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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Nov 26. 2023

난방비 100만원의 트라우마

이렇게 얌전한 아들이 태어날 줄 몰랐다.


엄마아빠를 닮은 씩씩하고 개구진 아들을 상상한 우리 부부는 애가 걷기도 전에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던 중 눈에 띈 포베이 구조의 아파트는 뒤로늗 산, 앞으로는 작은 천이 흐르고 있었다.


'이거슨 배산임수?????'


아이를 키우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라 생각하고 이사를 갔다.


"1층? 추울낀데...."


세상 모든 엄마들은 예언가다. 영화속 씬스틸러. 복선의 주인공이다. 조용히 걱정하는 엄마의 말은 늘 현실이 되어 공포로 다가왔다.

보일러가 끝없이 돌아가는데 그렇게 추웠다.

덜컥~위잉. 보일러 도는 소리가 그렇게 무서운지, 그해 겨울 처음 알았다.


"뷰? 좋지! 근데 앞뒤로 막아주는게 전혀 없잖아. 모든 방이 다 베란다로 통창을 끼고 있고."


우리가 그토록 극찬했던 산 밑에 위치한 앞에 천이 유유히 흐르는 고즈녁한 경치와 포베이 구조가 겨울에 취약한 모든 것이라는 걸 몸으로 깨우쳐야 했다.


대형 거실용 카페트를 2장이나 구매하고도 극세사 잠옷과 조끼를 입고 지내야 했다.


한겨울에도 핫팬츠에 나시티를 입고 맨발의 청춘을 부르짖던 나는, 그해  그집에서 처음으로 실내에서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가스검침원 선생님이 오셨다.


계량기를 보는 그분의 얼굴이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작년에 얼마 나오셨어요?"

"저희 이사와서 첫해 겨울인데, 왜요? 뭐가 이상해요?"

"아...너무 많이 나와서.."

"집이 춥긴 춥더라고요. (순간 이상했다. 일반적인 대화 패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정도면 얼마나 나오는데요?"

"아...뭐.. 정확하게 제가 말씀드릴 순 없고요. 저는 이거 체크만 해서 가는거니..."

더 이상했다. 당혹감에 뒤로 물러서는 느낌. 뭔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듯 회피하는 그런 분위기?


그래, 이건 100퍼 뭔가 있다. 싸하다.

"대충이라도 얼마 정도인데요?"

집요한 내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한 100만원은 넘을 거 같은데...."

"네에????????? 100만원요?????"

너무 억울했다. 말도 안 돼.

"가정집에서 100만원이 나오는게 가능해요?"

"아... 그런 집이 있긴 있어요."

있다고? 정말? 그녀의 얘기에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보일러가 돌긴 했지만 저희 그래도 이렇게 추운데. 보세요. 100만원 넘게 가스비를 내고 이렇게 추운 집이 있어요?


난방비 100만원 내면서 온 집에 카페트 깔고 온수매트 깔고 내복에 극세사 조끼를 입고도 추워서 이불까지 거실에 꺼내놓는 집이 어딨어요?" 

극도로 흥분한 내 모습이 짠했는지 그녀가 말했다.

"아, 저는 체크만 해서 잘 모르고 여기로 전화를 해보세요. 담당자 분이랑 통화를 한번 해보세요."

도시가스 회사 담당자에게도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며칠 뒤, 실사를 나왔다.

담당자가 돌아갔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계량기 교체가 진행될 겁니다. 교체한 지 얼마 안된 거 같은데 불량이었나봐요. 가스비는 전년도 기준으로 고지될 겁니다." 

"전년도는 얼마였는데요? "

30만원 전후라는 말을 듣고 두근두근 뛰는 가슴이 겨우 진정됐다.

그렇지만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100만원이 진짜였으면 어쩌지? 어린 애를 키우는데 보일러를 틀긴 틀어야 하는데.. 100만원 근처라도 나오면 고장이 아니었던거 같다고 다시 100만원 내라고 하면 어쩌지?' 

100만원으로 군기가 잔뜩 잡혔다. 이달은 작년 기준이더라고 다음달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음달은 40만원 가까이 나왔다.


작은 돈은 아니지만 100만원의 트라우마 덕에 '이게 어디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겨울은 몸도 마음도 추웠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천둥번개보다 무서웠고, 매달 가스고지서를 성적표를 받듯 확인했다.

세상에 잃기만 하는 법은 없다고 나는 이후 난방비 단속반이 되었다.

실내에서는 긴팔, 긴바지, 양말 착용하기. 보일러 외출, 실내 가동 22도 철저히 확인하기.  


작년, 올해 가스비, 전기세가 여러 차례 올랐다.

만만치 않은 겨울이 될테다.

겨울채비는 난방비를 줄일 수 있는 주부의 지혜와 가족들의 협조로 시작된다.

와라! 겨울! 올겨울도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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