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잉여를 직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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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던 팟캐스트의 여성 진행자가 말했다.
"저는 페미니즘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사회 이슈를 다루는 방송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벌컥 화가 났고, 다시는 그 방송을 듣지 않았다. 나는 왜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는 여성의 말을 용납할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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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동안 에세이를 쓸 때마다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쓰는 에세이의 특성상 글쓰기 과정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직면하기 때문일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다수에게 공개하는 심리적 부담 때문일까? 물론 그렇지만,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줌으로 모임을 하면서 글 쓰는 여성의 자기 혐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어느 저녁에 샤워하려고 옷을 벗다가 욕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문득 소스라친다. 내가 여자라니. 물론 나는 여자이지만, 그러나 이 '여자'라는 이름만으로는 내 삶의 경험을 총칭할 수 없다. 기혼여성, 비혼여성, 페미니스트라는 이름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이 이름 사이에서 비어져나오는 잉여물의 총합이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내 몸에서 계속해서 고이고 흘러나오는 배설물과 분비물이 내 육체의 일부이듯. 글쓰기는 이 잉여를 직시하는 일이기에 본능적으로 자기혐오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것은 과거 미국의 급진 페미니즘의 명제이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사회의 여성들을 관통한 자각이다. 이 명제 덕분에 나는 내가 겪은 일상에서의 많은 경험을 해석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나쁜 여자 전성시대] 저자는 미국 급진 페미니즘의 역사를 서술하며 이렇게 질문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인가?", "나의 섹슈얼리티는 나의 정치적 견해인가?" 최근 계속해서 나를 괴롭혀왔던 막연한 생각과 감정이 비로소 또렷한 문장으로 떠올랐다.
내 몸은 페미니즘의 공론장인가?
내 머리 길이는, 체중은, 스타일은, 섹슈얼리티는 내 정치적 견해와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먼가?
내가 만약 남자와의 피학적인 성행위에서 흥분한다면 이때의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치적 주체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개인인가? 흥분하는 내 몸은 여성인가, 여성이라는 개념에서 비어져 나오는 잉여의 무엇인가?
정치적 주체로서의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는 동일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얼마만큼의 거리를 유지해야 윤리적인가?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작가 노트입니다. 책을 쓰는 동안 제가 남긴 일기라든지, 책에 싣지 않은 조각 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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