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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성훈 Jan 20. 2020

시인의 마음 - 상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회보 중



 돌본다는 건 심장에 깊어지는 못이었다. 4월이 개화 순서를 놓친다. 식기들이 떨어져 내렸고 먼 촌수로부터 가까운 촌수에게로 찾아오는 문상에게 엄마는 뒷덜미로 다음 밥상을 차린다. 꽃무덤 하나를 두고 서로가 서로를 미루던 병동에서 그 긴 추위를 어떻게 견뎌왔을까. 기저귀 속에서 한 번도 만개해 본 적 없던 외할머니가 더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살아서도 일어설 수 없는 봄과, 삶을 돌본 적 없으면 끝도 돌보지 않는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박이 떨어질수록 혼자 남겨질 식사와 혼자 남겨질 가족사(家族史)는 끝내야만 옳은 것이 되어갔다. 요양,이란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지긋지긋한 오한보다 더 지긋지긋한 것이 봄이라고, 밥상머리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만개한 벚꽃이 거리에 쏟아지듯, 쏟긴 물컵은 밥상의 비린내만 걸레질한다. 돌볼 일 없는 꽃놀이로 어질러진 침상들이 더 두꺼운 혼자가 되어간다. 입맛이 없어져도, 살 사람도 죽을 사람도 모두 자기가 흩날릴 거라곤 말하지 않았다.


                                                                                                        -류성훈. 계간 '시와 사상'. 2014. 여름호-




 소식을 듣고, 나는 새벽차로 부산에 내려갔다. 우연일까. 그녀가 이승의 허물을 벗은 병원은 내가 태어난 병원이었다. 당신이 나의 처음을 지켜보던 곳에서, 나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나치게 맑았고 온통 노란 햇빛이 지천에 깨져 있었다. 올해의 색은 노랑이라고, 펜톤 컬러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던 해,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던 초봄 어느 날 할머니는 계단에서 넘어졌고 모든 것은 그저 거기까지였다. 인간에게 넘어지는 일이 그렇게 죽음과 가까운 길인지, 수의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란색인지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세월호가 남해안에 가라앉은 지 정확히 일주일 후였다. 온 나라에 노란 수의가 꽃샘바람으로 떨었다.

우리 집엔 출판된 지 사십여 년이 지난 동물도감 전집이 있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녀와 함께 책장이 헤지도록 매일같이 보던 그 책들을, 지금은 조카가 보고 있다. 예닐곱 살의 나와 영락없이 같은 모습으로. 그 책 솔기마다 누구의 침이 말라있는지 그 아이가 알 리 없듯이, 나는 침상 위에서 보였을 그분의 마지막 길을 알 리 없었다.


 그녀는 생의 절반을 혼자 살았다. 외진 고갯길 위의 구식 아파트 5층에서, 당신의 딸보다 더 젊은 나이에 떠나보낸 남편 사진에 대고 평생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낡아 뚜껑이 망가진 밥솥을 버릴 수 없어 위에 돌을 얹어놓고 밥을 지었다. 혼자서는 은행도 갈 수 없었고 전후 수십 년 뒤의 세상이 저지르는 복잡하고 건조한 말들을 북괴군 피하듯 살았다. 나는 뒤늦게 한 가지를 알았는데, 정작 한 삶을 피해왔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우리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미명(美名)을 짓는 일에 무서우리만큼 능하다. 미명은 변명에 대한 변명이다. 가령 ‘요양 병원’ 같은 것이 그렇다. 그곳은 숨이 붙은 부모를 버리는 곳이며 거기서 누구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거란 걸 안다. 거기엔 ‘남은 삶들을 위해’ 라는 불편한 미명이 있다. 아픔을 고치는 곳이란 의미의 병원이 사실 가장 사람이 많이 죽는 곳인 것처럼, 이제와 우리는 병원의 의미와 요양의 의미 중 어느 것도 고치긴 힘들 것이다. 그것은 삶의 뒤에, 혹은 죽음의 뒤에도 숨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죽음은 죽은 자에게는 가차 없고 산 자들에게는 너그러운 법인지 떠난 사람은 아무도, 아무에게도 탓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미명은 늘 산 자의 몫이다.


 추모공원 납골당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안식 앞에 붙어있는, 남은 자들의 아픈 변명들을. 그것은 떠난 이들의 평화를 위한 것일까 산 자들의 가책을 위한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미명도 변명도 그렇게 생겨나지만 이 불편함은 진실의 불편함에 늘 역행하게 마련이니까. 인간에게 있어 가장 불편한 것. 문학은 인간에 대한 인간적 이해이며, 그 모든 이해는 이 점을 직시할 때에만 생기는 것이다. 내가 아직 쓸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그것들에 가깝고자 하는 무엇일 것이다. 시는 그 불편함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기 좋은 글만 쓰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 문학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양병원은 미명으로 태어났지만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며느리는 화장터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자 얼굴을 쥐어뜯었고 상주는 어머니 앞에서 처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은 남겨진 집의 시세를 알아보았고 장손과 가족들은 병원비와 상속세 문제를 걱정했다. 추모공원의 밥은 너무 질었고 누군가 국물이 짜다고 불평했다. 나는 땀을 닦으며 검게 그을린 채 골분 속에서 나온 틀니의 모습만 끊임없이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삶을 죽음이 그 끝이나마 지키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라 어떤 미명이 아닌지. 언제 한 번 이 세상에 온 적도 없었다는 듯 사라진 그녀를 변명처럼 추억하는 나는, 이 모든 걸 회상의 형태로 지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소한 내게 있어 시는 대상을 그려나가는 의미의 방식이 아니라 지워나가는 추억의 방식으로서 불완전하게 곁에 있는 어떤 것이다. 구차한 미명과 면목 없는 변명 사이에서, 그나마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고자 하는 고백 같은 것이다. 그것이 과거에 대한 것이든 미래에 대한 것이든. 우리는 미명으로 살고 죽음으로 변명할 테니. 태어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미명도 하나 없이 물속에서 죽은 학생들을, 그때 그녀는 한 명씩 안아주느라 바빴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과 그녀를 위한 나의 작은 미명. 조카와 함께 동물도감을 읽으며 책장의 솔기들을 본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고, 나는 남겨진 삶들을 위해 다만 변명처럼 추억할 것이다.  



-류성훈. '시인의 마음' 릴레이. 서울지방변호사회보 1월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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