄럽고 두려운 말과 행동을 왜 내 앞에서 거리낌 없이 했나?'라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해가 간다. 사생활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는 괴로움은 나만의 몫이 아니었구나. 그들도 어느 정도는 이 고통을 느꼈겠구나.


시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보다 나은 가족 관계의 방향을 고민해보리라 예상했던 내 기대가 무참하게 깨어진 다음, 전남편과 내 관계는 계속 나빠졌다. 그가 자신과 자기 가족들의 괴로움을 알아달라고 호소할 때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뭘 바랐는데? 그저 평등한 가족으로 대해달라고 했을 뿐이잖아? 거기에 대고 너는 원래 아랫사람이니 괘씸죄니 뭐니 폭언을 퍼부은 게 누구였는데? 왜 나보고 당신 가족들의 괴로움을 알아달라고 해?"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 호칭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피해자는 나인데, 왜 다들 나보고 자신들의 마음을 살펴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하고 행동하고 글을 씀으로써 힘을 가지면 내가 가해자가 되는 걸까? 이런 상황이 끝 간 데 없이 나를 화나게 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 갈등이 모두 슬프다.


내가 글쓰기에서 근본적으로 느끼는 불안은 이것이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쓰면 당신은 그때부터 나를 괴물로 취급할 거야.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비명을 지르겠지. 언제나 내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내가 해부하고 싶은 사람들이거든. 이 칼날을 견딜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데, 요즘 생각해보면 이건 불가능한 바람인 것 같다. 해부의 과정과 결과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나와 마지막으로 연애 관계를 맺었던 이는 오래 전부터 내 글을 좋아해 왔고, 나를 예술가로 존경한다고 했다. 그랬던 그도 둘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졌을 때 적의를 번득이며 말했다. "나는 네 글의 땔감일 뿐이잖아?"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마지막 작가 노트입니다. 그동안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를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또 새로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12/18 토요일에 열리는 온라인 북토크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북토크 안내: https://brunch.co.kr/@cheongori/70

책 정보: http://aladin.kr/p/FPX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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