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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Jun 23. 2024

우리가 가진 숲의 판타지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표지에서도 느껴지듯 딱 봐도 대놓고 힐링소설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쉽게 끌렸던 건, 쭉 뻗은 오래된 나무들. 빛이 쏟아지는 울창한 숲의 초록을 돋보이게 하는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 하나, 둘, 셋. 자세히 보지 않아도 보이는 편안한 미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 따지고보면 '숲'의 '느긋한  나날'이란 지금 이 사회를 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판타지'니까.


도시에서 삶을 소모하던 '유키'가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에 의해 산골 마을로 보내져 겪는 1년이 책의 주된 흐름이다. 이 흐름에 숲의 사계가 덧입혀진다.


책장이 넘어가는 만큼, 걸음걸음이 숲으로 들어가는 거고 어느 순간 우리는 숲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뇌는 피톤치드의 향을 기억에서 이끌어 내게 된다.  


숲에서 살게 되면 어떨까. 낭만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억지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루함' '무료함'의 순간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서서히 놓아버리는 순간, 들어오는 것은 한결같다 생각했던 자연. 단 하루도 같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라 생각된다.


봄이라서, 여름이라서, 가을이라. 또 겨울이라. 비가 오니까. 바람이 부니까. 햇살이 쏟아지니까.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릴 채우는 새로운 동식물. 생명의 신비. 도시에선 어렵게 애써 느끼는 자연의 생명력, 그 거침 없는 순환,  맞설 때 한없이 작아지는 보잘 것 없는 인간, 순응할 때 더없이 품어주는 자연.  


모든 자연과 인간이 책에 느긋한 템포로 담겨 있다.  


읽다보니, 그런 생각도 든다.


느긋한 게 좋다고 말하는 책들도, 이 필요하다는 힐링소설들도 우리의 호흡에 맞춰 빠른 전개를 갖추고 있지 않았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호흡을 이끌어주는 진정한 힐링,  읽다가 표지를 한번 보고 스르륵 잠들어도 좋은 그런 책. 언제 봤지?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보채지 않는 책들.. 얼마만이지?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나는 막연히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서 산소를 내놓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광합성을 할 때만 그렇고, 당연히 모든 식물이 산소를 들이쉬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호흡 또한 하면서 산다.  


"그러니까 사람한테 좋으라고 나무만 잔뜩 심어놓고 그걸로 안심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제일 중요한 건 사이클, 순환이라야. 관리도 안 하고 방치하는 건 '자연'이 아니지야. 순환이 잘되도록 손질해서 산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자연'이 보존된다는 뜻이자야."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중에서



말하지 않는 것, 그저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강력하다. 사람도, 자연도 그렇다.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것?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저 받기만 해도 되는 것? 그런건 세상엔 없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자연, 인간, 감사하는 마음, 내 나름의 노력.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것. 그래서 지속가능한 관계가 되는 것.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힐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당연하게 받기만 하는 것 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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