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다시읽기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억지로 무얼 하려 하지 말고
그저 고요하게 바라보자.
세계는 스스로 평안에 이를 것이니.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를 마주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사태 앞에서, 나는 바람 앞에 위태로이 춤을 추는 촛불처럼 흔들렸습니다. 자주 가는 인왕산 산신각 앞에서 두 손을 모았고, 기독교의 기도문을 외워보기도 했고, 관세음보살의 큰 자비를 구했습니다. 문득, 종교의 존재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바람도 물도 하늘도 주위의 모든 자연이 두렵기만 했을 옛-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신을 찾았을지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봐도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고, 이제 남아있는 카드마저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두운 숲 속에 홀로 남겨져 방향 감각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던 그 밤. 길을 찾다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뚱이 마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차가운 땅 위에 머리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셀 수 없이 많은 풀벌레 소리와 서슬 퍼런 짐승의 소리마저 점점 더 거대해졌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극에 달해 기절해 버릴 것만 같던 순간, 신기루처럼 푸른빛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저 멀리서 푸르고 붉은 온기가 점점 확장되는 것을 봅니다. 햇님입니다. 주위가 점점 밝아지며 늪과 같던 어둠은 저 너머로 물러갑니다. 그리고 영혼마저 부셔질 것 같던 두려움도 함께 흩어집니다. 오 신이시여! 우리의 무지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밝은 빛에 드러난 숲은 그저 온화하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공포와 두려움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지나고 나면 그저 한 숨 몇 번 쉬며 ‘하, 그랬었지’ 하고 웃어넘겨버릴 일이 돼버리는 것을요. 가만히 서면 가슴 언저리까지 밖에 잠기지 않는 호수에 들어갔다가 바닥이 보이지 않아 지레 겁먹고 허우적거리듯…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어쩌면 우리를 억누르며 괴롭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사실 그렇게 별 것 아닌 일들이었을지 모릅니다. 두려움은 외부의 요소가 아닌,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가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배우자나 가족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기를, 문밖에서도 어려운 일을 만나지 않기를, 하는 일들이 잘 풀리기를, 다치지 않고 건강하기를…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불확실성을 마주해야 하는 일인 것을. 아무리 대운이 좋아도, 기도를 많이 해도, 돈이 많아도, 친구가 많아도 늘 평안할 수만은 없습니다. 평안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는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곧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직전의 찰나와 같은 순간이라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주역의 64괘 중 이상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기제旣濟괘에도 ‘현명한 사람은 이후에 다가올 환란을 미리 예방한다’는 점괘가 들어가 있듯이 말입니다.
수재화토 기제 군자이 사환이예방지
水在火上 旣濟 君子以 思患而豫防之
물이 불위에 놓여있으니 이는 이미 건너간 것
현명한 자는 다가올 환란을 미리 생각해서 방비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나요? 어둡기만 한 이 터널에 끝이 있기는 한지 막막하기만 하나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크게 심호흡하고서는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이야기 한 고요함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정(靜 고요함)하면 정(定 편안함)할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