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단골카페 사장님이 쉬는 날이다.
20대 후반의 참한 아가씨 사장님은 좀처럼 쉬는 날이 없는데, 오늘 그리고 내일, 모레까지는 휴무.
동해로 해맞이하러 간다고 했다.
알바생이 사장님께 휴가를 요청하듯 미안한 표정으로 얘길 하는 그녀에게 잘 다녀오라고 해줬는데, 늘 가던 곳이 문을 닫으니 오늘 할 일이 없어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잘 됐다. 마침 요즘은 모든 걸 내려놓고 가만히 쉬기로 하고 최소한의 것들만 하던 중이다. 오늘은 카페에서 책 읽는 것마저 놓자, 싶다.
전기장판 위에 가만히 누워서 틀어놓은 TV를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웃으며 생각한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날 바로 전날. 12월 30일이다.
내게 한해의 진정한 마지막날은 12월 30일, 진정한 첫날은 1월 2일이다.
진짜 마지막날과 진짜 첫날은 북적이는 일들로 손에서 놓아버린 고무줄처럼 어찌할 바 없이 흘러버리니, 정말 일상과도 같은 마지막 날과 첫날은 12월 30일과 1월 2일인 셈이다.
한 해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생각인데 이렇게 마지막 날을 허무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맞을까.
끈적끈적 떨어지지 않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한쪽으로 밀어두고 TV에서 나오는 실없는 농담에 웃는다.
웃으며 다시 생각한다. 단골카페도 쉬는 날이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이를 핑계로 그저 쉬기로 한다. 별 수 없잖아.
그래, 쉬기로 했잖아. 그저 푹 쉬기로... 괜찮아.
그새 데워진 전기장판 위에 몸이 녹아든 듯 흐느적흐느적 배실배실 티비를 보며 웃는데 문자가 온다.
커피에 초코케이크. 쿠폰이 왔다.
주섬주섬, 가방에 책 한 권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넣어 카페로 가는 길, 생각한다.
모처럼 누워서 빈둥댈까 했는데, 핑계가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네.. 라고.
인생에는 열심히 사는 날, 살아야만 하는 날, 살아내야만 하는 날, 그리고 쉬어야만 하는 날도 있지만 핑계삼아 못 이기는 채 등 떠밀려 사는 날도 있다.
반가운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전자의 경우는 생이 내게 보내는 응원과 축복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조금만 더 해보라고. 그래, 너 참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한번만 더 해보라고. 내가 여기서 너를 이렇게 지켜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